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불모지' 일본 바뀌나… '꽃뱀' 지탄받던 이토 시오리 승소

입력
2019.12.18 14:07
수정
2019.12.18 17: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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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투운동의 상징인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가 18일 도쿄 지방재판소에서 열린 성폭행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뒤 '승소'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일본 미투운동의 상징인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가 18일 도쿄 지방재판소에서 열린 성폭행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뒤 '승소'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일본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 운동의 상징’인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가 18일 자신을 성폭행한 유명 언론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도쿄(東京) 지방법원은 이날 오전 “이토씨가 음주로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성폭행 당했다”는 이토씨의 주장을 인정하고, 가해자인 야마구치 노리유키(山口敬之) 전 TBS 기자에게 330만엔(약 3,500만원)의 배상을 명령했다. 또 ‘합의된 성관계’였다는 야마구치 전 기자의 주장에 대해선 “핵심 부분에서 설명이 불합리하게 바뀌고 있어 신뢰성에 중대한 의문이 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야마구치 전 기자는 이토씨가 제기한 민사 소송에 반발,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1억3,000만엔(약 13억8,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성폭행 피해자를 둘러싼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공표한 행위는 공익 목적이 있다”며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기각했다.

이토는 판결 직후 취재진에 “많은 분들이 지원해 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이번 판결은 하나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승소했다고 해서 제가 받은 상처가 없던 것으로 되지 않는다”며 눈물을 보였다. 또 “형사 절차에서 불기소 되었을 때 어떤 증거와 증언이 있었는지는 나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민사 소송을 제기해 법정에서 증거 등을 제시할 수 있어 조금이라도 공개됐다고 생각한다”며 “지금도 혼자 불안해하면서 성폭행 피해와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이 없어지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2017년 5월 기자회견에서 “2015년 4월 당시 TBS 워싱턴 지국장 출신 야마구치 기자와 진로상담을 위해 식사를 한 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원치 않은 성관계를 가졌다”고 폭로했다. 검찰의 사건 종결에 항의하기 위한 차원에서였다.

경찰은 2015년 이토씨의 신고로 야마구치 전 기자를 준강간 혐의로 수사했으나, 도쿄지검은 2016년 7월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와 관련해 야마구치 전 기자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자서전을 집필한 유명 언론인이기 때문에 정치권의 도움으로 불기소 처분이 나왔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성폭행 피해자를 둘러싼 일본의 법률과 사회 인식에 문제 의식을 갖게 된 그는 2017년 10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블랙박스’를 출간했다. 그러나 성폭행 피해자인 그에게 ‘꽃뱀’, ‘위안부’ 등 인신공격성 비난이 쏟아지면서 잠시 일본을 떠나 생활하기도 했다. 그의 활동은 전세계적인 미투 열풍 속에서 일본 언론보다는 주로 해외 언론의 조명을 받아왔다. 영국 BBC는 그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의 감춰진 수치’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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