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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접촉은 빠를수록 좋다는데” 조급한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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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모국어 소화도 힘든데, 뇌에 부작용”
‘영어로 재잘재잘 떠드는 우리 아이.’
초등학교 가서 배워도 충분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백 마디 말보다, 영어학원 홍보 책자에 쓰인 저 한 문장에 부모들은 속수무책 지갑을 연다. 초중고교 학창시절, 저마다 영어를 ‘고통스럽게’ 배웠던 기억 때문이다. 고통의 대가가 능수능란한 영어 솜씨라도 되면 모를까, 십수년 영어와 씨름했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초라한 탓에 부모들은 결심한다. ‘우리 아이는 영어와 반드시 친해야 한다. 최대한 어릴 때부터.’
유아 사교육 시장에서도 단연 큰 비율을 차지하는 건 영어다.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수백만원대를 호가하는 ‘영어 전집’을 사들이는가 하면, 한글도 익숙지 않은 아이들을 이른바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대상 영어학원에 보내기도 한다. ‘외국어 교육은 빠를수록 좋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영어가 일상인 환경이 아닌 바에야 영어교육을 시작한 시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는 지난해 교육계간지 교육비평에 쓴 ‘초등학교 저학년 및 입학 전 아동의 방과후 영어교육 폐지를 둘러싼 조기영어교육 진단과 대안’에서 “일상에서 영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외국어 환경에서 조기 영어교육의 효과는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연구(2017년)를 그 근거로 들었는데, 각각 4세와 8, 9세 때 영어교육을 시작한 아이들이 10~12세가 됐을 때 영어 말하기 능력을 비교해보니 전자의 경우 12개 항목 중 단 2개 항목에서만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뇌 발달 측면에서 조기 영어교육은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신경약리학 전문가인 서유헌 가천대 석좌교수는 “모든 교육은 뇌의 발달과 함께 가야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서 교수는 “모국어도 소화하기 힘든 유아 시기에 언어를 담당하는 뇌(측두엽)에 외국어가 들어오면 학습은커녕 스트레스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며 “보통 뇌의 발달이 모국어와 외국어를 동시에 학습할 수 있는 시기, 적어도 초등학교 진학 후에나 외국어 습득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어 조기 사교육에 대한 수요는 점차 커지고 있다. 전국에 있는 유아대상 영어학원은 2016년 410곳에서 지난해 494개로 늘었다. 사교육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강남 영유(영어유치원) 어디 보낼까요?’ ‘목동 영유 입학시험 어렵나요?’ 같은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게시글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올라온다. 영어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수요나 영어 자체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하되 연령대에 맞지 않은 무리한 학습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혜정 광주여대 국제교육원장(어린이영어교육학과 교수)은 “현대사회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영어를 빠르고 자연스럽게 터득하고자 하는 바람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며 “영어교육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학습효과를 얻으려고 무리하게 교육을 강요하거나 결과를 빨리 확인하려는 부모의 성급함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교육비가 비싼 영어학원에 의지하는 대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TV채널이나 온라인 콘텐츠만으로도 자연스러운 영어 습득환경은 충분히 조성할 수 있다”며 “영어학원을 가더라도 아이들의 연령대에 맞는 커리큘럼을 진행하고 있는지, 원어민 외에도 한국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한국인 교사가 동반하고 있는지 등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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