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업! K리그] “홈메이드 쌈장 선물 못 잊어” “상견례 프리패스권 고마워요”

입력
2019.12.05 06:00

<19> 팬들에게 전하는 편지

※ 올해로 37번째 시즌을 맞는 K리그는 아시아 최고수준의 프로축구 리그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스타들의 해외 이적과 기업 및 지자체의 지원 축소 등 악재가 겹치며 자생력을 찾아야 할 때란 평가입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 연중기획 ‘붐 업! K리그’에서 K리그 부활 방안을 심도 있게 모색합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길고 긴 암흑기를 빠져 나온 K리그를 살려낸 건 결국 팬이었다. K리그는 구단과 연맹, 선수들의 부단히 노력해 온 가운데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이 몰리며 ‘붐업’에 성공했다. 감독과 선수들은 그런 팬들에게 직접 감사인사를 전했다. 2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만난 이들은 저마다 팬들과 얽힌 추억을 전하며 앞으로 더 많은 노력과 팬 서비스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유상철 인천 감독은 밝은 얼굴로 “팬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내가 느슨해지거나 내려놓고 싶을 때 (마음을)다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달 중순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은 사실을 스스로 알린 그는 지금도 병마와 싸우고 있지만, 이날 그의 얼굴은 누구보다도 밝고 여유로웠다. 지난달 30일 열린 K리그1(1부 리그) 파이널B(7~12위) 최종전에서 K리그1 잔류에 성공한 그는 “2부리그로 떨어지지 않겠단 팬들과 약속을 지킬 수 있어 좋았다”며 “육안으로 봐도 경남 서포터보다 인천 서포터가 많았는데, 내가 선수였더라도 기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사실 그는 아프고 힘들다. 유 감독은 “2차 항암치료까지 받았는데, 수시로 컨디션과 몸 상태가 바뀐다”며 “그 상태를 어떻다고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그는 “팬들의 응원 메시지를 접하면서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마다 항상 소름이 돋는다”던 그는 “남은 약속 하나(췌장암 극복)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한 그는 ‘손 하트’를 그려 고마움을 함께 전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시상식 하루 전 열린 파이널A(1~6위) 최종전에서 울산의 준우승을 지켜봐야 했던 믹스 디스커루드(29ㆍ미국)도 이날 시상식장에서 팬들과 쌓은 추억을 하나 하나 꺼내놓으며 “단언컨대 내 축구인생 최고의 인기를 누린 한 해였다”고 되돌아봤다.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 소속으로 지난해부터 울산에 임대됐던 그는 노르웨이와 벨기에, 미국, 스웨덴 무대를 누벼왔지만 “어딜 가도 이런 팬들을 만난 적은 없다”고 했다.

가장 기억 남는 선물은 쌈장이다. 밥 먹을 때 꼭 쌈장을 먹는단 소문을 접한 팬들은 믹스에게 수시로 쌈장선물을 전했다. 식당에서나 쓸법한 14㎏ 초대형 쌈장부터, 집에서 직접 만든 ‘홈 메이드 쌈장’까지 모든 쌈장 선물을 기억한단다. 그는 “지난 여름 받은 옷 선물엔 ‘울산의 마지막 퍼즐조각, 믹스’란 메시지가 담겨 정말 감동했다”고 했다.

믹스는 “시즌 중간에 경기장을 옮겼는데 많은 팬이 와주셔 놀랐다”면서 “울산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1분에 (팬들이 알아봐 줘)한 번씩은 멈춰 서게 됐는데, 그 때 마다 ‘믹스 파이팅!’ ‘울산 파이팅!’을 외쳐주셨다”고 했다. 그는 “외국에선 못 했을 때 화를 내거나 비난도 많이 하는데, K리그 팬들은 한결같이 지지해주고 응원해 줘 고맙다”면서 “만약 울산에서 한 해를 더 뛰게 된다면 꼭 우승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같은 날 우승 드라마를 써낸 문선민(27)은 올해 원정 팬들이 늘어난 데 무척 놀랍고 감사했다고 한다. 실제 올해 전북 팬들은 수도권은 물론 춘천, 울산, 포항 등 원정 경기에도 많은 이들이 찾으며 ‘전국구 구단’으로 거듭난 모습이었다. 그는 “홈 경기뿐 아니라 원정에도 많은 팬들이 오신 걸 보니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 더 커지는 것 같아 감사하다”며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특별한 팬들을 콕 집어 고마움을 전한 선수들도 있었다. 한국영(29ㆍ강원)은 시즌 내내 공룡 옷을 입고 골대 뒤를 지킨 열성 팬 ‘공룡좌’ 권현(33)씨를 향해 “공룡좌 등장 이후 팀 성적이 좋아져 선수들도 고마워 했다”며 “특히 여름엔 정말 더우셨을 텐데, 멀리서 매번 경기장을 찾아주셔 감사했다”고 했다. 홍철(29ㆍ수원)은 “입단 때부터 사진을 찍어주시고, 사진첩을 선물해준 팬이 계신데 올해 경기력이 좋지 않아 죄송하다”며 “내년엔 환호하는 모습을 더 찍어주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내년 문선민 등과 상주 상무에서 활약하게 될 ‘예비군인’ 오세훈(20ㆍ아산)은 “재치 있게 ‘상견례 프리패스권’을 만들어 준 팬, 아산 홈경기는 물론 대표팀의 해외일정까지 찾아와 준 열성 팬께 고맙다”며 “상주 상무에서 더 성장하겠다”고 약속했고, K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김보경(30ㆍ울산)은 “이제 거의 유주(딸) 선물만 들어와서 ‘난 축구만 잘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며 ‘아빠미소’를 남겼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이주현 인턴기자

한국일보 뉴스 네이버 채널 구독하기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