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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결코 저물지 않는다… 의인들 “사랑의 2020”

입력
2019.12.31 04:40
1면

 

 2019 의인들 ‘소망 편지’ 

 태호 유찬이법 앞장선 이소현씨 부부 “아이들이 안전하게 노란차 탈수 있기를” 

 ‘선한 영향력 프로젝트’ 이끈 오인태씨 “결식아동들 마음 편히 식당 찾아주길” 

사건사고와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2019년에도 타인을 먼저 보살피고 사회 변화를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은 이웃들의 선행은 한줄기 희망을 전했다. 지난 5월 축구클럽 차량 사고로 아들 태호를 잃고 일명 ‘태호ㆍ유찬이법’ 통과에 앞장선 이소현(36)ㆍ김장회(36)씨 부부, 결식아동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해 ‘선한 영향력 프로젝트’를 이끌어낸 서울 마포구의 오인태(34) 진짜파스타 대표, 지난 4월 강원 고성ㆍ속초 산불 때 고령의 주민들을 무사히 대피시킨 속초 장천마을 어두훈(62) 이장, 18년간 중증장애인을 위해 치과 진료봉사를 펼친 전남 무안군의 장성호(46) 연세가지런e치과 원장도 그런 평범한 의인들이다.

어쩌면 누구보다 힘겨운 한 해를 보냈을 이들에게 새해 소망을 묻자 한결 같이 희망을 얘기했다. 자신이 도운 어려운 이웃, 자라날 어린이들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편지 형식으로 엮었다.

[저작권 한국일보] 어린이 통학차량 미등록 대상인 축구클럽 차를 타고 귀가하다 숨진 고 김태호군의 부모 김장회(왼쪽)·이소현씨가 지난 28일 서울 소공동 NPO지원센터에서 열린 정치하는 엄마들 송년회에서 새해 바람을 밝히고 있다. 김정원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어린이 통학차량 미등록 대상인 축구클럽 차를 타고 귀가하다 숨진 고 김태호군의 부모 김장회(왼쪽)·이소현씨가 지난 28일 서울 소공동 NPO지원센터에서 열린 정치하는 엄마들 송년회에서 새해 바람을 밝히고 있다. 김정원 기자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노란 차’ 탈 수 있기를” 

하나뿐인 아들 태호가 7년 2개월의 짧은 생을 마치고 떠났습니다. “태호 집에 갑니다”는 축구클럽 전화를 받은 지 4분 만에 통학차량이 과속 사고를 내 태호와 친구 유찬이가 눈을 감았습니다.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정치는 전혀 몰랐던 저희 부부의 국민청원이 21만명이 넘는 지지 속에 청와대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변화가 없자 법 통과를 위해 국회를 오가고 있습니다.

아이 잃고 슬퍼하기도 힘든 때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저희를 이해 못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매일 수백 개씩 악담 적힌 메시지가 오고, 저희 부모님마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생각해야지 그러고 다니면 어쩌냐”고 하십니다. 그러나 태호 이후에도 민식이 등 마땅히 보호 받아야 할 교육현장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내년 5월 태호 동생 태양이가 태어납니다. 여전히 저흰 노란 차들만 보면 몸이 벌벌 떨립니다. 태양이가 태어나기 전 20대 국회에서 꼭 법안이 통과돼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커갈 수 있길 바랍니다. 먼 훗날 태호를 만나면 엄마아빠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소현ㆍ김장회씨)

 ◇“아이들이 당당하게 가게 찾아주기를” 

서울 마포구 진짜파스타에서 결식 아동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오인태 대표. 본인 제공
서울 마포구 진짜파스타에서 결식 아동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오인태 대표. 본인 제공

지난 7월부터 결식아동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SNS로 알려지면서 많은 분들이 응원해줬고 동참 의사를 밝혔습니다. 지금은 300여 개의 식당이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선한 영향력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처음 아이들이 왔을 땐 너무 주눅이 들어 있어 화가 났습니다. 당시엔 밥을 먹으려면 ‘꿈나무 카드’를 써야 했는데 ‘결식아동’이란 말이 박혀 있었습니다. 카드를 꺼내는 상황부터 부끄러웠던 거죠. 나중에 물어보니 어떤 식당에선 “바쁠 땐 오지 말라”며 눈치를 줬다더군요.

선한 영향력 프로젝트를 보면 생각보다 세상은 따뜻한 것 같습니다. 다만 “왜 착한 척 하느냐” 식의 비난이 두려워 표현을 잘 못할 뿐이죠. 올 한 해가 제 인생 중 가장 행복했습니다. 새해엔 아이들이 더 편하게 찾아와 주면 좋겠습니다. (오인태 대표)

 ◇“예전처럼 고추ㆍ감자 키우며 살 수 있겠죠” 

올 4월 강원 산불 당시 고령의 마을 주민들을 빠르게 대피시켜 인명 피해를 막은 장천마을 어두훈(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장과 부인 강인옥씨. 부부는 공로를 인정 받아 지난 17일 행정안전부와 전국재해구호협회(희망브리지)로부터 ‘참안전인상’을 수상했다. 전국재해구호협회 제공
올 4월 강원 산불 당시 고령의 마을 주민들을 빠르게 대피시켜 인명 피해를 막은 장천마을 어두훈(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장과 부인 강인옥씨. 부부는 공로를 인정 받아 지난 17일 행정안전부와 전국재해구호협회(희망브리지)로부터 ‘참안전인상’을 수상했다. 전국재해구호협회 제공

요즘 장천마을은 집 짓기에 바쁩니다. 산불 때 집을 잃은 어르신들이 몇 달 동안 조립식 주택에 살다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으니 이보다 다행인 게 없습니다.

얼마 전 선행을 했다고 정부에서 주는 상을 받았습니다. 하루아침에 마을을 잃을 뻔했다 생각하니 마냥 기뻐할 순 없네요. 연세 드신 분들이 평생 살아온 집을 잃고 잿더미가 된 집터에서 울먹이시는 것을 보면 마음에 돌덩이가 하나 들어앉은 듯 합니다.

새해 소원이라면 어르신 모두 얼른 집 지어서 들어가시고, 올해는 고생했지만 내년엔 활기차게 농사 시작하는 겁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옛날처럼 고추 감자 농사 짓고 이웃끼리 오손도손 새해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어두훈 이장)

 ◇“직원들과 함께 해외봉사 떠나고 싶어요” 

전남 무안군 연세가지런e치과 장성호(오른쪽) 원장이 2014년 캄보디아에서 의료봉사 뒤 젊은 환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본인 제공
전남 무안군 연세가지런e치과 장성호(오른쪽) 원장이 2014년 캄보디아에서 의료봉사 뒤 젊은 환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본인 제공

20대 의대생 시절 소록도 한센병 할머니께 무료로 틀니를 만들어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께서 제 이름을 물어보셨죠. “할머니, 제 이름은 왜요?”라고 하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저를 위해 기도를 해준다 하셨습니다. 이 말이 18년간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원동력입니다.

군의관 신분으로 2001년 목포장애인요양원에서 첫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장비도 없어서 휴일에 스케일링 기계 하나를 들고 갔습니다. 치료 중 호흡곤란이 오는 환자부터 입을 벌리는 것조차 어려운 환자까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도 떠날 수 없어 인근에 직장을 잡고 이후 개업도 했습니다.

2014년부터 격년으로 전 직원이 해외 의료봉사를 합니다. 태국 캄보디아 등을 다녀왔는데, 새해엔 어느 나라로 갈까 고민 중입니다.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만날 친구들 생각에 하루라도 빨리 내년이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장성호 원장)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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