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돼지 대란’ 가상보고서

입력
2019.10.04 04:40
31면
경기지역 양돈 농가 곳곳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판정이 이어져 전국 일시이동중지명령(스탠드스틸)이 연장 발효 중인 26일 오후 강원 춘천시 한 양돈 농장에서 돼지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고 있다. 해당 사진은 차단 방역선 밖에서 망원 렌즈로 촬영했다. 연합뉴스
경기지역 양돈 농가 곳곳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판정이 이어져 전국 일시이동중지명령(스탠드스틸)이 연장 발효 중인 26일 오후 강원 춘천시 한 양돈 농장에서 돼지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고 있다. 해당 사진은 차단 방역선 밖에서 망원 렌즈로 촬영했다. 연합뉴스

정부에서 돼지 48시간 이동 금지 명령을 연속으로 발령했다. 돼지는 도축장으로 가지 못했다. 마장동, 독산동에 사무실과 정형작업장을 둔 회사들이 손을 놓았다. 돼지가 입고되지 않으니 일이 없다. 휴대폰이 불이 났다. “사장님, 우리도 돼지가 없어요. 도축을 안 하니 경매가 없고, 경매가 없으니 입고도 없지요. 우리라고 별수 있습니까. 아이구 아닙니다. 어디 숨겨 논 게 있겠어요. 있으면 사장님네 같은 단골에 납품 안 하겠어요.” 돼지고기 공급업자 박씨는 혀를 찼다. 다시 휴대폰이 울었다. 이미 한 시간 전에 상황 설명을 한 고깃집이었다. 문자도 팍팍 꽂혔다. “물건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요ㅠㅠㅠ 이제 재고도 없어요, ㅠㅠㅠ." 수많은 거래 고깃집에서 비명을 질렀다.

돼지고기구이집 사장 오씨는 수입 돼지고기를 취급하는 거래처에 연락했다. 국산 돼지가 없으니 다른 길을 찾아보는 거다. 구이용 돼지고기는 거의 국산이 선호된다. 그것도 냉장육이 기본이다. 오래 쟁여둘 수도 없다. 돼지는 진공된 상태라고 해도 냉장고에서 2주를 넘긴 놈은 팔기 힘들다. 육색도 나빠지고 숙성된 냄새가 날 수 있는데, 밝은 육색을 좋아하는 게 손님들의 기본적인 취향이기 때문이다. 소고기는 훨씬 길다. 오씨는 ‘차라리 소고기를 팔 걸’하고 푸념했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한우전문구이집을 하다가 접고 시작한 게 이 돼지고깃집 아니던가. 오씨는 수입 돼지고기 가격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당 1만원이 안 되던 캐나다산 냉장육이 그새 30~40% 올랐다. “어이,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뇨?” “아닙니다, 중국에서 요즘 진공청소기처럼 미국산, 캐나다산 돈육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그쪽에선 심지어 보복 관세도 안 물리는 거 아시죠? 싹 쓸어가고 있다고요. 비싸도 구이용 생고기는 물건이 없어요.”

중국 인민에게 돼지고기가 떨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기사를 오씨는 기억해냈다. 당이 총력을 기울여 돼지고기를 인민의 밥상에 올리는 일은 곧 정치라는 해설도 붙어 있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퍼지는 중국 현황을 다룬 기사였다. 그 기사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남의 일 같았다. 설마 했다. 중국은 바다와 북한이 완충지역을 해주니, 쉽게 전염되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북한은 우리와 교역과 접촉이 없으니 역시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전염 경로도 오리무중, 한국의 고깃집 사장님들의 미래도 안갯속이었다.

겨우 구한 수입고기를 팔자 손님들이 불만을 쏟아냈다. 이미 한국의 ‘인민’도 돼지고기로 위로받는 존재들이었다. 퇴근 후 한 잔 곁들인 생삼겹살 구이 말고 무엇이 그 몫을 한단 말인가. 오씨는 중얼거렸다. 재료비가 오른다고 판매가를 쉽게 올릴 수도 없었다. 오씨의 고깃집이 있는 먹자골목에만 삼겹살구이집이 열두 개.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가상으로 꾸며본 이야기다. 상황은 거의 실제다. 나는 식당일을 한다. 주변에 고깃집 주인들이 널렸다. 그들의 얼굴이 파래지고 있다. 돼지는 6개월을 길러야 출하한다. 새끼를 낳는 모돈은 확보하고 유지하는데 더 힘이 든다. 한번 쓸고 지나간 후에 복구하는 일도 막막하다. 한국 양돈업이 겪는 타격은 어쩌면 식당가에서 더 크게 번질 수 있다. 안 그래도 무한경쟁의 돼지고기 구이 업종 전체가 받는 타격이다. 민관이 총력을 기울여 지금 방역에 나서고 있다. 이길 수 있을까. 이 사태가 한국에서 벌어졌을 때,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어떤 이들이 이 와중에 돈 벌 궁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포털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을 검색해보라. 최상단을 점령한 말이 ‘돼지열병 혜택주’니 ‘테마주’니 하는 것들이다. 누군가 죽고사는 문제를 걸고 뜬눈으로 밤을 새울 때 누군가는 돈 벌 궁리를 한다. ‘투자’라는 이름으로. 그 돈에서 피 냄새가 난다면 과장일까.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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