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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교회 설립·목회지 교환·손자 세습… 목사 세습금지법 비웃는 변칙 수법 난무

입력
2019.09.27 04:40
수정
2019.09.27 08:3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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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경북 포항시 기쁨의 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제104회 정기총회에서 총회장 김태영 목사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명성교회 김삼환ㆍ하나 부자 목사의 목회직 세습을 사실상 인정하는 안이 표결로 가결됐다. 포항=연합뉴스
26일 오전 경북 포항시 기쁨의 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제104회 정기총회에서 총회장 김태영 목사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명성교회 김삼환ㆍ하나 부자 목사의 목회직 세습을 사실상 인정하는 안이 표결로 가결됐다. 포항=연합뉴스

담임목사 세습은 수십 년간 한국 교계의 인습으로 지적됐다. 부자(父子) 세습은 물론이고, 대기업간 합병을 연상케 하는 변칙 세습까지 여러 방식으로 교회가 물려졌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총회가 26일 명성교회의 부자(김삼환ㆍ하나 목사) 세습을 사실상 허용하며, 그간 논의된 세습금지법이 허울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2017년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기준 세습된 전국 교회는 143곳에 이른다. 직계 세습이 98곳으로 가장 많다. 기독교 언론 뉴스앤조이는 7월 말 기준 세습교회가 총 285곳이라고 보도했다.

2000년대까지는 세습이 공공연히 이뤄졌다. 서울 충현교회, 광림교회, 소망교회, 금란교회, 강남제일교회가 대표적인 경우다. 2012년 충현교회의 김창인 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것을 후회한다”고 공개 발언을 하면서 사회적 파장이 컸다. 2013년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 교단 내에 세습금지법을 만들며 사회 여론에 부응했다.

세습금지법이 적용되자 세습을 위한 여러 변칙적인 방법이 등장했다. 아들에게 지교회를 설립해주고 담임목사를 맡도록 하는 방법(지교회 세습)은 그나마 약과다. 비슷한 규모의 교회 목회자끼리 아들 목사의 목회지를 교환하는 교차 세습 기법도 활용한다. 할아버지가 목회하는 곳에서 아들을 건너뛰고 손자가 목회직을 승계하는 징검다리 세습도 있다. 명성교회는 경기 하남시에 새노래명성교회를 따로 설립하고 명성교회의 설립자인 김삼환 담임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를 담임목사로 내정했다. 김삼환 담임목사가 2015년 은퇴하자 2017년 명성교회와 새노래명성교회의 합병과 동시에 김하나 목사를 명성교회 위임목사로 청빙했다. 지교회 세습과 합병 세습 방식을 섞어 활용한 셈이다.

담임목사 세습은 결국 교회 사유화라는 지적이다. 기독교 시민단체는 공익적인 종교기관이 아닌 특정 가족만을 위한 사익 단체로 전락할 위험성을 경고한다. 개신교 법조인 약 500명으로 구성된 기독법률가회는 26일 입장문을 통해 “한국교회가 교회 세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주어졌으나 예장통합 총회는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며 “이번 결정을 보며 한국교회가 이 세상을 썩게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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