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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자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입력
2019.08.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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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 둘째날 박동석 옥시 PB대표이사가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 둘째날 박동석 옥시 PB대표이사가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껏 판매된 가습기살균제 제품 중 옥시의) 시장점유율이 약 50% 정도인 반면 피해자 구제에 있어서 재정 부담은 85% 이상 감당하고 있습니다.”

박동석 옥시레킷벤키저(옥시RB) 대표이사는 28일 서울시청에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를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옥시RB의 책임을 일부분 인정하면서도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을 처음 만든 SK케미칼과 관리ㆍ감독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정부,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판매하고도 배상ㆍ보상에 나서지 않고 있는 다른 기업들의 공동 책임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애초에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원료 물질을 만들지만 않았다면, 정부가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관리ㆍ감독을 제대로 했으면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발언은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이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과를 하고 피해자 구제 대책을 내놓기보다 옥시의 입장을 밝히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박 대표는 작정하고 나온 듯 했습니다. 이날 정부와 다른 가해 기업의 잘못을 지적하는 발언을 몇 차례 더 반복했습니다. 27일과 28일 양 일간 진행된 청문회는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보이지 않는 자리였습니다.

◇옥시도, SKㆍ애경도 ‘옆구리 찌르니 사과’

27일 청문회에 참석한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와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이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 사과했습니다. 최 전 대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이고, 채 대표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차남입니다. 여러 언론사를 통해 ‘8년 만의 첫 공식사과’라는 제목으로 보도되긴 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들은 “사과가 아닌 사죄를 하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사과에서 진심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두 가해 기업의 사과는 자진해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예용 부위원장이 심문을 마칠 때쯤 “사과를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고 난 뒤에 이어진 제스처였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배상ㆍ보상에 대해 최 전 대표는 “SK케미칼이 상장사라는 걸 이해해달라”며 “판결이 나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채 대표는 “우리도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고 그렇게 부도덕한 기업이 아니다”라고 항변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드러난 지 8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안 한 두 기업은 다시 한번 단서를 달면서 구체적인 배상ㆍ보상 계획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최 부위원장은 이에 “옆구리 찔러 받은 사과”라며 “그렇게 조건을 달면 사과로 느껴지겠냐”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황필규 특조위 심문위원은 “진실을 밝히고 구체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재발 방지와 피해자 구제 대책을 이야기하는 게 사과”라고 알려줬을 정도입니다. 이틀간 청문회에서 황 위원이 알려준대로 진정성이 담긴 사과를 한 기업 관계자는 결단코 아무도 없었습니다.

◇윤성규 전 장관 “문 대통령이 사과했는데…”

가해기업 뿐 아니라 유해화학물질 관리ㆍ감독을 소홀히 해 참사에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전ㆍ현직 정부 관료들의 태도는 비슷했습니다. 1992년부터 환경부 근무를 시작해 유해물질과장, 수질보전국장 등을 거친 뒤 2013년 3월부터 2016년 9월까지 환경부 장관으로 재직했던 윤성규 전 장관이 그랬습니다. 그는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과하겠냐는 질문에 “현직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께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는데 거기에 꼬리 붙일 게 뭐 있느냐”면서 한 발 물러서는 듯한 답변을 했습니다. 환경부 과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가습기살균제 원료 중 하나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같은 양이온성 고분자 물질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관리하는 해외 사례를 왜 참고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은 그는 “당시(1990년 후반)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을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해외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답했습니다. 사실상 유해 화학물질 관리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이처럼 무성의한 답변이 이어지면서 이번 청문회는 ‘맹탕 청문회’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조순미씨는 “윤성규 전 장관의 발언은 피해자를 기만하는 행위”라며 “이런 사람이 국민 세금으로 장관에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황당하다”고 했을 정도 입니다

23일 현재 전체 피해자 중 6,905명이 환경사업기술원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신청했고, 그 중 1,431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8년이 지났는데도 올 7월26일까지 환경부가 인정한 피해자는 835명에 불과합니다. 특조위는 이번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증인들을 불러 추후 다시 청문회를 열 계획입니다. 최예용 부위원장은 “사회적참사 특조위의 활동기한이 내년 말까지여서 아직 시간이 더 있기 때문에 필요하면 내년쯤 청문회를 추가로 열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번 청문회가 열린다면, 피해자와 가족들은 가해 기업과 관료들로부터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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