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준의 와이드엔터] 추억한다, ‘살인의 추억’을…

입력
2019.09.19 16:29
영화 ‘살인의 추억’의 두 주인공 송강호(왼쪽)와 김상경.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살인의 추억’의 두 주인공 송강호(왼쪽)와 김상경.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30여년만에 잡혔다는 소식을 접하고 ‘살인의 추억’을처음 봤을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2003년 4월이었다. ‘살인의 추억’ 시사회가 종로 서울극장에서 열렸다. 대기업 계열의 복합상영관이 뿌리내리기 전인 당시만 하더라도 기대작들은 주로 서울극장에서 첫선을 보이는 게 관례였다.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와 봉준호 감독, 송강호와 김상경이 제작자와 연출자 그리고 주인공 자격으로 영화 상영전 무대에 올랐다. ‘살인의 추억’ 직전 ‘지구를 지켜라’의 처참한 흥행 실패를 겪은 차대표와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가 관객으로부터 심하게 외면받았던 봉감독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송강호만 “제가 처음으로 베드신을 찍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관계자들 모두가 영화의 바탕이 됐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란 단어를 입에 담지 않으려 극도로 애쓰던 모습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같았다.

알고 보니 경기 화성 지역사회의 반발을 의식해서였는데, 다행히 기각되긴 했지만 화성문화원으로부터 상영금지가처분신청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선 뒤통수가 얼얼했다. 아주 기분좋게(?)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범인이 잡히지 않는 결말의 스릴러는 흥행 필패’라는 그때까지의 극장가 속설이 마음에 걸렸다. 이 때문이었을까? ‘뛰어나게 잘 만들었지만, 우울하고 알 듯 모를 듯한 결말 때문에 아마 망할 거야’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개봉과 동시에 평단으로부터 격찬이 쏟아졌고 525만 관객을 동원하며, 시쳇말로 ‘누워있던’ 봉감독과 제작사인 싸이더스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또 “밥은 먹고 다니냐” “향숙이 이뻤다” 등과 같은 극중 대사는 유행어로 개그 프로그램에서 다뤄질 만큼, 영화를 잘 모르는 대중마저도 사로잡았다..

잘 만든 영화 한편이 지니는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쓰임새를 새삼 실감했던 계기가 바로 ‘살인의 추억’이었다. 누구나 잊고 싶어하지만 결코 잊어선 안될 미제 사건을 꼼꼼하게 복기하고 재구성한 덕분에,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 함께 분노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폭압적이고 암담했던 분위기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가슴 절절하게 반성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같은 감정들은 용의자를 향한 30여년간의 끈질긴 추적이 마침내 검거로 이어진 과정에서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을 지도 모른다.

오늘밤 집에 들어가면 무조건 ‘살인의 추억’을 다시 볼 참이다. 송강호 특유의 짝짝이 눈으로 가득 채워질 엔딩이 벌써부터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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