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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상징 안희정 3년6월 확정…무엇이 유ㆍ무죄 갈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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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1ㆍ2심 판결 끝에 최종심서 유죄 확정
대법 “‘성인지 감수성’ 잃지 않도록 유의” 당부
지난해 3월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9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6월형을 확정 받았다. 유력 차기 대권 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던 안 전 지사는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가 19대 대선 직후부터 그에게 수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미투(#Me Too)’ 촉발 이후 기소와 판결까지 이른 첫 번째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안 전 지사의 재판은 지난해 8월 1심에서는 무죄를, 이듬해 2월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되는 등 결과가 극명하게 엇갈린 ‘롤러코스터 재판’이었다. 1ㆍ2심 재판부는 위력의 행사 여부 및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등에 대해 상반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리고 이날 대법원은 그의 ‘권력형 성범죄’를 인정하면서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피해자 진술 믿을 수 없다”던 1심
지난해 8월, 안 전 지사 1심 재판부인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조병구)는 “공소 사실 모두 범죄 증명이 없다”며 안 전 지사에게 적용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ㆍ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ㆍ강제추행 5회 등 세가지 혐의 모두를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명되는 지위 및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 등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행사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볼만한 증거는 부족하다면서, 그의 위력 행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 진술이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밖에 없는 여타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 역시 피해자의 증언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피고인(안 전 지사)을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무엇보다 피해자인 김씨의 진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간음행위 전후 단계에서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피고인을 지지하고 존중하는 대화를 나눈 정황과 행동에 미뤄봤을 때, 피해자 진술이 객관적 증거에 어긋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개인적 취약성 때문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비서였던 피해자가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집을 찾으려 애쓰고 평소와 다름없이 안 전 지사를 지지하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며 ‘일반적인 성폭력 피해자답지 않다’는 안 전 지사 측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2심에선 “안희정 진술 못 믿어”
안 전 지사에 대한 단 하나의 혐의도 인정치 않았던 1심 판단은 지난 2월 2심에서 완전히 뒤집혔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 홍동기)는 강제추행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안 전 지사 항소심에서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그를 법정 구속했다. 또 4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지방 별정직 공무원이라는 신분상의 특징과 도지사와 비서라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로 인해 피고인의 지시에 순종해야만 하고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내부적인 사정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취약한 처지에 있음을 이용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현저히 침해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나온 대법원의 ‘성인지 감수성’ 판례도 영향을 미쳤다. 대법원은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향과 가해자와의 관계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재판부는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이 사소한 부분에서 다소 일관성이 없거나 최초 진술이 다소 불명확하게 바뀌었다 해도 그 진정성을 함부로 배척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1심에서 배척당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온전히 인정한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뿐 아니라 ‘가해자 진술’도 살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피해자의 진술은 일관된 반면 안 전 지사의 진술은 여러 차례 번복됐다는 지적이었다. 피해자의 폭로 직후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모두 제 잘못이고,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 입장은 틀렸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검찰 조사에서는 “불륜과 간음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한 것”이라고 했고, 2심 법정 진술 때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이지만 당장 반박하는 것은 잘못이란 취지”라고 다시 말을 바꿨다. 추행에 대해서도 검찰 조사 때는 김 전 비서와 ‘연인’이라 했으나 2심에선 연인관계를 부정했다. 국내 호텔에서의 간음 혐의도 투숙 및 성관계에 이르게 된 경위 등에 대한 진술을 계속 바꿔 스스로 신빙성을 떨어뜨렸다.
이날 최종심을 맡은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피고인에 대해 일부 유죄를 인정하고 3년6월의 징역형을 선고한 2심 판결을 모두 맞다고 인정했다. 대법원은 “피해자 등의 진술은 그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며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판사 출신 서기호 변호사는 이날 jtbc에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피해자가 처한 상황이나 2차 피해 우려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성인지 감수성에 기초된 판결들이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서 더더욱 확실하게 굳어질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앞으로 성범죄에 대해서 어떤 수사나 재판을 할 때 또는 일상생활에서 우리 국민들이 행동할 때도 좀 참고할 만한 중요한 지침이 되리라 본다”고 평가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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