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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트리, 올해는 3D프린터로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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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상한 물건을 내 손으로… 본보 기자 3D프린터 체험기
고백하자면 기자는 어린 시절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또 꾸미는 일에는 젬병이었다. 찰흙, 블록을 만지며 즐거웠던 기억도 없다. 성인이 돼서도 달라질 것은 없다. 4, 5년 전 이맘때 아프리카의 신생아들에게 보내는 작은 털모자를 직접 뜨는 재능기부 활동을 해보겠다며 야심차게 뜨개질 키트를 샀다가 겨울이 다 가고 봄이 돼서야 겨우 털모자 1개를 완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3D프린터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깊은 곳에 묻어뒀던 ‘직접 만들고 싶다’는 도전욕이 꿈틀거렸다. 초등학생들도 체험활동을 한다고 하니 더 용기가 났다. 그래서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 ‘디지털대장간’을 찾았다. 서울시와 하드웨어 엑설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업체) N15가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누구나 무료로 3D프린터부터 목공과 레이저 장비 등을 이용할 수 있다. N15에서 3D프린터 등 교육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윤성환PD의 도움을 받아 기존에는 10시간 정도 진행하는 교육과정을 5시간가량 속성으로 듣고 실습해봤다.
◇내 첫 ‘작품’ 눈꽃 장식품, 모델링부터 출력까지 해보니
첫 실습 목표는 겨울 분위기에 딱 맞는 하얀 눈꽃 모양 열쇠고리로 정했다. 첫 단계인 눈꽃을 그리는 작업 즉 ‘모델링’부터 쉽지 않았다. 3D프린터에서 모델링 과정은, 일반 프린터로 생각하면 원고를 작성하는 단계와 같다. 출력할 물체의 크기와 모양을 그려내는 일이다. 정육각형을 중심으로 여섯 개의 뿔 모양이 더해진 눈꽃을 손으로 그리면 30초도 안 걸릴 텐데, 꼬박 40분이 걸린 끝에야 눈꽃 모델링 파일을 완성했다. 네모 하나 그리고, 각도를 조정하고, 하나하나 너무나도 단순해 보이는데 손가락에 쥐가 날 것 같았다. “마우스 없으면 못하는 작업이에요. 입체로 봐야 하는데 잘못 조절하면 물체가 뒤집히니까 조심하세요.” 화면 속 물체를 정면, 오른쪽, 왼쪽 등 각도를 바꿔가면서 보는 단순한 동작을 하는데도, 선생님(윤성환PD)이 보여주는 예시 화면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순간 사고가 정지됐다.
모델링 작업은 그림판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과 비슷했는데, 한 가지 달랐던 것은 ‘익스트루드 (Extrude)’ 기능이었다. “3D프린팅 모델링을 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기능”(윤성환PD)이라고 한다. 물체에 입체감을 주는 것으로, 해당 물체의 두께 혹은 깊이를 설정할 수 있다. 2D가 아닌 3D로 물체를 만들어내는 데 핵심 기능인 셈이다. 예를 들면, 눈꽃의 중심인 정육각형을 속이 빈 정육각형 틀로 만들어내려면 크기가 큰 정육각형 속에 작은 정육각형을 그리고, 그 두 정육각형 사이 공간만 ‘익스트루드’를 설정해야 한다. 전체 정육각형에 ‘익스트루드’ 설정을 하면 널찍한 정육각형 판이 출력돼 영 예쁜 모양이 안 난다.
다음은 슬라이싱 단계다. 일반 프린터를 사용할 때 출력 전에 용지 크기를 설정하고, 양면으로 할 지 컬러로 할지 등을 결정하는 과정과 같다. 다만 3D프린팅에서는 이 단계의 중요성이 훨씬 크다. 플라스틱이나 금속 등의 액체, 가루, 분말, 필라멘트사 등 재료를 밑에서 위로 한 층씩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출력하는 3D프린트의 특징을 계산하지 못하면, 설계와 다른 모형으로 출력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간이 비어있는 액자와 같은 틀을 출력한다면, 기둥이 없는 중간 부분이 무너질 수 있어서 ‘베드고정’을 해줘야 한다. 출력 이후 떼어낼 수 있는 정도로 얇은 보조기둥을 세워주는 식이다. 출력물이 프린트 바닥에 얇게 붙어서 떼어내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방지 하기 위해 ‘서포트’ 설정을 해서 보조 바닥판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눈꽃 모델링 파일을 플라스틱 기반 3D프린터로 옮겨 담아 출력 버튼을 눌렀다. 딱 40분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출력물이 쌓이는 판이 흔들리는 바람에 옆으로 옆으로 밀려 눈꽃이 다 어그러져버렸다. 두 번의 실패 끝에야 겨우 온전한 가로ㆍ세로 15㎝ 크기의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따로 마련해둔 열쇠고리를 연결하니 세상에서 제일 예쁜 하얀 눈꽃 모양 열쇠고리가 탄생했다. “이거 정말 제가 만든 거 맞아요? 너무 정교하죠?” 마음 속에는 치솟아 오르는 ‘뿌듯함’을 이기지 못해 내뱉은 말에 선생님과 사진기자 동료는 ‘고작 이거?’란 얼굴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웃기만 했지만, 여전히 자랑스럽다.
◇크리스마스 트리 도전, 그 결말은…. ’싱기버스’의 존재
미약하지만 한 번의 성공을 맛보고 나니 원래 목표가 떠올랐다. 선생님을 향해 “저 이제 크리스마스 트리도 모델링 하고 만들어봐도 되겠죠?”라고 당차게 말했다가 ‘뼈 때리는’ 답을 들었다. “음, 못하세요. 그리고 꼭 모델링 할 필요도 사실 없어요.” 이정도 모델링 실력으로는 당장 불가능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싱기버스(Thingivers)’도 모르는 3D프린터 생초보를 향한 가르침이기도 했다.
‘싱기버스’는 다양한 사람들이 무료로 모델링 파일을 공유하는 글로벌 플랫폼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모델링만 2,640개가 검색됐다. 이런 모델링 오픈소스 플랫폼은 3D프린터 문화의 대중화에도 한 몫을 했다. 3D프린터 장비 자체의 가격대도 갈수록 낮아져 요즘에는 개인 초보자용으로는 20만~30만원대면 구입할 수도 있다. 여기에 어려운 모양의 모델링을 직접 하지 않아도 누구든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설계도가 인터넷에 무궁무진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모델링 파일을 구해 3D프린터로 출력을 하고 이후 색칠하거나 다른 목공 제작품을 융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후 보정하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3D프린터로 피규어나 애니메이션 관련 장식품 만들기를 즐기는 김연수(가명ㆍ42)씨는 “내려 받은 모델링 파일로 출력을 하면 사실 ‘폼 나는’ 모형이 나오진 않는다”며 “거친 표면을 사포 등으로 다듬고 여기에 색을 입히는 과정들이 주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의 조언대로 싱기버스에서 인기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모델링 파일을 3D프린터로 출력해 보기로 했다. 기둥과 나뭇잎을 하나씩 따로 출력해 이를 마지막에 조립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모형 하나와 크리스마스 트리 모습을 연상시키는 통 모형 하나를 골랐다. 후자의 모양이 더 그럴싸해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출력시간만 14시간이 예상됐다. 그 긴 기간 어떻게 기다리나 하며 포기하려는 제자에게 선생님은 “프린터를 돌려두고 내일 찾아가셔도 됩니다”라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덕분에 올해 연말에는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품으로 집안을 꾸밀 수 있었다. ‘해피엔딩’.
◇어른들의 장난감이 된 3D프린터 “소소한 뿌듯함을 주니까요”
3D프린터로 집도 만들고 음식도 만들고 심지어 심장과 같은 장기, 세포 조직까지 출력해 낸다는 소식은 이전까지는 기자에게 신기한 해외토픽 같은 얘기였다. 직접 3D프린터를 짧게 경험해 보니 손재주 없는 사람에게 ‘메이커(제작자)’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기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여름 처음 3D프린터를 접한 대학생 장승훈(22)씨는 “3D프린터의 매력은 바로 실물로 내가 상상한 물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라며 “한번 배워보니 별 것 아닌 물건을 출력하는 데도 자기 효능감이랄까, 성취감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어릴 때 무언가 만들며 느꼈던 그 즐거움을 3D프린터로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장난감 이상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회사원 최수진(40)씨는 올해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우연히 무료로 주겠다는 보급형 3D프린터를 받아 왔다. 이를 활용해 조명 갓을 출력하고 전구를 사서 끼웠다. 목공 기술과 3D프린터를 함께 활용해 TV 받침대도 제작했다. 최씨는 “가죽이나 금속 공예 같은 것을 조금씩 배우기도 했고 만드는 일에는 원래 관심이 많았다”면서도 “3D프린터는 다른 공예 기술 등과 달리 ‘일상 생활 장비’ 같은 느낌이 난다”고 설명했다. 조금은 원시적일 수 있지만 기성 판매품 등과 접목하면 그럴싸한 나만의 생활용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3D프린터를 굳이 소장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어 이런 문화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3D프린터 등 각종 제조업 장비를 구비한 ‘메이커 스페이스’도 많아지고 기술 발전으로 사용법도 쉬워졌기 때문이다. 메이커 스페이스를 운영하면서 3D프린터 교육을 하는 쓰리디플러스의 김성휘 대표는 “불과 3, 4년 사이에 3D프린터의 편의사항이나 기능들이 많이 발전해서 이제는 기계가 알아서 해주는 기능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덕분에 초등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3D프린터에 관심을 갖고 있고 교육에도 수월하게 참여한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메이커 스페이스 업체 팹몬스터의 이현수 팀장은 “누구나 소비자이자 제조자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개인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 낼 수 있고, 이런 변화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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