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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환경까지 생각하는 ‘업사이클 기부’로 사랑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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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는 어린이집 가방 모아 약소국 시골마을에 선물
고장나 버려지는 장난감 고쳐 취약계층 아동 품으로
아이스팩은 기부 받아 재활용… 환경 보호 앞장도
“경기가 나빠서 돈을 모으기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갖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꼭 필요한 것들은 다 가졌기에 나머지는 나누고 싶습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 1억2,000만원을 내놓는 ‘키다리 아저씨’가 남긴 말이다. 그는 모은 돈을 기부하며 “절대 신상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해 얼굴과 이름은 물론 나이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2012년부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매년 1억2,000만원씩을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 나오는 독지가처럼 익명으로 기부해 키다리 아저씨로 불린다.
대개 자선 사업가들은 키다리 아저씨처럼 자신의 것을 아껴서라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려고 애쓴다. 이들 중에는 버리는 것조차 골치인 물건들을 찾아 다니며 모아 새 것처럼 닦고 가꾼 뒤 꼭 필요한 곳에 전하기도 한다. 가방이 없어 책을 들고 다니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위해 어린이집과 유치원 졸업 가방을 받아 전하기도 하고 작동이 멈춘 장난감을 새 것처럼 수리한 뒤 취약 계층 어린이에게 나눠준다. 그냥 버리면 환경을 오염 시키는 아이스팩을 받아 재사용하는 기업도 있다.
이들은 분리 배출하기도 어려운 제품을 오히려 택배 비용까지 물어가며 받는다. 깨끗이 닦고 고친 뒤 멀리 해외 빈곤 가정까지 전달해 기부 문화를 확산하고 환경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어린이집 졸업했다면 가방은 이곳으로
‘반갑다 친구야’는 경제 사정이 어려운 나라 어린이들에게 가방을 배달해 주는 곳이다. 전직 기자인 박주희(42) 사무국장은 캄보디아 라오스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가방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학원이나 유치원 등을 관둘 때 남는 가방을 보내면 좋겠다 생각했다. 경북 영덕의 친구 2명과 의기투합해 단체를 만들었고, 각자 남편들까지 합세해 6명이 배달부로 나섰다.
가방을 모으는 것만큼 해외에 전하는 것도 큰 일이었다. 많은 가방을 보내자니 배송비용부터 관세까지 절차도 복잡하고 부담이 많았다. 오랜 고민 끝에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대학과 행정기관, 봉사단체 등이 해외로 나갈 때 가방 택배를 부탁하자는 것이었다. 좋은 취지였으니 당연히 성공이었다.
가방을 전해줄 때는 마치 마을 잔치와 같은 운동회를 열어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이렇게 2012년 9월 베트남 아이들에게 가방을 첫 배달한 후 지금까지 방글라데시와 라오스, 동티모르,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 어린이들에게 가방 4만여개를 전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부모들이 졸업과 동시에 단체로 기부하기도 했다.
박주희 사무국장은 “학생들이 받은 가방에는 무슨 유치원, 무슨 어린이집 등 글자가 큼직하게 찍혀 있다”며 “한류 영향인지 이렇게 한글이 크게 찍힌 가방이 더 인기다”고 말했다.
가방 수령지는 고향인 경북 영덕군 영덕읍 강변길 186의 한 창고다. 6명의 배달부는 매달 이곳을 찾아 가방을 분류한다. 시행착오 끝에 원칙도 생겼다. 처음에는 장난감과 옷도 후원 받았지만 이제는 가방으로 단일화했다. 깨끗한 가방이면 사용하던 것도 상관없다.
박 사무국장은 “어린이들에게는 가방을 배달하고, 기부한 이들에게는 가방 받은 어린이 사진을 전달하고 있다”며 “후원자들이 가방 받은 어린이보다 더 환하게 웃는 것을 보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절반만 합체되는 로봇도 받는 ‘코끼리 공장’
쓰지 않는 장난감을 기부 받아 취약계층에 전해주는 울산의 코끼리공장. 네 살과 두 살의 두 자녀를 둔 이채진(36) 대표는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장난감을 재활용해 보겠다는 각오로 지난 2014년 문을 열었다.
대학에서 아동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장난감을 빌려주는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일했다. 우연히 고장 난 장난감을 고치기 위해 업체에 문의했다가 생각보다 수리를 해 주는 곳이 잘 없다는 사실에 직접 연장을 들고 나섰다.
그는 “600개가 넘는 장난감 제조회사 중 고쳐주는 곳은 5%도 되지 않았다”며 “심지어 아예 새 장난감을 보내는 곳도 있었다”고 말했다.
장난감을 잘 고친다고 소문이 나면서 이 대표는 여기저기 수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됐고 장난감을 소독해주는 봉사로 활동 반경을 넓혀 갔다. 못쓰는 장난감을 기부 받아 고쳐 취약계층에 나눠주면서 2014년 코끼리공장이라는 이름의 법인을 설립했고, 2016년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받았다.
코끼리공장도 장난감을 택배로 기부 받는다. 신청자에게 이삿짐 센터에서 쓰는 단단한 상자를 보내준다. 장난감이 가득 든 상자를 받는 비용은 공장 측이 부담한다. 양에 따라 직접 가서 받기도 한다.
택배로 여러 형태의 장난감을 받다 보니 간혹 내용물이 터져 말썽이란다. 특히 원목으로 된 교구와 책은 무게가 상당해 고쳐 나눠주기도 어렵다. 때문에 지금은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책은 받지 않는다. 부피가 큰 놀이기구 같은 장난감과 무거운 원목 제품도 정중히 사양한다. 대신 레고와 같은 블록이나 변신 합체 로봇 같은 조립용 장난감은 조각이 절반 이상 없어도 받는다.
코끼리공장 정성윤 과장은 “조립하는데 부품이 많이 없는데 보내도 되냐는 문의가 많다”며 “어른들의 생각과 달리 아이들은 조각 몇 개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잘 가지고 논다”고 말했다.
코끼리공장은 국내 아동뿐 아니라 해외 난민에게도 장난감을 기부한다. 또 3~5세 자녀를 둔 엄마와 아빠들로 구성된 ‘장난감 수리단’과 ‘뚝딱뚝딱 장난감 수리 교육’ 등 지역 공동체 환경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지난해는 장난감 소독수 ‘메가크린’을 자체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수익은 장난감을 받거나 나눠줄 때 드는 비용에 쓰고 있다.
장난감 수리는 이 대표를 비롯해 12명의 직원과 자원봉사자 10명이 맡고 있다. 자원봉사자 중에는 기계와 전기 관련 일을 했던 65세 이상의 퇴직자들이 많다.
이채진 대표는 “연간 만 개 이상의 장난감을 나이와 발달 수준에 맞춰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나눠준다”며 “형편이 어려운 아동에게 장난감을 선물하는 동시에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버리지 않는 것만도 환경 보호 아이스팩 기부
언제가 사용할 것 같아 냉동실 한 쪽에 모아두는 아이스팩은 막상 필요 없게 돼 버리려고 하면 골칫거리다. 녹으면 물컹해져 생활폐기물을 담아 버리는 종량제 봉투에 넣을 수 없고, 찢어서 물에 흘려 버리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 게 바로 아이스팩이다.
아이스팩의 내용물은 미세플라스틱과 유사한 고분자 화합물로 흘러 버리면 제대로 용해되지 않은 성분이 뭉쳐 하수관을 막을 수 있고 하수처리장에서 걸러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려동물 수제간식 전문기업 밥펫의 김기현 대표도 아이스팩을 잘못 버리면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걱정에 기부를 받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난해 9월까지 안 쓰는 물품을 기부 받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일했다.
김 대표는 “종량제 봉투에 버린 아이스팩은 쓰레기 소각장에서 태우는데 내용물이 물을 머금고 있는 특성 탓에 잘 타지도 않고, 묻어도 쉽게 썩지 않아 토양을 오염시킨다”며 “신선식품을 택배로 보내다 보니 아이스팩을 많이 쓰는데, 환경문제를 외면하기 어려워 기증 이벤트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밥펫은 지난 10월2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종량제봉투나 싱크대에 버리면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아이스팩을 착불 택배로 보내면 주문 받은 수제간식을 보낼 때 쓰겠다는 공지를 올렸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회사 공지는 SNS와 맘카페 등으로 퍼졌고 약 3주 동안 100건이 넘는 택배가 대전 사무실로 날아왔다.
김 대표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택배기사 분이 힘들어 할 정도로 기증이 들어왔다”며 “현재는 보관 장소가 없어서 아이스팩 기증을 받지 않고 있지만 나중에 다시 진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익금 일부로 유기견ㆍ유기묘를 후원하는 일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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