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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상징 ‘슈리성’ 잿더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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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키나와(沖繩)현 나하(那覇)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류큐(琉球)왕국의 성(城)터 및 관련 유산군’에 복원된 슈리(首里)성에서 지난달 31일 화재가 발생해 정전(正殿) 등 주요 건물이 전소했다. 류큐왕국을 상징하는 건물이 하룻밤 사이에 불기둥에 휩싸여 잿더미로 변한 모습에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40분쯤 슈리성 정전에서 연기가 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소방차 30대가 출동해 진화에 나섰다. 슈리성의 중심 건물인 정전에서 발생한 불은 인근 북전(北殿)과 남전(南殿)으로 번졌고 오후 1시30분이 되어서야 진화 작업이 완료됐다. 전소한 정전과 북전, 남전을 포함한 7개 동 최소 4,800㎡가 소실됐다.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었다.
슈리성에서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일정으로 류큐왕국 시대의 의식을 재현하는 ‘슈리성 축제’가 진행 중이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화재가 발생한 이날 새벽까지 행사를 준비하는 작업이 진행됐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자세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불이 시작된 정전을 비롯해 주요 건물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는 등 소방 방재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피해를 키운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슈리성은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번성한 류큐왕국의 수도인 슈리(현 나하)에 세워졌다. 축성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가장 오래된 유적은 14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류큐왕국을 상징하는 유적으로 대표 건물인 정전은 류큐왕국의 최대 목조 건축물이다. 건물 구조와 용 모양으로 장식된 기둥은 일본과 중국에서 볼 수 없는 류큐왕국 고유의 형식이다.
류큐왕국은 1429년 건국된 독립왕국으로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해상에 위치해 중국에 조공을 바치면서 중개무역으로 번성했다. 1879년 마지막 왕인 쇼타이(尙泰) 때 메이지(明治) 시기 일본에 강제 병합되면서 450년 만에 멸망했다.
슈리성 정전은 1933년 일본 국보로 지정됐으나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인 1945년 오키나와 전투 당시 미군의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됐다가 1992년부터 정전을 포함해 전체 건물이 차례로 복원됐다. 이번에 전소한 슈리성은 포함되지 않지만 2000년 슈리성터를 포함한 류큐왕국의 성터 및 유산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슈리성은 2017년 285만명의 관광객을 포함, 지난해 12월까지 국내외 방문객이 6,000만명에 이르는 오키나와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오키나와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 대부분이 방문하는 곳으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명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날 화재로 오키나와 주민들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화재 현장을 지켜보던 60대 남성은 “슈리성은 오키나와 사람들 마음의 버팀목이다. 화재를 믿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다른 남성도 “전후 겨우 슈리성을 복원했는데 다시 화재가 일어났다고 하니 유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슈리성 복원에 참여했던 다카라 구라요시(高良倉吉) 류큐대 명예교수는 “30여년 전부터 복원 작업에 종사해 온 많은 사람의 지혜가 담겨 있다”라며 “건물뿐 아니라 내부 도구 등도 처음 건축 당시 그대로 복원했는데,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슈리성의 재건을 위해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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