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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조국대전’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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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조국대전’이 조국 전 장관의 장관직 사퇴로 일단락되었다. 한국 사회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2019년의 조국대전은 여러모로 전례 없는 격돌이었다.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은 그 시기와 범위, 물량 면에서 모두 사상 최초 및 최대였고 후보자로 지명된 순간부터 천문학적인 수의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조국대전의 특이함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문제가 있는 장관 후보자는 부지기수였다. 자격미달 사유도 다양해서 논문표절,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탈세, 병역기피, 음주운전, 성범죄 등은 이미 공직배제 7대 원칙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흥미롭게도 조국 전 장관의 경우 위 항목에 해당하는 의혹은 없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해외순방 때 ‘혼밥’ 기사를 쏟아낸 언론이야 어차피 현 정부에 적대적이라 하더라도 행정부 외청에 불과한 검찰이 대놓고 대통령의 인사권에 조직적으로 저항한 경우도 여태 없었다. 정의감 때문에? 웃기는 얘기다.
놀랍게도 조국은 이 유례없는 상황을 어느 정도 예견한 것 같다. 지난 2010년 출간된 대담집 ‘진보집권플랜’에서 조국은 검찰이 개혁에 반발해 대통령이나 집권당 간부의 비리정보를 활용할 수도 있음을 이미 지적했다. 이듬해 어느 토크쇼에서는 개혁적인 장관이 들어설 경우 검찰이 뒷조사로 낙마시킬 가능성도 제기했다. 검찰 개혁의 사명을 띠고 청와대에 민정수석으로 들어갈 때부터 조국은 아마 어떤 형태로든 자신을 둘러싼 대회전이 벌어질 것임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67일 동안 지속된 조국대전의 참상은 조국 본인도 상상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공권력과 언론이 무지막지하게 한 가정을 뭉개고 짓이긴 행태는 야만적인 테러와 다를 바 없었다. 조국 일가에 아무리 큰 죄가 있다 해도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의 동기 또한 매우 의심스럽다. 자기 내부의 공문서(공소장) 위조는 가벼운 사안이라며 그냥 넘어간 검찰이 조국 부인의 대학 표창장 위조의혹은 석연찮은 의혹만으로도 특수부를 투입해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기소까지 했으니, 누구라도 표적수사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언론보도만 보면 최근 그 정체가 밝혀진 화성 연쇄살인범의 죄가 훨씬 더 가벼워 보일 지경이다.
공권력과 언론이 합세해 이렇게 한 가족을 몰아붙이면 누군가는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지도 모른다. 검찰과 언론은 이미 ‘전과’가 있는 공범관계가 아니던가.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이 10년 전의 노무현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꼭 지키겠다고 다짐한 것은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사람을 살리고 싶었다. 검찰 개혁이니 적폐청산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는 솔직히 뒷전이었다. 그냥 잠자코만 있으면 또 누군가 죽어나가겠구나, 내 한 목소리라도 보태서 사람을 살리자는 절박함이 훨씬 더 컸다. 내가 외친 ‘조국수호’는 장관으로서의 조국을 지키자는 게 아니라 한 생물학적 인간으로서의 조국을 지키자는 말이었다. 서초동에는 그런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인간에 대한 예의, 휴머니즘의 문제이다. 그 어떤 대단한 이념이나 정의감이라 해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예전의 폭압정권을 떠받쳤던 정치군인, 정보기관 등은 아쉬운 대로 처벌과 청산의 과정을 거쳤으나 그 뒤에서 법이라는 이름으로 적폐를 옹위하고 정당화했던 검찰은 여전히 문민통제를 피해 다녔다. 그렇게 괴물이 된 검찰이 이제는 정치의 전면에 나서 자신들만의 ‘검찰공화국’을 꿈꾸고 있다. 윤석열 총장은 차라리 사람에 충성하느니만 못한 괴물조직의 수장으로 전락했다. 이미 조국 장관의 ‘피맛’을 본 검찰이 내친걸음으로 자신들의 성역을 무너뜨리려는 헌법기관(국회든 청와대든)을 조국 다루듯 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진보집권플랜’이 나오던 무렵에는 촛불혁명과 박근혜 탄핵으로 진보집권이 갑작스레 이루어지리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국은 당시 진보정권 예비내각의 ‘드림팀’ 일원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5주라는 짧은 법무부장관 임기 동안 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하지만 지난 70년 동안 하지 못했던 주요 조치들을 단행한 걸 보면 이미 9년 전에 그를 드림팀으로 지목했던 세간의 안목이 전혀 틀리지는 않았던 셈이다. 훗날 언젠가 대한민국의 역사책에도 검찰이 확실한 문민통제 속에 제자리를 찾았다는 기록이 남을 것이다. 그 출발점은 특수부를 축소하고 수사관행을 고치는 등의 장관발 개혁안이 아니라, 가족이 인질로 잡힌 채 언론과 검찰의 십자포화를 맞으며 조국 홀로 지옥 같이 버텨낸 67일의 하루하루였다고 나는 기억하고 싶다. 눈부신 조국의 하늘을 수백만의 촛불과 함성으로 수놓았던 기해년 가을의 전설과 함께 말이다. 행여 지금 진보 ‘재집권’ 플랜을 꿈꾸는 이가 있다면 나는 꼭 이 유산부터 물려주고 싶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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