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뇌물’ 카드 무산에… 공소시효 벽에 막힌 김학의 처벌

입력
2019.11.24 19:18
수정
2019.11.25 10:4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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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원대 뇌물 혐의, 성접대 혐의와 관련해 1심 무죄를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2일 오후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석방되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3억원대 뇌물 혐의, 성접대 혐의와 관련해 1심 무죄를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2일 오후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석방되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김학의(61) 전 법무부 차관의 무죄 판결을 두고 법조계가 소란스럽다. 검찰의 면피 기소에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로 호응했다는 말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과거 검찰과 경찰의 봐주기 수사로 ‘공소시효’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검찰이 세 번째 수사에서 공소시효의 벽을 넘기 위해 김 전 차관의 뇌물 범죄를 죄다 끌어 모았으나 일부 혐의에 무죄가 나오면서 핵심적인 성접대 사건은 유무죄 판단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24일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이른바 ‘별장 성접대’ 사건은 대부분 2006~2008년에 집중돼 있다. 김 전 차관은 윤씨에게 2006년 9월부터 2008년 2월 사이 13차례에 걸쳐 성접대를 제공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시기 받은 뇌물도 현금과 수표, 그림, 코트 등 총 3,1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1억원 이하의 뇌물 사건은 공소시효가 10년이라 공소시효 문제로 기소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검찰이 꺼내 든 카드는 ‘포괄일죄’. 여러 가지 범죄 행위를 연속 선상에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기소하는 방식이다. 특히 검찰은 2008년 성 접대에 동원된 여성 A씨가 윤중천 씨에게 지고 있던 채무 1억원을 김 전 차관이 해결해준 것에 주목했다. 이를 뇌물로 판단한 검찰은 김 전 차관에게 특가법상 제3자 뇌물 혐의를 적용해서 모두 1억3,000여만원의 뇌물수수 혐의로 묶어 기소했다. 1억원인 넘는 뇌물 사건은 공소시효가 15년이라 기소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A씨가 채무 1억원을 윤중천 씨에게 완전히 면제받았다고 볼 수 없다며 김 전 차관의 제3자 뇌물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뇌물의 규모가 1억원 이하로 줄었기 때문에 검찰이 주장한 15년의 공소시효를 인정할 없다고 판단한 법원은 결국, 성접대 사건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넘었다며 유ㆍ무죄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다른 사업가 최모씨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도 공소시효가 살아있는 차명 휴대전화 사용료 170여만원 부분 등이 무죄라는 이유로, 한 죄로 묶였던 법인카드 사용 등 4,700여 만원 뇌물은 죄를 묻지 않았다.

포괄일죄에 대한 법원의 보수적 판단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공짜주식을 받아 120억원 규모의 이득을 봤다는 진경준 전 검사장에도 같은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2005년 넥슨 비상장주식 넘겨받은 진 전 검사장 사건과 관련해 공소시효가 지난 점을 감안해 공소시효가 남은 △2008년 자동차 제네시스 취득 △2005~2014년 여행경비 수수를 하나의 사건으로 묶어서 기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제네시스 수수에 대해 “직무와 관련된 사건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받은 돈과 관련 사건이 추상적이고 막연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2005년 공짜 주식 취득에 대해 “포괄일죄를 구성하는 나머지 개별 범행 부분에 관해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면 공소시효가 완성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검찰 안팎에선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법원이 한 죄로 묶인 핵심 내용에 대해 판단조차 내리지 않은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부분 스폰서는 비교적 적은 금품ㆍ향응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며 공직자를 관리한다”며 “공소시효가 살아있는 일부에만 근거해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전체를 하나의 범행으로 보는 포괄일죄의 법리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장기간에 걸쳐 뇌물을 받는 ‘스폰서 사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권력기관과 스폰서의 유착 고리를 단죄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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