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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세습 ‘금수저’ 시작은 신석기시대?

입력
2019.10.19 13:00
수정
2019.10.19 16:4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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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00년 무덤 안 보니 가족 간에도 ‘부익부빈익빈’

청동기 시대 때 무기를 만드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게티이미지뱅크
청동기 시대 때 무기를 만드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게티이미지뱅크

기원전 2000년 청동기 시대 때도 이른바 ‘금수저’가 있었다. 부의 대물림은 남성에게만 이뤄졌고, 한 가구 내에서도 ‘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막스플랑크인류사과학연구소와 튀빙겐대, 루드비히 막시밀리안대 등의 공동 연구진은 이런 연구 결과를 지난 10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하면서 “청동기 시대 사회 구조가 생각보다 더 복잡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공동 연구진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인근 레흐 계곡에서 발굴된 유골의 유전정보(DNA)를 살펴봤다. 1980년대부터 아우크스부르크 외곽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에선 기원전 2800~1700년대의 유골이 다량 발견됐다. 청동기 시대 레흐 계곡에 살던 사람들은 가구마다 작은 농장을 갖고 있었고, 농장에는 가족 구성원을 위한 공동묘지가 딸려있었다. 연구진은 13개 공동묘지에서 나온 104명의 유골을 분석해 최대 5세대까지 이어지는 6개 가구의 가계도를 그렸다. 무덤에서 나온 단검과 화살촉 등은 당시 레흐 계곡에 살던 이들이 부유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그러나 모두가 부유함을 누린 건 아니었다. 공동묘지에선 넓은 장소에 구리 단검과 도끼 등 많은 수의 부장품을 갖고 있는 남성 무덤과 구리 머리장식ㆍ발찌 등 당시 귀한 장식품이 함께 묻힌 여성 무덤, 그리고 변변한 부장품이 없는 무덤이 함께 발견됐다. 연구진은 “경제적 지위나 생물학적 뿌리와 상관없이 모두가 같은 가족으로 여겨졌지만 가정 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이 뚜렷했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부장품이 변변치 않은 무덤의 주인이 하인이나 노예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어 “청동기 사회의 복잡한 가족 구조는 고대 그리스ㆍ로마 시대와 매우 비슷하다”며 “사회적 불평등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스ㆍ로마 시대의 가족은 노예와 하인도 포함한다.

유골 치아에 포함된 스트론튬의 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 구리 장식품과 함께 묻힌 여성들은 레흐 계곡에서 수백㎞ 떨어진 곳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의 치아 동위원소는 아우크스부르크가 있는 독일 남부보다는 옛 동독이나 체코 지역에서 발굴된 유골의 것과 비슷했다. 동위원소는 양성자 수(원자번호)는 같지만 질량이 다른 ‘쌍둥이 원소’다. 토양 성분이나 섭취한 음식 등에 따라 치아에 쌓인 동위원소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분석하면 그 사람이 살았던 당시 환경을 유추할 수 있다. 연구진은 부계 사회에서 부유한 가문 간에 맺은 ‘결혼 동맹’의 일환으로 타지에서 온 여성이 시집살이를 했을 것이라며, 이번에 살펴본 104명의 유골 중 높은 지위를 차지한 남성의 자손 모두가 남성으로 나온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가족 내에서 핵심 위치를 차지한 남성의 자식 중 여성은 성인이 됐을 때 모두 결혼을 위해 가족을 떠났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단일 가구 내에서도 사회ㆍ경제적 차이가 존재했고, 여러 세대에 걸쳐 유지됐다는 게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흔히 석기 시대까지 이어져 온 평등한 사회가 청동기 시대에 들어 계급사회로 변해갔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연구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영국 카디프대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진은 2012년 5월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7,000년 전 농업이 시작된 신석기 초기 때부터 부의 대물림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유럽 중부 지역에서 발굴한 신석기 시대 유골 300여구를 대상으로 치아 속에 남아 있는 스트론튬의 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다.

가족 내에서도 불평등이 있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앞선 연구내용과 판박이다. 연구진은 자귀(잘라낸 원목을 가공하는 데 쓰는 도구)가 부장품으로 나온 유골들에선 스트론튬 동위원소의 다양성이 낮게 나왔고, 자귀가 부장품으로 나오지 않은 유골들에선 스트론튬 동위원소의 개수가 많이 나온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자귀를 가진 사람들은 거주지와 가까운 비옥한 땅에서 자란 농작물을 먹고 산 반면, 자귀를 가질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떠돌아다녔고 먼 곳까지 나가 농사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또 자귀를 가진 가구는 비옥한 토지를 계속 사용했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해당 공동체의 여성들은 다른 지역 출신이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부계 중심 사회가 이미 존재했고, 그 안에서 부의 대물림 역시 이뤄졌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된 부의 불평등이 산업시대까지 이어지며 점차 심해졌지만 그 씨앗은 이미 신석기 시대 때 뿌려졌다”고 주장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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