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의 시 한 송이] 얼어붙은 탐정들

입력
2020.01.17 04:40
29면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글을 좋아해요. 타고난 유연함에서 비롯된 겹겹의 “마술적 사실주의”와 그 안에 녹아 있는 유머 때문이지요. 로베르토 볼라뇨(1953~2003)에게는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라는 호명이 따라다니지요. 소설의 독보적 위치 때문에, 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요. 그러나 볼라뇨는 자신의 정체성을 늘 ‘시’로 여겼고, 평생 시를 썼지요. “시는 그 무엇보다 더 용감하다”가 그의 중심이었다 하지요.

‘탐정’은 볼라뇨의 시, 소설에 자주 등장해요. 여러 탐정들이 나오는데, “얼어붙은 탐정들” “길을 잃은 탐정들”은 일단 난처한 탐정들이지요.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길을 잃지 않으면 골똘하게 얼어붙지 않으면 결정적 단서를 발견할 수 없으니, 길을 잃고 얼어붙는 자가 진정한 탐정인 것이지요.

탐정의 생명은 “눈”이지요. 기능적으로 뜨고 있는 눈 말고, 사명감이 바탕이 된 “신중한” “눈”, 꿈에서도 “계속 눈을 뜨고 있으려고 하는” ‘깨어난 눈’, ‘위트 있는 눈’ 말이지요. ‘나도 사람인지라 피 웅덩이는 피하고 싶죠.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죠. 현장을 보존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니까요’, 양방향으로 열린 이런 항변이 주머니가 잔뜩 달린 옷을 즐겨 입는 탐정들의 것이죠.

이 시를 읽고, 유화를 최초로 발명한 얀 판 에이크의 작품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을 찾아보신다면, 쓱 지나치지 않고 “볼록 거울”에 집중해 보신다면, 거기에서 탐정의 시선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전망과 공포는 같은 곳에서 발생하는 눈. 여러 면을 살펴보고 있느냐,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한 면만 보고 있느냐의 차이도 있겠지만요. 전망과 공포를 가르는 결정적 단서는 호기심의 유무일수도 있지요. 공포가 커짐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은 더 커진다면, 그곳을 “우리들의 전망”, “우리들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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