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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처제 살인 직후, 이춘재 ‘화성사람’ 알고도 경찰 수사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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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헛추정한 B형 혈액형 집착 탓… 33년 장기미제 원인돼
24년째 수감 이씨는 혐의 부인… 1급 모범수로 공소시효 만료 지켜봐
경찰이 19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청주 처제 성폭행 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56)를 공식 지목했다. 경찰은 10건의 연쇄살인 사건 중 3건에서 나온 DNA가 이씨의 것과 일치한 것이 증거라고 밝혔다.
하지만 청주 사건 직후 이춘재가 화성에 연고가 있다는 걸 파악하고도 청주경찰과 화성경찰 사이에 제대로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초기에 검거할 수 있었던 결정적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이 최초 지목한 연쇄살인범의 혈액형(B형)과 이씨의 혈액형(O형)이 다른 것으로도 드러났다. 이씨의 혈액형이 잘못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경찰의 혈액형 특정에 문제가 있다면 초동 수사의 허점을 드러낸 것으로, 200만명이 넘는 인원을 동원하고도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겨 두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경기남부경찰청 2부장)은 이날 경기남부청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DNA 분석 기법을 통해 당시 10차례의 사건 가운데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등 3차례 사건의 증거물에서 채취한 건에서 이씨의 DNA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9차 사건에서는 피해여성의 속옷에서 이씨의 DNA가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사건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DNA가 검출된 상태로, 지극히 수사 초기 단계”라며 “용의자 이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이어진 화성연쇄살인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줄곧 용의자의 혈액형을 B형으로 특정했다. 하지만 이씨의 실제 혈액형은 O형인 것으로 드러나 진범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1994년 9월 16일 선고된 청주 처제 살인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수사 기관은 이씨의 혈액형을 상당히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여 O형으로 특정하고 있다.
반면 당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 관계자들은 범인의 혈액형이 B형임을 확신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실제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을 만든 봉준호 감독은 2013년 10월 영화 개봉 10주년 기념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석해 당시 수사 기록을 토대로 “현재 50대인 1971년 이전에 태어난 B형 남성이 유력한 용의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사건의 수사팀장이었던 하승균 전 총경도 “이씨는 당시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은 ‘유력 용의자는 B형’이라고 본 당시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DNA가 일치한 이씨가 여전히 유력 용의자”라는 입장이다.
경기남부청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당시 B형일 거라고 판단해 수사를 진행한 것은 맞지만, 혈액형은 동일인 여부를 확인하는데 극히 제한적인 판단 기준”이라며 “최근 DNA분석 결과가 실체적 진실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혈액형 판단에 사용한 혈흔 등이 피해자 것인지, 용의자 것인지, 제3자 것인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며 “혈액형 자체가 나오지 않은 사건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사건이 장기화한 배경에는 당시에는 현장 증거물에서 DNA를 검출해 분석하는 등 과학수사 기술이 없었다는 점이 작용했다. 국과수가 유전자 분석을 이용한 개인 식별법을 범죄사건 감정에 최초로 도입한 시기는 1991년 8월로 마지막 10번째 범행이 발생한지 4개월이 지난 후였다. 이전까지는 의류 등에 묻은 혈흔을 분석해 혈액형을 분석하는 등의 분석법이 ‘최신 기술’이었다. 증거물에서 찾은 DNA를 대조할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진 건 2010년 4월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다.
증거를 해외로 보내 분석하는 방법도 번번이 실패했다. 1991년 4월 10차 살인 사건 이후 다급해진 경찰은 1차 살인사건 피해자 이모(당시 71세)씨 체내에서 발견된 남성 체액을 유력 용의자와 대조하기 위해 일본에 보냈다. 두 차례에 걸쳐 두 명의 유력 용의자 DNA를 일본에 보냈지만 돌아온 답변은 ‘불일치’였다. 당시 감정에 참여했던 법의학자 이정빈 가천대 석좌교수는 “세 번째 용의자도 의뢰하려 했지만 용의자 가검물(체액)이 다 떨어져 못한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요즘 기술로는 수 백 년 전 편지에 묻은 침으로도 DNA를 분석할 수 있기에 증거물만 남아있다면 이야기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1986년 9월 15일 경기 화성 태안읍에서 이모씨가 살해당한 최초 사건 이후로 1986년 12월 14일 세 달 새 4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동안 경찰은 연쇄살인이라는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경찰은 1986년 12월 화성경찰서 태안지서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대규모 수사팀을 꾸렸지만, 1987년 1월 10일 다섯 번째 희생자인 홍모(당시 19세)양이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5차 살인과 관련 최근 DNA 일치 여부가 확인된 이씨는 당시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범인은 죽었거나 교도소에 있을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경찰도 용의자가 수감됐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했어야 했다”며 “용의자 혈액형을 B형으로 특정한 것도 결국 핵심 용의자를 놓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씨의 본적지가 경기 화성군 태압읍 진안1리인데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화성에 거주했던 것을 청주 처제 살인 직후 경찰이 파악하고도 수사관할권 문제 때문에 적극 대응하지 않은 것도 결정적 원인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경찰이 초동수사 미비로 우왕좌왕하는 사이 이씨는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이듬해 10월 부산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는 교도소에서 묵묵히 공소시효가 지나는 것을 지켜봤다.
24년째 수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과거 범죄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으며,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조사나 징벌을 받지 않는 등 교도소내에서도 유명한 1급 모범수로 생활해 왔다. 교도소 관계자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이유다.
특히 이씨는 손재주가 좋아 2011년과 2012년 수감자 도자기 전시회에서 직접 만든 도자기를 출품하기도 했다. 가구제작 기능사도 취득했고, 종교모임 회장직도 역임했다.
이씨는 현재 여러 명이 사용하는 혼거실에서 독방으로 옮겨진 상태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밝혀지면서 교도소 측이 이씨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다.
교도소 관계자는 “이씨는 4등급으로 분류하는 수감자 등급에서 1급수(1급 모범수)로 분류돼 있다”며 “이씨가 화성 연쇄살인 용의자로 지목됐다는 보도를 보고 모두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경찰의 초동수사 미흡으로 장기미제로 남겼다는 오명에도 이날 브리핑 모습은 변한 것이 없었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의사실 공표에도 불구하고 이씨의 신상을 사실상 공개한 경찰은 정작 용의자 이씨의 DNA 확보 과정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러던 중 지난 18일 오후 언론에서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DNA 확보’ 보도가 쏟아지자 당일 오후 늦게 이씨에 대한 1차 조사를 실시했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결과를 받은 시기와 이씨를 1차 조사한 시기에 상당한 시간차이가 있다면 경찰이 ‘DNA 결과’를 통보받고도 이를 알리지 않은 채 숨겨왔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에 경찰은 “수사 중인 사항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권경훈 기자 werth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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