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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 선동 가득한 해괴한 책… 저자들 스스로 학문적 목숨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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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과 ‘해전사의 재인식’ 공동집필한 이철우 교수, 정면으로 비판
논란의 책 ‘반일 종족주의’의 대표 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6년 동료 학자 20명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2권ㆍ재인식)이란 책을 냈다. 보수 성향의 학자들이 주로 참여한 이 책은 1979년 첫 권 출간 이래 1980년대 지식인층의 ‘재야 역사교과서’로 자리 잡았던 ‘해방전후사의 인식(6권)’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최근 ‘반일 종족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재인식’ 필진 중 한 명이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데 있어 정치성을 배제하자는 취지에 공감해 참여했었죠. 서론에서 상당한 정치적 지향성이 느껴져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책 자체는 학문적 연구의 소산인 만큼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반일 종족주의’를 읽고 나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볼 수 없는 서술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동적 용어와 표현, 술자리에서나 어울릴 법한 상식 이하의 감정적 발언을 여과 없이 쏟아내면서도 주장과 논리 측면에선 엄밀성이 결여된 책”이라고 일갈했다.
이 교수는 “이영훈은 역사 연구에서 정치성의 ‘탈각’을 주장하던 스스로의 신념을 어겼고, 지적으로 매우 불성실한 모습을 보였다”며 “’학문을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학자적 공분이 일어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책의 주요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한 이 교수는 “위안부 문제 등 전문 연구자들이 많다. 저보다 더 심도 있는 반박에 나서줄 것”이라고 말했다.
-책 제목이 ‘반일 종족주의’다.
“제목에서부터 엄밀성을 결여하고 있다. 민족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저자들이 말하는 ‘종족’과 ‘종족주의’ 개념이 궁금했다. “종족”은 혈연 또는 문화적 동질성에 대한 믿음으로 구성되는 에스닉(ethnic) 집단을 뜻하는 번역어로 국내 학계에서는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와 같은 학계의 통례를 모르는지, 부족(tribe)과 부족주의(tribalism)을 뜻하는 용어로 채택한 것 같다. 부족주의는 집단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타 집단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뜻하는 부정적 함의를 담은 용어로서, 대개는 한 집단의 내부 집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맥락에서 사용된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상위의 공동체가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상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매우 부자연스럽다. 또 이 개념은 혈연이나 지연 집단은 물론 축구팀 서포터들을 포함해 무수히 많은 사회집단의 태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만큼 엄밀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한국인의 집단심성을 미개한 것으로 규정하기 위한 의도로 그러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세계학계에 도저히 내놓을 수 없는 개념적으로 정제되지 않은 사고라고 생각한다.”
-책은 한국인의 종족주의가 샤머니즘으로부터 기원한 집단심성이라 주장한다.
“게다가 7세기 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부터 일본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져왔으니, 바로 그러한 반일 감정이 한국인의 내면을 구성하는 장기지속의 심성이라는 놀라운 추론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역사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다.”
-책은 일제 식민지 시절 ‘강제동원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조선에서는 1944년에 국민징용령이 시작됐고 그 이전에 노동력을 동원하는 방식은 ‘모집과 관 알선’이었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트럭에 태워 강제로 싣고 가는 연행이 없었다면 모두 자발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인신매매’(trafficking)의 개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인식이다. 인신매매를 금지하는 팔레르모 의정서는 인신매매를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이나 무력행사, 사기, 기만, 권력 남용 등을 통해 사람을 모집하거나 운송 또는 인수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전 세계가 합의한 인신매매 개념을 무시하고 ‘강제성이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모집과 관 알선’을 통한 동원에서도 엄청난 폭력성이 수반됐다는 점을 강조한 일본 학자의 연구도 있다. 그는 도노무라 마사루 도쿄대 교수가 쓴 ‘조선인 강제연행’이란 책을 펼쳐 보였다.
“도노무라 교수는 책에서 ‘조선인 피동원자는 이른바 ‘징용되지 않는 차별’을 받고 있었다’고 했다. 국민징용령은 피징용자 가족에 대한 부조와 원호를 규정해놨다. 반면 징용령이 아닌 모집과 관 알선으로 이뤄진 동원은 이런 기본적 보호조차 없었다. 이중적 억압이 작용했던 거다. 책을 번역한 김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 표현이 ‘조선인 피연행자는 법이 필요 없는 무법적 존재로서 물건 같은 것이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반일종족주의 저자들과 분명하게 대조되는 관점이다. 김철 교수는 이영훈 전 교수와 함께 ‘재인식’을 공동 편집한 학자다.”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해 애당초 한국은 배상 청구할 게 없었다는 논리는 어떠한가.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은 한국은 일본의 유효한 일부였고, 일제의 한국 지배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배상청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일제 지배가 합법적이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이승만학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참 역설적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제국은 망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왔다’는 계속성, 일제에 의한 주권 침탈의 불법성을 강하게 이야기했던 사람이다. 이영훈 전 교수는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읽지 않아 한국 정신문화가 몽매하다고 꾸짖는다. 그러나 이승만 정신을 정면으로 왜곡하는 사람은 이 전 교수 본인이다. 이런 역사관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이 유례가 없다고 말하는 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2008년 이탈리아는 식민지였던 리비아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수행했다.”
-책은 위안부 또한 자발적 매춘으로 규정했다.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신매매에 대한 이해가 결여돼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또 위안부 문제가 40년 동안 대두 되지 않았다며, 뒤늦게 만들어진 가공된 기억이라고 주장하는 데, 과거사에 대한 기억이 생성되고 활용되는 과정을 도외시하는 단순한 인식이다.”
-책은 독도가 한국의 고유한 영토라고 말할 증거가 하나도 없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영훈 전 교수는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지한 1877년 ‘태정관지령’과 같은 일본측 사료는 언급하지 않았다. 무지한 국민들을 깨우쳐준다면서 반대증거는 다 빼놓았다. 악의적이다. 또 이 전 교수는 독도를 ‘국제사회가 영해를 가르는 지표로 인정하는 섬’이 아닌 ‘바윗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이는 유엔해양법협약에 대한 초보적 지식을 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에서 말하는 암석(rock)은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을 가지지 못할 뿐 영해와 접속수역은 가질 수 있다. 백번양보하여 독도를 암석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당연히 영해를 가지는 것이다.”
-논리 전개가 무리한 주장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1938년 4월 일본이 “세계 식민지 역사상 최초로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제를 시행”했다는 정안기(‘반일 종족주의’ 공동 저자) 박사의 주장은 조선을 지배한 나라가 일본 밖에 없으니 세계 최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스꽝스럽다. 그러한 특별지원병제가 세계 최초라고 하는 것도 우습다. 세계에는 이미 많은 식민지 부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원병들은 남한 향촌 사회의 신분 차별 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원했고, 입대를 통해 근대적 시간, 엄격성, 평등성을 내면화하여 “정강(精剛)한 제국의 첨병”으로 단련되었으며, 일본군 병사와 함께 열대밀림, 고산지대, 광활한 습지를 누비며 분투했고 “극한의 전장환경과 생물학적 한계를 돌파하는 생존투쟁의 와중에서 전문적인 군사지식과 풍부한 실전경험을” 쌓았다고 말한다. 군국주의시대 일본군 홍보물에 나올 법한 이 말은 제국의 첨병이었던 이들이 1945년 이후에는 대한민국에 진충보국하는 조국의 간성이 되었다는 언술로 이어진다. 일본군국주의에의 복무와 충성이 대한민국 국방의 근간을 이루었다는,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 챕터(‘육군특별지원병, 이들은 누구인가?’)는 특히 섬뜩하다.”
-학문적 관점에서 봤을 때 수용할만한 주장은 하나도 없나.
“아니다. 조선토지조사사업이 토지 수탈의 과정이 아니었다는 것, 일제 시대에 일정한 경제성장이 이뤄졌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일축해서도, 친일 발언이라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일본으로 쌀을 ‘수출’했다고 서술하는 것은 수탈성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태도이다. ‘수출’은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개념이고, 사회과학적 서술은 그러한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들의 학문적 업적은 적나라한 정치적 목적에 퇴색됐다고 이 교수는 비판했다.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인 김낙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와 주익종 박사는 ‘재인식’에서 일제시대 경제적 근대화와 성장이 이루어졌음을 주장하면서도 그것이 일제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반일 종족주의’에 와서는 이 같은 조심스러움은 사라졌다. 일제시대에 경제성장이 있었다면, 근대적 제도가 도입되었다면, 그것만으로 일제 지배는 정당화된다는 사고가 이 책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이 노정하는 적나라한 정치적 목적과 선동적 표현은 존경 받을 만했던 저자들의 이전 연구 결과에 대한 학계의 신뢰에 칼질을 가하였다. 그런 점에서 저자들이 이 해괴한 책을 출간함으로써 스스로의 학문적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한 것이 안타깝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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