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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벌고 관심도 받고… 잠자는 모습까지 '일상 중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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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상을 중계하는 유튜브의 명과 암]
1인 방송서 일거수일투족 보여주기... 공부 장면만 중계하기도
시청자 “대리만족”… 유튜버들 ‘좋아요’ 늘리려 자극적 방송도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
1998년 개봉한 영화 '트루먼 쇼'에서 자신을 둘러싼 친구, 가족, 심지어 본인의 삶이 모두 TV 쇼의 일부였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 트루먼(짐 캐리)이 220개국 17억명의 관객들에게 하는 마지막 인사말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영화 속 트루먼처럼 주위 사람들이 내 삶을 훔쳐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유치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자발적 트루먼’들이 늘고 있다. 자신의 일생 생활을 자발적으로 생중계하는 사람들이다. ‘나혼자 산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관찰 예능을 넘어 누구나 개인 채널에서 오늘 먹은 음식, 만난 사람, 지나간 거리를 보여준다. 과거 게임, 먹방 등이 1인 방송의 주요 콘텐츠였다면, 이제는 생활 그대로를 보여주는 ‘일상 중계’ 방송이 대세가 되고 있다.
◇공부하고, 잠자는 모습까지 모두 생중계
"방송 관련 및 개인적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말 없이 배경 음악으로 장작 타는 소리만 난다. 화면에는 책상, 태블릿 PC, 탁상 시계와 공부하는 손만 보인다. 이런 방송을 실시간으로 수 백 명이 보고 있다. 단지 공부하는 모습을 중계하는 '공부 브이로그'다. 유튜브, 아프리카TV 등에서 이런 방송만 매일 수 십 개가 열린다. 인스타그램에서 매일 본인의 공부한 시간을 기록하는 '공스타그램'을 검색하면 무려 280만건의 글이 뜬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정우신(28)씨는 "저 사람들은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난 공부를 안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자기반성 차원에서 공스타그램을 본다"며 "방송에서 한 장의 종이, 한 권의 노트가 채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가 완성되어 간 듯한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각자 방송을 켜고 서로 공부하는 것을 확인하는 ‘캠스터디’도 인기다. 중계 캠을 켜고 정해진 시간에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늦거나 결석하면 벌금을 내는 등 기존 오프라인 스터디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본인 집이나 독서실에서 각자 공부를 할 수 있다.
잠만 자는 '잠방'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곤히 자는 사람 뿐 아니라 개나 고양이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까지 등장했다. 소재는 무궁무진하고, 연령대도 다양하다. 주말 서울 광화문, 여의도에서는 ‘셀카봉’을 들고 시위 현장을 실시간 중계를 하는 5060 중장년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취업포털 '사람인'이 우리나라 성인 남녀 3500여 명에게 유튜브에 도전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63%가 그렇다고 밝혔다. 20대는 70% 이상이, 30대는 60% 넘게 유튜브에 도전해 보겠다고 했다. 지난해 말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 초∙중∙고 1,200개교 학생 2만7,26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튜버라는 직업이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에서 5위를 차지해 처음으로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내 생활 공유하는 이유? ‘수익’과 ‘좋아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 일거수일투족까지 남들과 공유하려는 이유는 수익 때문이다. 특히 ‘보람튜브’를 운영하는 6살 유튜버가 강남 청담동 5층짜리 빌딩을 95억원에 매입했다는 소식에 개인방송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유튜브는 공식적으로 수익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조회 1건당 1원 정도의 수익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인기를 얻을 경우 영상 시작 전 광고 외에 특정 제품 간접광고(PPL)이나 브랜드 광고까지 가능해 수익은 천차만별이다.
개인방송 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 개인방송에 뛰어 드는 사람이 워낙 많아져 경쟁도 치열하지만 구독자 10만명에 이르면 전업으로 할 정도의 수익이 나온다"며 "한번 궤도에 오르기가 어렵지, 오르고 나면 탄력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누구나 본인의 개인 채널을 통해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정치 유튜브 채널인 ‘동해일출TV’를 운영하는 김창호씨는 "태극기 부대가 서울역에서 난리를 치는 등 나라에 분쟁이 너무 커져서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직접 방송을 켜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며 "기존 언론보다 자유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튜브가 민주주의에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방송이 인기를 얻는 이유에는 인간의 본능과 관련이 있기도 하다. 미국 UCLA 로렌 셔먼 박사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좋아요'를 받았을 때 뇌를 분석해 초콜릿을 먹거나 마약을 흡입할 때 활성화되는 측위신경핵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SNS에서 관심을 받는 것 자체가 마약에 중독이 될 정도의 기쁨을 주는 행위라는 설명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매일 저녁 글씨 쓰는 방송을 하는 유한빈씨는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해줘 감사하다"며 "SNS 시대에 태어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TV속 유재석보다 나랑 소통하는 도티가 더 좋아”
중계 방송을 보는 사람들도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것에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감정이입을 한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하루 아침에 전신마비 판정을 받은 박위씨의 유튜브 채널 '위라클'에서는 이런 반응을 쉽게 볼 수 있다. 박씨는 운동법, 여행 등 장애인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콘텐츠로 구독자만 8만명에 이르는 인기 유튜버다.
박 씨는 “장애를 겪은 사람들이 편하게 세상에 나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영상을 만들게 됐다”며 “삶을 포기하고 싶었는데, 본인보다 더 신체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연락이 올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한 시청자는 "몸이 불편해지신 이후로 집에만 계시려던 엄마가 위라클 영상을 보시곤 외식도 자주하고 막내딸과 커피숍 데이트도 하는 등 사람들의 시선 따위 신경쓰지 않게 되셨다"며 "특히 위라클의 일본 영상을 보곤, 내년 봄엔 제주여행 하기로 했다"고 댓글을 달기도 했다.
선망의 대상인 TV 속 연예인보다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으로 꼽힌다. 10년 전 만해도 초통령(초등학생들의 대통령)하면 '무한도전' '런닝맨' 등에서 활약한 유재석이었지만, 지금은 유튜브에서 나와 소통하고 놀아주는 유튜버 '도티'다. 30대 직장인 김승수씨는 "퇴근 후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동영상을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 한다"며 "유튜버가 입은 옷이나 먹었던 음식에 대해 물어보면 바로 알려주는 등 친한 친구같다"고 말했다.
◇”악플에 상처받고, ‘좋아요’에 목매고”
하지만 실시간으로 내 생활을 공유할 수 있다는 중계방송의 특징이 오히려 문제가 되기도 한다. 어떠한 거름망 없이 그대로 송출된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해 3월 부산에서 실시간 방송을 하던 30대 여성 진행자는 방송 중 스스로 투신해 숨지기도 했다. 당시 ‘자살 예고 방송’이라고 이름을 써놓고 방송을 했는데,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반신반의 하거나 조롱을 한 것이다. 이에 격분해 그는 자신이 키우던 반려견을 안고 원룸에서 떨어졌다. 이 장면은 그대로 생중계돼 논란을 빚었다.
가짜 뉴스도 문제다. 조회수를 얻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퍼진다. 최근 일부 유튜버가 개 구충제인 ‘펜벤다졸’이 당뇨병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려, 의사 등 전문가들이 엄청나게 경고를 하고 있음에도 중증 당뇨병 환자들 사이에서 이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계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초상권 문제도 발생한다. 강남이나 홍대입구 등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서는 개인방송을 금지하는 가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공한 유튜버라고 해서 화려한 면만 있는 것도 아니다. 5년 간 뷰티 크리에이터로 활발하게 활동해 온 심정현(밤비걸)씨는 돌연 "학업에 집중하면서 나를 채워가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1년간 휴식기를 가졌다. 최근 심씨는 '유튜브를 잠시 그만두었습니다'란 책을 내고 개인 방송에 복귀했다.
심씨는 "처음에는 제품을 소개하면 품절되는 등 세상에 영향을 많이 끼친다는 점에서 인생이 즐거웠다”며 “하지만 점점 화면 속의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지, 인간 심정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에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악플과 ‘좋아요’에 대한 부담도 컸다고 한다. 그는 “선플과 악플이 9대 1정도지만 꾸준하게 계속 들으면 작은 이야기도 크게 들리기 마련”이라며 “영상을 기획하는데 있어서도 ‘어떻게 하면 나를 좋아해줄까’ 같은 자극적인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기 의견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그는 다시 개인방송을 켰다. 그는 개인방송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크리에이터로서 일을 하다 보면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쓸 수 밖에 없어요. 내 자신을 잃지 않게, 나를 진정으로 아는 주위 사람들과 자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해요.”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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