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 300억… 요즘 충무로엔 M&A 돈 바람

입력
2019.12.18 04:40
수정
2019.12.18 10:3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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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이엔터테인먼트 제작한 영화 '악인전'은 336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에이스무비웍스 제공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제작한 영화 '악인전'은 336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에이스무비웍스 제공

영화 ‘터널’(2016)과 ‘범죄도시’(2017), ‘악인전’(2019) 등을 제작한 영화사 비에이엔터테인먼트가 지난 9일 제이티비씨콘텐츠허브에 인수됐다. 영화사 퍼펙트스톰필름(영화 ‘싱글라이더’ ‘PMC: 더 벙커’ ‘백두산’ 등 제작) 지분도 같은 날 제이티비씨콘텐츠허브에 전량 매각됐다. 제이티비씨콘텐츠허브는 종합편성(종편)채널 JTBC의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설립된 회사로 제이콘텐트리의 자회사다. 제이콘텐트리는 영화 ‘완벽한 타인’(2018)을 제작한 영화사 필름몬스터를 지난 4월 인수했다. 제이콘텐트리는 1년도 안돼 유명 영화제작사 3개를 거느리게 됐다.

국내 영상 콘텐츠 확보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영화사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수백 억원대의 돈이 오가는 인수합병 계약이 잇따르면서 새로운 머니 게임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페펙트스톰필름의 최신작인 '백두산'은 연말 극장가 최고 기대작 중 하나다. CJ ENM 제공
페펙트스톰필름의 최신작인 '백두산'은 연말 극장가 최고 기대작 중 하나다. CJ ENM 제공

◇OTT발 합종연횡에 몸값 껑충

비에이엔터테인먼트와 퍼펙트스톰필름 인수가격은 각각 312억원, 170억원이다. 필름몬스터는 200억원에 팔렸다. 충무로에서는 현재가치보다 높게 책정된 가격이라는 평가다. 비에이엔터테인먼트는 제이티비씨콘텐츠허브로 매각되기 전 여러 회사의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에이엔터테인먼트는 매각 대금을 영화 제작에 투여할 예정이다.

영화사 인수전의 포문을 먼저 연 곳은 IT 공룡기업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M이다. 카카오M은 지난 9월 사나이픽쳐스와 월광의 지분 81%와 41%를 각각 인수하며 최대주주가 됐다. 사나이픽쳐스는 영화 ‘신세계’(2012)와 ‘무뢰한’(2015) ‘아수라’(2016) 등을 제작했다. 윤종빈 감독이 설립한 월광은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2014), ‘검사외전’(2016), ‘공작’(2018) 등의 제작사다. 카카오M은 연예기획사 BH엔터테인먼트(이병헌, 한지민, 한효주 등 소속), 숲엔터테인먼트(공유, 공효진, 전도연 등 소속), 제이와이드컴퍼니(김태리, 이상윤 등 소속)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소속 배우만 130여명 정도다. 최근엔 문상돈(‘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ㆍ박진경(‘마이 리틀 텔레비전’)ㆍ김민종(‘진짜 사나이’) PD 등 영입에 성공했다.

영화사 인수를 둘러싼 싸움의 배경에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있다. OTT를 중심으로 영상 콘텐츠 시장이 재편되면서 엔터테인먼트 산업 판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제이티비씨콘텐츠허브는 앞으로 3년간 드라마 20편을 공급하기로 넷플릭스와 지난달 계약을 맺었다. 카카오M은 온ㆍ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넷플릭스 등에 대적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여름 극장가 화제작이었던 '공작'. 카카오M이 지난 9월 최대주주가 된 영화사 월광이 제작했다. CJ ENM 제공
지난해 여름 극장가 화제작이었던 '공작'. 카카오M이 지난 9월 최대주주가 된 영화사 월광이 제작했다. CJ ENM 제공

◇2000년대초 우회상장 붐 연상

제이콘텐트리와 카카오M은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전통의 강자 CJ ENM와 함께 영상 콘텐츠 시장 ‘빅3’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제이콘텐트리는 자회사 메가박스중앙을 통해 영화 상영 사업(국내 3위 멀티플렉스 체인인 메가박스)과 영화 투자배급 사업(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도 하고 있어 영화제작사 인수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여러모로 누릴 만하다. 충무로에서는 제이콘텐트리가 수천 억원대의 돈보따리를 아직 다 풀지 않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영화사들 몸값이 뛰면서 2000년대 초반 충무로를 휩쓸었던 우회상장 붐처럼 제2차 ‘쩐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해석도 있다. 2000년대 초반 시네마서비스와 강제규필름, 명필름, 싸이더스 등 유명 영화사들이 IT기업 또는 우수 중소기업과의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으로 대규모 자금 확보에 나선 것과 현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 영화제작자는 “10여년 만에 충무로에 돈 바람이 불고 있다”며 “오랫동안 올 수 없는, 거금을 만질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2000년대초 우회상장으로 충무로에 거금이 들어오긴 했으나 상장회사의 실적 쌓기용 영화 제작 편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한국 영화의 질적 하락을 불렀다는 평가가 따른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거금이 영화계에 유입되면서 심각한 양극화의 우려가 있다”며 “(영화계 전반에) 올바른 낙수효과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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