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예약 후 노쇼…“준비한 고기 다 버렸어요”

입력
2019.12.25 04:40
11면

 외식업계 대목 불구 피해 치명적 

 예약 테이블엔 다른 손님 못 받아 

 직ㆍ간접 피해액 8조원에 달해 

 “벌금이나 사전결제 등 보완 필요” 

[저작권 한국일보]삽화 노쇼_신동준 기자/2019-12-24(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삽화 노쇼_신동준 기자/2019-12-24(한국일보)

서울 마포구의 한 갈비집 A사장은 최근 ‘노쇼 폭탄’을 맞았다. 20여명 단체예약을 받아 미리 간장 양념이 들어간 고기를 준비해 놨는데, 정작 예약 당일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늦게라도 올까 싶어 20여 좌석을 1시간 넘게 비워둔 탓에 다른 손님도 받지 못했다. A사장은 “노쇼로 그 날 못 판 고기와 반찬은 모두 버려야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연말연시 외식업계가 일부 무책임한 ‘노쇼족’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12월은 송년회와 같은 각종 모임이 많아 단체 손님이 몰리는 1년 중 최고 대목이지만, 또 그만큼 예약을 한 뒤에 아무 연락도 없이 예약을 깨는 노쇼(no-showㆍ예약 부도)도 빈번해서다. 미리 음식까지 준비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식당 주인으로선 분통 터질 일이지만 정작 피해 보상 받을 길은 없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업계의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예약자는 단순히 일이 생겨 예약을 깬 거라고 둘러댈 수 있지만 당사자인 식당 주인에게 노쇼는 치명적이다. 준비한 음식은 그냥 버린다 해도 예약 받은 테이블에 다른 손님까지 앉히지 못해 이중 피해가 생긴다. 서울 강북의 한 식당 주인은 “저녁에 30명 단체 손님이 온다고 해서 일일 아르바이트생도 급히 구하고 온 식구가 투입돼 기다렸는데 정작 예약자는 ‘회의가 길어져 못 가겠다’며 안 왔다”며 “이런 무책임한 행태에 손해를 봐도 누구에게도 보상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실제 현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노쇼로 인한 직ㆍ간접 피해액은 8조원에 달한다.

정부도 외식업계의 이런 절박한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노쇼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소비자 분쟁해결 기준’을 내놨다. 예약자에게 미리 보증금을 받은 뒤 예약시간 임박해 취소하거나 예약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보증금 전체를 위약금으로 걷어갈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선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아 손님 유치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손님에게 보증금을 요구하는 게 식당 주인 입장에선 썩 내키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예 연말연시엔 예약을 받지 않는 업체도 있다. 서울 성북구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B씨는 “미리 자리를 빼뒀다가 허탕친 경우가 너무 많아 규모가 작은 경우엔 예약을 안 받고 단체 예약은 노쇼를 막으려고 주문도 미리 받고 아예 예약금도 10만원씩 받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노쇼 대책을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소비자 스스로 노쇼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소비자 역시 거래 당사자의 한 주체로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는데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성찰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허경옥 한국소비자정책교육학회장은 “벌금이나 사전 결제 조항 등 강제조항으로 보완하고 동시에 노쇼가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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