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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 위험한 흥행… 대중 파고드는 식민사관

입력
2019.08.26 04:40
수정
2019.08.26 07:5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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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보 2주째 1위, 10만부 팔린 듯… “위안부ㆍ노무동원 강제성 없다” 내용 

 조국 “구역질” 비난 되레 광고효과… “친일찬양 금지법 제정” 목소리 

[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비치된 ‘반일 종족주의’. 식민사관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9-08-21(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비치된 ‘반일 종족주의’. 식민사관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9-08-21(한국일보)

“저게 어떻게 1위야?”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코너 앞을 지나던 한 여성이 옆 사람에게 놀란 듯 묻는다. 일제 위안부(성노예)ㆍ노무동원의 강제성 부정, 한국인 비하 등으로 사실상 ‘친일 찬양’ 사상을 담은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의 저서 ‘반일 종족주의’가 당당하게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놓여 있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비난하자 오히려 광고효과를 얻으면서, 극우ㆍ친일 진영뿐만 아니라 일반에까지 다가가는 양상이다. 호기심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이런 흥행은 일본이 원하는 식민사관 확산에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저자 중의 한명인 뉴라이트 계열의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많이 팔려서 기쁘다”며 “수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교보문고에서 ‘반일 종족주의’를 펼쳐 읽고 있던 20대 남성에게 책을 찾은 이유를 물었다. “사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궁금해서 한번 읽어보려고”라는 답이 돌아왔다. 50대 한 남성도, 딸과 함께 온 여성의 답도 다르지 않았다. “요새 이슈가 되고 있는데 내용을 모르니까 궁금해서, 한번 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책을 한동안 읽다가 도로 제자리에 두고 사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젊은 남성이 다가오더니 머뭇거리지 않고 책을 집어 들고 사라졌다. 그를 뒤따라가 물었더니 “수요가 있어서 따라온다(위안부ㆍ노무동원의 자발성)는 말에 동의하고, 내용이 괜찮은 것 같아서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학교 2학년이라고 밝힌 김영완(23)씨는 “징용문제도 한일협정으로 끝났다”며 일본입장을 지지했고, “일본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기분 나쁘더라도 국익을 위해서 참아야 하는데 한국이 너무 감성적”이라고 했다. 김씨는 “일본이 원자폭탄을 맞았어도 미국과 친하게 지내듯이 일본이 한국보다 강대국이니까 참아야 한다”고 약육강식의 논리를 앞세웠다.

[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비치된 ‘반일 종족주의’.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9-08-21(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비치된 ‘반일 종족주의’.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9-08-21(한국일보)

‘반일 종족주의’는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2주 연속 1위(8월7일~8월20일), 예스24 2위(25일 기준), 알라딘 3위(25일 기준) 등을 기록하고 있다. 알라딘의 구매자 분포를 보면, 50대 남성이 16.8%로 가장 높았고, 40대 남성 14.9%, 60대 남성 13.5%, 30대 남성 12.9%였다. 여성은 40대가 10.6%로 가장 높았다. 한 구매자가 쓴 평가 글(리뷰)은 “서문부터 (한국은) ‘거짓말의 나라’이다. ‘광기서린 증오의 소설가’ 조정래가 쓴 ‘아리랑’을 필두로 전교조 잡부들과 종북좌파 등이 날조한 거짓의 역사와 현재를 팩트로써 맹폭하는 책이다”라고 칭송했다. 다른 구매자의 글도 “이영훈은 기생제에서 공창제로의 치환을 설명하고 일정기(일제 치하)에서의 공창제 대중화를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공창제에서 위안부제로의 전환과 위안부제가 보장한 수급ㆍ공급 시장의 성립과 그 생태계는 위안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도구라 생각하고 허물어지기 어려운 논증이라 생각한다. 위안부에 관한 최고의 책”이라고 돼 있다.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무시하는, ‘위안부=매춘부’ 논리의 맹신이다.

[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한 남성이 '반일 종족주의'를 들고 가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9-08-21(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한 남성이 '반일 종족주의'를 들고 가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9-08-21(한국일보)

반면 “친일파들의 주장에 어떤 학문적 근거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순진하고 멍청한 짓인지 5분안에 확인 가능하다”는 후기도 있었다. 실제 이 책의 평점은 극과 극을 달린다. 알라딘 평점을 보면, 만점인 별 다섯개를 준 비율은 52.7%, 별 1개를 준 비율은 44.9%이다. 즉 구매자 중 절반보다 조금 높은 비율은 식민사관을 지지하는 극우세력이 구매한 것이고, 약 40% 안팎의 구매자는 식민사관이 무슨 근거를 제시하는지, 호기심에 기반한 구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20일 '반일 종족주의' 저자 중 한 명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서울 관악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이진희 기자
지난 20일 '반일 종족주의' 저자 중 한 명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서울 관악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이진희 기자

낙성대경제연구소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난 이우연 연구위원은 “지난 주말(17일쯤)까지 8만부를 넘었다고 들었다”며 “토론의 분위기가 생기는 것 같아서 좋다”고 흥행을 반겼다. 현재는 10만부를 훌쩍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출판사인 미래사는 정확한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는 이영훈 전 교수의 이전 저서보다 위험해 졌으며, 이들의 대중적 접근을 안이하게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뉴라이트 사용후기’를 쓴 시사평론가 한윤형씨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영훈 교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군이 아니라 인신매매 업자들이 끌고 갔으나 일본군이 관리한 성노예라는 점을 인정했다”며 “그런데 ‘반일종족주의’에서는 새로운 근거도 없이 급변해서 깜짝 놀랐다”며 “국가적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일부러 거짓말을 해서 위기를 조장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대 A교수는 “이영훈 교수는 학내 교수들 사이에서 크게 부각 되지 않았다가 뉴라이트에 안병직 교수(서울대 명예교수ㆍ뉴라이트의 대부)와 함께 이름을 올리면서 조금씩 알려졌다”며 “밖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거나 공격을 받거나 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이론을 더 강하게 무장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역사학자인 심용환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이분들(뉴라이트 사학자들)이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학술작업을 하다가 이후 국정교과서를 바꾸는 시도를 했으나 행정적으로만 이뤄지다가 말아서 대중에게 내면화되지는 않았다”며 “베스트셀러는 보통 10만부 이상 팔리는데 그 글을 읽고 내면화시키는 과정들이 진행된다는 뜻”이라고 우려했다. 이전 책들과 달리 대중이 읽기 쉽게 쓰인 점도 주목할 점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특히 “조국 전 수석이 이 책을 언급한 것이 (흥행에) 결정적이었다”며 패착을 지적했다. 심 교수는 유튜브 등을 통해 반일종족주의 내용을 비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근본적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유럽 등지에서는) 나치를 찬양하면 형법으로 처벌한다”며 “우리는 그런 법이 없어서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데, 친일찬양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ankookilbo.com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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