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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로 방치된 위안소… “끔찍할수록 기억해야죠”

입력
2020.01.20 16:48
수정
2020.01.21 12:1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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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편찬 관계자와 한인들이 19일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위안소 현장을 찾았다. 왼쪽부터 박재한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 김문환 한인사 총괄, 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 채인숙 작가, 최경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김민성군.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편찬 관계자와 한인들이 19일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위안소 현장을 찾았다. 왼쪽부터 박재한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 김문환 한인사 총괄, 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 채인숙 작가, 최경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김민성군.

“끔찍하다”, “기가 막힌다”. 한탄은 저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바뀌었다. 참혹한 현장을 직접 마주한 이들은 “역사를 보고 기록하고 객관적인 검증의 토대 위에 미래 자산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19일 오후 한인 10여명이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470㎞ 떨어진 중부자바주(州)의 암바라와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거처를 찾았다. 지난해 8월 한국일보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진 ‘화장실로 변한 인도네시아 위안소’는 여전히 관광객들의 화장실로 쓰이고 있었다. 나머지 43칸의 처지도 반년 전 그대로였다. 폭 1.5~2.5m, 길이 3.6m, 높이 3m의 방들은 짐승 우리처럼 쓰레기 더미와 함께 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암바라와 위안소는 고 정서운(1924~2004) 할머니 등 13명의 조선 소녀가 위안부로 끌려온 곳으로 알려졌다. 이 중 일제 패망 후 살아남은 소녀는 6, 7명에 불과했다.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일본군 위안소 위치. 그래픽=송정근 기자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일본군 위안소 위치. 그래픽=송정근 기자

방문객들은 그나마 보존이 잘 돼 있는 방에서조차 탄식하거나 할말을 잃었다. 숨쉴 때마다 들러붙는 습하고 역한 냄새나 나뒹구는 쓰레기보다 70여년 전 이 곳에서 고초를 겪었을 소녀들의 아픔을 떠올리는 게 더 힘겨워 보였다. 왼쪽 벽에 ‘소녀시대’, 문 앞에 ‘소녀’라고 누군가(일본인 추정) 그려놓은 듯한 낙서를 발견하고는 분노했다. 당장은 소녀들을 추모하는 묵념으로 그들의 한 많은 넋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이태복(왼쪽부터) 시인, 박재한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 김문환 한인사 총괄이 19일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위안소에 적힌 '소녀시대' 낙서를 가리키고 있다.
이태복(왼쪽부터) 시인, 박재한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 김문환 한인사 총괄이 19일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위안소에 적힌 '소녀시대' 낙서를 가리키고 있다.

이들은 재인도네시아한인회 산하 한ㆍ인니문화연구원 주최로 꾸려진 역사탐방단이다. 올해는 ‘독립운동 망명객’ 장윤원(1883~1947) 선생이 인도네시아에 뿌리내린 지 정확히 100년 되는 해다. 박재한(60) 한인회장, 사공경(65) 연구원장, 신성철(56)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등 9월 발간 예정인 ‘인도네시아 한인 100주년사’ 집필ㆍ편찬에 관여하는 이들과 고등학생 김민성(18)군 등이 합류했다.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위안소 내부. 문에 '소녀'라고 적혀 있고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다.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위안소 내부. 문에 '소녀'라고 적혀 있고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다.

각자 소감을 나누는 자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이곳 위안소가 중요한지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위안부는 얘기로만 들었는데 눈으로 보니 충격적이다. 내 또래들도 많이 왔으면 좋겠다”(김군),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똑같은 만행을 저지른 일본이 여전히 역사를 회피하니 답답할 노릇이다”(김문환 한인사 총괄), “보는 것 자체만으로 끔찍하다. 지울 수 없는 역사, 기억하기 위해 계속 쓰겠다”(채인숙 한인사 수석편집위원), “후세가 알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이명호 ㈜AAM 상무), “슬픈 역사라도 확실히 검증해 보존해야 한다”(김소웅 ㈜SCI 대표) 등이다.

인도네시아 한인 문화탐방단이 19일 70여년 전 조선 소녀가 끌려왔던 중부자바주 암바라와의 일본군 위안소를 찾았다. 방 한 칸은 화장실로 변했다.
인도네시아 한인 문화탐방단이 19일 70여년 전 조선 소녀가 끌려왔던 중부자바주 암바라와의 일본군 위안소를 찾았다. 방 한 칸은 화장실로 변했다.

이번 방문의 의미를 되새기고, 구체적인 보존 방법도 모색했다. 최경희(49)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암바라와 위안소는 과거가 아닌, 아직도 세계사적 의미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살아있는 현재”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기사만 봐도 슬펐는데 영혼의 슬픔이 느껴지는 현장”이라며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인들만이라도 잊지 않기 위해 이른 시일 내에 푯돌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한인 문화탐방단이 19일 70여년 전 조선 소녀들이 끌려왔던 중부자바주 암바라와의 일본군 위안소에서 묵념하고 있다. 방 한 칸은 화장실로 변했다.
인도네시아 한인 문화탐방단이 19일 70여년 전 조선 소녀들이 끌려왔던 중부자바주 암바라와의 일본군 위안소에서 묵념하고 있다. 방 한 칸은 화장실로 변했다.

탐방단은 일제 당시 포로감시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왔다가 고려독립청년단에 가입한 민영학(당시 28ㆍ충북), 손양섭(24ㆍ충남), 노병한(25ㆍ강원) 등 3명의 의사(義士)가 갑작스런 전속 명령에 불만을 품고 1945년 1월 4~6일 일본군 십여명을 죽인 뒤 모두 자결한 항일 의거 현장인 위안소 인근 암바라와 유적지도 고인들의 동선을 따라갔다. 기자와 함께 작년에 암바라와 의거 현장을 동행한 이태복(60) 시인도 탐방에 함께 했다.

화장실로 변한 인도네시아 중부자바주 암바라와의 일본군 위안소. 6개월 전 방문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화장실로 변한 인도네시아 중부자바주 암바라와의 일본군 위안소. 6개월 전 방문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앞서 이날 오전 탐방단은 중국 명나라 시대 해양 원정대장 정화(鄭和)를 기리는 스마랑 시내 삼푸콩(三保洞) 사원을 방문했다. 스마랑은 정화가 7차례 원정 때마다 정박했던 곳이다. 2011년 중국의 지원에 힘입어 확장한 삼푸콩 사원은 현지 주민들이 휴일을 즐기는 명소로 변모했다. 사공 원장은 “잘 꾸며진 중국 유적지와 방치된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깃든 두 현장을 비교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탐방은 화장실로 변한 현장을 낱낱이 기록하고, 잊혀져 가는 독립투사들의 이름을 불러줘 역사의 꽃으로 되살아나게 하는 첫 발걸음”이라고 덧붙였다.

인도네시아 중부자바주 스마랑에 있는 정화 사원 삼푸콩.
인도네시아 중부자바주 스마랑에 있는 정화 사원 삼푸콩.

암바라와ㆍ스마랑=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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