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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자기들이 조국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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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좀비’라는 용어를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현실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나서도 마르크시즘에 집착하는 이들이 그 누군가에게는 좀비처럼 보였나보다. 이런 풍자를 풍자로 받아넘기지 못하고 없애버리겠다면, ‘좌좀’을 입만 살아있는 ‘입진보’라고 바꾸어 부르면 또 괜찮다는 말인가? 정치적 올바름을 결벽하게 적용하면 풍자가 질식된다.
지난 칼럼의 수신자들은 ‘서초동에는 김용균이 없다, 김용희가 없다, 톨게이트 노동자가 없다…’라고 냉소하면서, 서초동에 모인 시민들을 ‘멍청이, 파시스트, 노예’라는 표현으로 혐오했던 좌파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풍자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랬다. 그래놓고서 페이스북 담벼락에 ‘누가 그랬어? 누가? 네가 그랬어? 아무도 안 그랬잖아’라며 어리둥절해 하는 위선이라니! 자기들이 한 입으로 두말하는 조국도 아니면서.
서초동의 시위 현장에는 “촛불집회에 노동조합 깃발이 안 보이니 상쾌하다”라는 반응도 물론 있기는 있었다. 노조에 대한 적개심은 백만 명 속에 별사람이 다 끼어 있기에 나온 돌출적인 것이 아니다. 먼저 기득권자가 되어버린 노조에 대한 허다한 실례와 해소되지 않은 비방이 있다. 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첫 외부 일정으로 방문한 곳은 8,0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희망했던 인천국제공항이었다. 그때 정일영 인천공항 사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으나,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는 그 방침에 반대했다. 서초동의 시민은 이런 노동조합에 적대적이지 노동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좌파의 고민은 서초동의 대중들을 자신의 수원(水源)으로 유인하는 수로를 파는 것이지, 그들을 자신과 분리하는 데 있지 않다.
좌파는 광장과 그곳에 자발적으로 운집한 시민들의 운동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들을 민중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좌파가 광장을 싫어하게 된 데에는 광장이 여태껏 좌파의 전능감을 손상시켜 왔던 역사가 있다. 1960년 4ㆍ19, 모든 촛불집회의 기원인 2002년 미군장갑차사건 촛불집회, 2016년에 시작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는 모두 좌파와 무관한 중고등학생과 여대생이 시작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운동권 학생의 희생이 시발이지만, 승리를 이끈 것은 카리스마 높은 두 지도자(김대중ㆍ김영삼)와 대통령 직선제를 열망했던 대중의 참여였다. 오히려 좌파 운동권이 대중의 정동과 괴리가 있다는 것은 1980년 5월의 ‘서울역 회군’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광장에 시민이 모일 때마다 정세를 남김없이 분석해 왔다고 자신한 좌파 지식인의 전능감은 무참하게 부서진다. 광장은 언제나 좌파의 무능을 드러내는 장소였다. 이 때문에 좌파는 광장 공포증을 갖게 되었고, 거기 모인 시민들에게 냉소적이게 된다. 김지하의 자서전 ‘흰 그늘의 길’(학고재, 2003) 1권을 보면, 그는 엘리트 운동권이었으면서도 4ㆍ19혁명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랬을 뿐 아니라, 자취방의 이삿짐을 옮기다가 4ㆍ19 시위 행렬과 갑작스레 조우한 그는 멀뚱히 구경만 하면서 참여를 의식적으로 거부했다. 그는 시위 당일에 느꼈다던 감상을 자서전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이념도 지도노선도 없는 폭발이야! 혁명이라고 할 수 없어.” 김지하나 입진보나 대중을 불신하기는 마찬가지다.
좌파는 자신들의 이념적 지도나 기획 없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개ㆍ돼지’라고 부르고 싶어 한다. 그것의 순화된 표현이 멍청이ㆍ파시스트ㆍ노예일 것이다. 좌파 근본주의자가 생각하는 민중은 대중이 아니라 그들의 기준에 알맞게 선발된 선민을 뜻하며, 선민의 다른 이름이 당파성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의 대중은 정치 이념보다는 자신의 삶과 긴밀히 연계된 일상적인 화제로 이합집산하는 정치를 펼친다. 다시 강조하건대 서초동의 시위 현장에서 노조 배척 언사가 나온 것은 돌출적인 것이 아니다. 외부 세력(운동권) 배척 현상은 박근혜 탄핵의 도화선이 된 이화여대 정유라 시위(2016)와 성주의 사드 반대 투쟁(2016)에서 이미 징후가 나타났다. 대중과 좌파의 거리는 앞으로 점점 더 넓어질 것이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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