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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당신의 한 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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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색을 제일 좋아하세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뭔가요?” “노래방 18번이 뭐예요?” 이런저런 자리에서 누구나 가끔 받는 질문이다. 대답도 늘 준비돼 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떨까?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뭐예요?” 좀 웃기고 엉뚱할까? 생각해 보니 그런 물음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보통 상대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묻는 건 취향이나 성격 등이 궁금해서인데 왜 거기에 ‘단어’는 없었을까.
지난 한글날을 즈음해 한 일간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다. 세계 60개국 세종학당에서 한국말을 배우는 외국인 1,200여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를 물은 결과다. 1등은 뭐였을까. 짐작한 대로 ‘사랑’이었다. 2등은 ‘안녕’, 그 다음은 ‘아름답다’였다. ‘엄마’ ‘누나’ ‘오빠’ 같은 호칭도 상위에 꼽혔다.
국어학자들은 아름답게 들리는 우리말은 대체로 유성음인 ‘ㄴ’, ‘ㄹ’, ‘ㅁ’, ‘ㅇ’이 들어간 게 많다고 말한다. 부드러운 울림과 소리의 잔류감이 좋다. 마찰음이자 치조음인 ‘ㅅ’도 싱그럽고 솟아오르는 어감이 좋다고 한다. ‘사랑’은 그런 자음들을 갖고 있다.
그런데 좋아하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한국어에 대한 여러 조사 결과를 보면 특이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강(江)’ ‘산(山)’ 처럼 한자어가 아닌, 한 글자로 된 순우리말이 유독 많다는 것이다. 세종학당 수강생이 꼽은 단어 중에는 ‘꿈’ ‘봄’ ‘꽃’ ‘달’ ‘별’ ‘눈’ 같은 것이 있었다.
처음으로 한 글자 우리말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됐다. 그러고 보니 우리네 인생에서 소중한 것,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하는 것, 이 세상을 이루는 아름답고 위대한 것, 매일 마주치는 것들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두 한 글자 단어가 많다.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우리 신체의 한 부분이나 대자연, 우주, 먹거리 등이 유독 한 글자로 이뤄진 게 많구나. 그래, ‘삶’이란 단어 자체도 한 글자이거늘.
세상살이 이치가 한 글자 순우리말로 술술 풀어진다. ‘땀’ 흘리며 ‘일’해야 ‘돈’을 벌고, ‘밥’을 먹어야 ‘똥’을 싸고, ‘잠’을 자야 ‘꿈’을 꾸고, ‘봄’이 오면 ‘싹’이 트고, ‘비’가 내리면 ‘꽃’이 피고, ‘피’와 ‘뼈’가 잘 있어야 ‘몸’이 살고, ‘뜻’을 품어야 ‘길’이 열리고, ‘땅’을 파야 ‘물’이 나오고, ‘벗’과 ‘짝’은 ‘곁’에 있어야 좋고, ‘말’과 ‘글’을 배워야 ‘힘’이 생긴다. 세종대왕께서 너무 귀중한 것들은 자주 쉽게 부르라고 한 글자로 이름 지으신 게 아닐까.
사람의 마음결을 읽는 ‘마음사전’으로 잘 알려진 김소연 시인은 작년에 ‘한 글자 사전’이란 책을 썼다. 국어사전을 다 뒤져 사소한 듯한 310개의 한 글자 단어를 찾아내 곰곰 생각하며 의미를 붙였다. 그 중에 하나.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쪼개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을 주어 키워 가며 알아내는 것.’ (정답은 아래 중에 하나)
우리는 한 글자 순우리말을 얼마나 많이 댈 수 있을까. 즉석에서 열 개 이상 말하기도 사실 쉽지 않다. 소중하고 각별하고 아름답지만 무심히 지나치며 잊고 지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생각나는 것들을 여기 써 본다.
해 달 별 눈 비 낮 밤 놀 봄 싹 씨 꽃 빛 볕 흙 땅 터 숲 들 돌 풀 물 불 내 섬 샘 뜰 집 잠 꿈 삶 쌀 벼 겨 밥 빵 일 땀 똥 힘 말(語, 馬, 斗) 글 뜻 설 딸 옷 춤 멋 맛 붓 먹 실 옷 칼 콩 밀 팥 무 체 꿀 뿔 털 윷 숨 몸 눈 코 잎 귀 손 발 목 젖 볼 배 등 낯 넋 뼈 피 키 품 틈 옆 곁 겉 안 꼴 틀 담 벽 멱 개 소 떼 결 겹 짝 벗 남 끝 돈 빚 둘 셋 넷 열…. 아, 가장 소중한 세 개를 빼 먹었다. ‘나’, ‘너’, 그리고 ‘술’.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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