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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테이블 밑에는 정강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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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민운동 단체가 아베 정권이 시도하고 있는 평화헌법 9조 개헌을 우려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행여 한국 정부 차원에서 반대 입장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주미 대사를 지낸 41년 경력의 외교관 최영진은 ‘신조선책략’(김영사, 2013)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본의 ‘보통 국가화’를 위한 노력은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중국도 내심으로는 싫어해도 반대할 명분이 없다. 우리가 외교적으로 앞장서서 반대 입장을 확고히 할 경우, 우리는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만다.” 일본이 한때 식민지를 수탈하고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고 해서 자주국방의 권리가 박탈될 수는 없다. 그것이 일본 재무장을 막는 논리라면, 지구상에서 군대를 보유할 수 있는 자격에 통과할 나라는 몇 되지 않는다.
자주국방이라는 논리에 따를 때, 자체 핵 개발을 통해 핵무장을 한 북한을 지척에 둔 한국이 북한과 똑같은 과정을 밟는 것에 반대할 수 있는 국가는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공군 준장으로 예편한 국제정치학 박사 송대성은 ‘우리도 핵을 갖자’(기파랑, 2016)에서 이렇게 말했다. “적대국의 어느 한쪽은 핵 보유국이고 다른 한쪽은 비핵 국가일 때, 비핵국 국민들의 생명과 국가 자산은 보유국의 인질이 된다.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을 개발하겠다는 것은 북한의 위협에 대한 정당방어 개념으로서, 그 누구도 압박할 수 없다.”
이 논리에는 미국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자기들은 본토가 아니라 괌까지 겨우 날아갈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운 북한 미사일에 호들갑하며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겠다면서, 휴전선을 가진 한국의 핵 개발을 무슨 명분으로 막을 수 있나. 한국이 핵 개발을 하면 일본과 대만의 핵 개발 도미노가 벌어질 것이라고들 하는데, 그것은 다 자국 사정일 따름이다. 한국의 역설은 북한이 아니라, 서울과 평양이 초토화되고서도 결판이 나지 않을 전쟁을 벌이려는 미국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주국방은 그런 방법 가운데 하나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이 주한 미군 감축을 결정한 1970년부터 핵무기 개발을 마음먹었다. 미국의 강한 저지를 무릅쓰고 비밀히 진행되었던 이 계획에 따르면 1985년까지 원자탄을 만들기 위한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었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한국의 핵 개발도 따라 죽었으나, 한국의 핵 개발을 확인사살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전두환이다. 김재엽의 ‘한국의 핵무장’(살림, 2017), 안준호의 ‘핵무기와 국제 정치’(열린책들, 2018), 이창위의 ‘북핵 앞에 선 우리의 선택’(궁리, 2019)이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김재엽의 말을 들어 본다.
“새로이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은 12ㆍ12군사반란, 5ㆍ18민주화운동에 대한 유혈 진압 등으로 정통성을 갖지 못한 상태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의 외교적 지지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그 결과 신군부 세력은 핵무기, 지대지미사일 등 전략무기 개발을 중단하라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관련 연구 개발 사업들이 백지화, 축소되었음은 물론이고 주요 연구 인력들도 해고되었다. 정권 찬탈을 위해 무고한 국민을 학살한 것도 모자라서 독자적 방위 능력의 발전까지 포기한 용서받지 못할 매국노적인 만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독일 태생 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는 히틀러가 싫어서 영국으로 망명한 뒤에, 미국으로 건너가 원자탄 개발 팀의 폭탄 설계팀으로 일했다. 전쟁 후 원자탄 설계도를 소련에 넘겨준 그는 오랜 감옥살이를 마치고 동독으로 인계되었다. “핵폭탄을 한 나라에서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그는 중국 유학생들에게 원자탄에 대한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안준호의 책에서 처음 알게 된 푹스의 생각을 수긍하게 된 것은, 앤드류 퍼터의 ‘핵무기의 정치’(명인문화사, 2016)를 보면서다. 이스라엘의 멈추지 않는 호전성은 아랍권에서 저 혼자만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에도 원인이 있다. 그래서 아랍권의 어느 나라가 몇 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이 중동 지역을 현재보다 더욱 안정적으로 이끌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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