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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조국대전’과 페르미 추정법

입력
2019.10.08 18:00
25면
사람들은 조국이 무죄라고 확신해서라기보다(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도 없거니와) 검찰이 유죄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촛불을 들었다. 조국 장관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건 개인 비리의 문제이지만 검찰의 문제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공권력이 작동하는 시스템의 문제라 훨씬 더 심각하다. 사진은 5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서 열린 ‘제8차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 집회 현장. 배우한 기자
사람들은 조국이 무죄라고 확신해서라기보다(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도 없거니와) 검찰이 유죄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촛불을 들었다. 조국 장관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건 개인 비리의 문제이지만 검찰의 문제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공권력이 작동하는 시스템의 문제라 훨씬 더 심각하다. 사진은 5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서 열린 ‘제8차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 집회 현장. 배우한 기자

엔리코 페르미는 이탈리아가 낳은 갈릴레오 이후 최고의 과학자이다. 페르미는 물리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가장 직관적이며 간단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정확한 데이터 없이 또는 엄밀하고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고도 합리적인 추론만으로 대략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페르미 추정법’이라고 한다.

페르미 추정법이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지난 2016년의 촛불집회였다. 참가자 수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며 가장 간단한 추산법으로 페르미 추정법이 거론되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단위 면적당 몇 명이나 모여 있는지 그 밀도를 구해서 시위대가 점유한 지역의 넓이를 곱하면 된다. 경찰은 이미 이런 원리로 ‘경찰 추산’ 결과를 발표해 왔다. 보다 정확한 참가 인원을 알고 싶다면 참가자들이 지닌 스마트 기기의 무선 통신을 이용하거나 안면인식 기능이 있는 드론(인권침해 가능성을 잠시 무시하고)을 띄우면 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 이유는 집회 참가자의 정확한 숫자가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한 추정을 넘어서는 정확한 사실 관계가 필요한 곳은 정작 따로 있다. 두 달 넘게 이어진 이른바 ‘조국대전’을 지탱하는 뼈대는 몇몇 어림추정의 연속일 뿐이다. 톱클래스 연예인만큼 유명한 서울대 교수의 딸이 고등학교 때 제1저자로 논문을 썼고 이후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논문의 제1저자가 되는 과정에 청탁이 있었거나 그 논문이 대학 입학에 결정적이었으리라는 어림추정을 할 수도 있다. 10억원이라는 돈이 사모펀드에 들어갔고 그 펀드가 투자한 회사가 관급 공사를 수주하며 이익을 냈다면, 혹시 그 과정에 투자자가 민정수석이라는 사실이 작용하지 않았는지 또는 펀드 운용사의 실소유주가 조국 장관의 직계 가족이 아닌지 어림추정을 할 수도 있다. 특히나 비슷한 과정에서 범죄 사실을 많이 봐 왔던 검찰이라면 본능적으로 그런 의혹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와 기소는 어림추정만으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영역이다. 사실 관계들 사이의 의혹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으면 마치 실험 데이터도 없이 중력파를 발견했다고 논문을 쓰는 것과도 같다.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통용되는 규칙이 다른 모든 분야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리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차떼기도 해보고 댓글 조작도 해보고 관제 데모도 동원해 본 정당은 다른 모든 정당들도 그런 사고 방식으로 정치를 하는 줄 안다. 조국 장관을 둘러싼 논란에 국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는 밝혀진 팩트들 사이에 의혹으로 남아 있는 빈 공간을 우리 일상에서 보고 들었던 온갖 편법과 비리가 쉽게 어림추정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검찰과 언론은 이점을 악용해 큰 재미를 봤다.

검찰이 사상 최대 규모, 최대 강도로 조국 일가를 수사한 정확한 속내를 누가 알겠나. 나도 여기서는 페르미 추정을 흉내 낼 수밖에 없다. 첫째, 이렇게 의혹이 많은 사람이 더 이상 장관직을 수행해서는 안 되니 범죄를 단죄해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청와대 눈치도 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수사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둘째, 검찰 개혁을 주도하는 장관을 어떻게든 낙마시켜야 검찰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으니 다소 무리하더라도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강도 높은 수사로 괴롭힌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첫째 추정은 김학의 사건 때문에 힘을 잃는다. 범위를 좀 더 넓혀보면 장자연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 등을 뭉개고 넘어간 역사를 설명할 길이 없다. 검찰이 집단적으로 갑자기 개과천선했을 수도 있으나 대한민국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은 대체로 둘째 추정에 동의한다. 근거가 없지도 않다. 지금까지 말을 바꾼 횟수로 치자면 공소장까지 바꾼 검찰쪽이 아마 더 많을 것이다. 식사 메뉴가 짜장면이 아니라 한식이라고 신속하게 정정발표문을 낸 검찰이 검찰발 허위 보도(예컨대 조국 부인 신상과 관련된)를 정정하는 데에는 그리도 인색하니, 평범한 국민들의 인권 따위는 검사님 드시는 짜장면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조국이 무죄라고 확신해서라기보다(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도 없거니와) 검찰이 유죄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촛불을 들었다. 조국 장관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건 개인 비리의 문제이지만 검찰의 문제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공권력이 작동하는 시스템의 문제라 훨씬 더 심각하다. 나쁜 시스템은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기도 하고 주가 조작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대통령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만큼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다른 전직 대통령은 죽음으로 내몰았다.

서초동으로 촛불을 들고 나온 사람들은 지금까지 경험으로 체화한 나름의 추정법으로 검찰의 유죄를 확신한다. 어리석은 백성들의 길거리 정치라 치부하기에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짊어져야 했던 고통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이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길거리의 바보가 될 참이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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