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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용의자’ 이춘재, 처제 살인사건 재판서도 범행 극구 부인

입력
2019.09.19 16:13
수정
2019.09.19 19:2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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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ㆍ2심 “반인륜 범죄” 사형 선고… 대법원 파기환송 후 무기징역형

처제를 살해해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사형을 받았다가 1995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을 받은 이춘재 사건을 다룬 당시 한국일보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처제를 살해해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사형을 받았다가 1995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을 받은 이춘재 사건을 다룬 당시 한국일보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전자 정보(DNA) 대조를 통해 화성 연쇄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56)는 처제 강간ㆍ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때까지 다섯 차례 재판을 받았다. 1ㆍ2심은 그의 행위를 반인륜 범죄로 규정해 사형을 선고했으나, 대법원이 사형은 지나치다며 파기환송 하면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일 법원 사건기록 등에 따르면 이씨는 1994년 5월 청주지법, 같은 해 9월 대전고법에서 연속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부터 법정에서까지 일관되게 자신이 처제를 살해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했다. 또 “평소 처제들이나 처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며 “부인에게 앙심을 품고 처제를 죽일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처제가 집에 온 것은 맞지만 30~50분 후에 집에서 나갔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1ㆍ2심은 이런 항변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이씨가 평소 아들과 아내를 무차별로 구타한 사실이 있다”며 “가출한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 것에 극도의 증오감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어 범행 동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사망한 처제를 묶은 스타킹이 이씨 부인의 것이라는 점 △사망 추정 시간 직후 이씨가 매우 이른 시간인 오전 6시 집 안 물청소를 한 점(증거인멸) △피해자의 몸에서 나온 체액과 이씨의 유전자형이 일부 일치하는 점 △사체유기 장소가 이씨 집에서 멀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해 이씨를 진범으로 인정했다.

특히 2심인 대전고법 재판부는 “모든 증거들이 정황증거이기는 하나, 이씨의 행적이나 거짓 진술 태도 등에 비춰 이씨가 처제를 살해했다고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당시 2심 주심판사였던 성낙송 전 사법연수원장(법무법인 평안 대표변호사)은 “드물게 사형을 선고한 건이라 2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며 “보통 항소기각은 간단하게 판결문을 쓰는데 이 사건에서는 사형에 필요한 명확한 결론을 보여줘야 할 사건이라 매우 긴 판결문을 썼다”고 회상했다.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고, 대법원은 ‘사형이 부당하다’는 이씨의 항변을 받아들였다. 1995년 1월 대법원(주심 박준서 대법관)은 “사형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적용되어야 할 궁극의 형벌”이라며 “이씨가 처제를 살해하기로 사전에 계획했다고 볼 만한 직접적인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오히려 이씨가 인정한 사실로 비춰볼 때 우발적 범행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이 우발적 동기를 검토해 보라며 사건을 파기환송 함에 따라, 사건을 다시 넘겨받은 대전고법은 그해 5월 이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씨가 처제를 성폭행 살해 후 시신을 유기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된다”면서도 “사전에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무기징역 판결은 두 달 후인 그해 7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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