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처럼 살았는데 굳이?”… 통일 개념 희박해진 Z세대

입력
2020.01.03 13:57
수정
2020.01.03 17:0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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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세대, 넌 누구니?] 통일ㆍ민족에 거리 두는 세대 

 한국 국민이라는 게 자랑스럽나? “그렇지 않다” X세대보다 높은 33.6% 

[저작권 한국일보] 인식조사로 본Z세대 통일 국가관 -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인식조사로 본Z세대 통일 국가관 - 송정근 기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어릴 때 누구나 흔히 따라 불렀던 동요가 Z세대에는 크게 와 닿지 않는 염원이다. Z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한국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에도 매달리지 않는다.

한국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4일부터 사흘간 전국의 Z세대 500명과 X세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Z세대 36.8%만이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한이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답했다. X세대는 46.8%가 통일에 대해 찬성했다.

◇”통일이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나요”

Z세대에 통일은 절박한 생활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평창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은 젊은 세대가 통일, 한민족에 대해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정부는 평창올림픽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들과 별 다른 의논 없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기로 발표했지만 여론의 강한 역풍을 맞고 말았다. 남북 단일팀 구성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Z세대는 북한 선수들을 ‘정부의 낙하산’이라면서 선수 선발과정에 공정성을 제기했다.

지난해 2월 20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7∼8위 순위 결정전에서 남북 단일팀이 스웨덴 경기를 마친 뒤 얼싸안으며 서로 격려를 해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2월 20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7∼8위 순위 결정전에서 남북 단일팀이 스웨덴 경기를 마친 뒤 얼싸안으며 서로 격려를 해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Z세대의 인식에서 남북이 한민족이라는 개념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한민족’에 소속감을 느끼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Z세대가 X세대보다 13%포인트 낮은 49.6%였다. 북한을 긍정적으로 보는 비율도 X세대의 절반 수준인 12.4%에 그쳤다. 대학생 김지수(25)씨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분단을 겪었던 세대가 이제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있다”면서 “수십년을 남처럼 살았는데 통일을 굳이 해야 하는가 싶다"고 말했다.

Z세대에 통일은 당위가 아니다. 도리어 통일이 '먹고사는 문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찬반이 갈렸다. 중앙대 사회학과 우모(23)씨는 "영토와 인구가 늘어나기도 하고 경제적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때문에 여력이 된다면 통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반면 연세대 재학 중인 이모(25)씨는 "북한은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만큼 그 레벨을 맞추는 비용은 남한이 내야 하기 때문에 통일을 반대한다"며 "자원이 많고 철도가 뚫려서 좋다고 하지만 경제적으로 ‘내 삶'이 더 어려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인식조사로 본 Z세대 통일 국가관 -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인식조사로 본 Z세대 통일 국가관 - 송정근 기자

◇노골적 ’국뽕’은 싫은 Z세대

Z세대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Z세대 인식조사’ 결과, '나는 한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질문에 Z세대 33.6%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대답도 7%로 X세대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Z세대에 국가나 민족은 다소 불편한 개념이거나 거추장스러운 장식물로 여겨졌다. 애국심에 대해서도 Z세대는 별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서강대 재학 중인 채성준(24)씨는 "대한민국, 국가란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국가를 이루는 것은 가부장적인 기성세대지, 우리들이 거기에 들어가 있다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대 언어학과 조부경씨는 "IMF 당시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을 했다고 들었는데, 주변 친구들 반응은 ‘우리는 안 할 것’이라고 하더라"라며 "한국인이라고 해서 부끄러움도 없고, 자랑스러움도 따로 없다"고 말했다.

한류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Z세대는 X세대에 비해 자부심을 덜 느꼈다. '나는 BTS 등 한류 문화의 확산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질문에 X세대는 71%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Z세대는 52.8%만이 동조했다.

지난해 8월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LA컨벤션센터·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K컬처 컨벤션 현장. Z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한국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에 매달리지 않는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8월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LA컨벤션센터·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K컬처 컨벤션 현장. Z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한국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에 매달리지 않는다. 사진=연합뉴스

‘두유 노 김치?’ ‘두유 노 강남스타일?’ 등 선진국 국민들이 우리 문화를 알아준다는 것 자체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소위 ‘국뽕’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단국대 재학생 이모(25)씨는 "민족성과 국적이라는 게 옛 시대에는 동일한 개념으로 취급되면서 나라가 잘되면 나도 잘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며 "하지만 지금의 나는 민족과 국적이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부심 느낄 필요도 없고, 느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Z세대는 주변에 있는 가족, 친구보다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같은 취미나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공동체성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서울대 재학생 박도형(22)씨는 "내가 소속감을 느끼려면 어느 정도 유대감이 있어야 하는데, 주변에 있다고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나와 같은 성향의 외국인 친구와 트위터로 대화할 때 더 잘 통한다"고 말했다.

◇중국보다는 미국, 난민엔 부정적

주변국에 대한 Z세대의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국가별 선호도 조사에서 중국의 경우 Z세대는 75.3%가 부정적이라고 답했으며 X세대는 66.2%가 부정적 의견을 냈다. 반면 미국의 경우 Z세대는 43%가 긍정적이라고 답한 반면, 29.7%만이 미국을 부정적으로 봤다. X세대는 반대로 45.8%가 미국에 부정적이었으며, 25.8%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Z세대의 79.1%, X세대의 84%가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중국에는 부정적이고 미국에는 긍정적인 Z세대의 인식은 최근의 상황과 무관치 않다. 부산대 재학 중인 박지영(24)씨는 "중국이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실상을 들으면 이게 21세기 국가인가 할 정도로 충격적이다"라면서 "아직도 저렇게 통제하는 나라가 있는지 의문일 정도"라고 말했다. 홍콩 시위를 둘러싼 국내 대학생들과 중국 유학생들 사이의 충돌 또한 젊은층의 반중 정서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난민에 대한 입장에서도 Z세대와 X세대는 큰 차이를 보였다. '난민은 인권 보장의 문제이므로 가급적 받아들여야 한다'는 질문에 Z세대는 X세대의 절반인 22%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난민은 한국인들의 삶을 위협하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질문에는 56.6%나 수긍했다. 기성세대보다 Z세대가 난민 문제에 훨씬 배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제주에 체류 중인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2월 제주에 체류 중인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난민에 대한 Z세대의 부정적 인식 또한 최근 이슈에 대한 여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예멘 출신 난민 500여명이 제주도에 입국해 한국 정부에 난민 지위 인정을 요청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난민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 대부분 무슬림인 난민들을 두고 온라인상에서는 '무슬림이 성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크다'는 등의 온갖 루머가 퍼져나갔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예멘 난민 추방을 요구하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Z세대에는 난민 또한 자신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등학생 이진환(18)씨는 "문화 격차도 문제지만 국내에도 못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민이 우선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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