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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이 규정한 ‘정치 할 자격’… 그 부당함에 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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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젊은 정치] <9> 새로운 정치를 만나다
‘정치하는 엄마들’ 목소리 내며 사립유치원 문제 공론화 성과
개방성ㆍ확장성 담보하는 온라인, 기득권 정치 부수는 대안 가능성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다른 젊은 정치인의 생각이 궁금해서 왔어요.”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케이아트 스튜디오(K-ART STUDIO)에서 각 정당과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젊은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우리 정치의 고질적 현안인 ‘고령 국회’에 문제의식을 느낀 참가자들은 부산과 강원 할 것 없이 전국 곳곳에서 발걸음을 했다. 20여명의 참가자들은 정치색도, 몸 담은 정당이나 단체도 제 각각이지만, 이날만큼은 기득권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정치를 ‘젊게’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에 한데 섞여 앉았다.
10선의 거물 정치인을 꺾고 29세 최연소 여성 미국 하원의원이 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의원 등 정치 신인의 고군분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Knock down the House) 상영이 끝나자, 눈물을 훔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영화 감상 패널로 나선 임예인 한국일보 외부필진은 “’스타트업! 젊은 정치’ 연재가 수 차례에 걸쳐 보여줬듯 정치 지형 자체가 청년을 비롯한 여러 계층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계속 싸우면서 ‘시민과 닮은 정치인’을 만들어 낸다면 우리 정치도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곳곳에서 희망과 응원을 담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날 참석자 가운데 엄마, 지방 청년, 여성, 피선거권이 없는 청년, 대학생, 정당인으로 각자 자신의 현장에서 ‘젊은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8인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강미정(37)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엄마들은 경력이 단절되고, 집안에 격리되다 보니 정치적 힘이 없다. 조직화해서 엄마의 권익을 지켜보자는 취지로 ‘정치하는 엄마들’을 만들게 됐다. ‘집안일 하는 엄마’라는 인식을 깨고, 가사를 공적 영역으로 가져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처음에 단체 이름을 말하면 웃는 사람이 많았다. ‘엄마들이 무슨 정치냐’는 거였지만, 저희는 정부와 교육청도 알고도 어찌할 수 없었던 사립유치원 문제를 공론화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3년 밖에 되지 않은 작은 단체다. 회원 회비로만 운영되고 상근 활동가는 2명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낼 수 있던 건 ‘마이크’를 대하는 저희 단체만의 특징이 있기 때문. ‘말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정치적 행동인데 ‘정치하는 엄마들’에서는 대표만이 아니라 특정 이슈에 대해 할 말 있는 사람에게 마이크가 돌아간다. 이제는 아이들에게도 ‘정치적 주체로 자기 생각을 갖고만 있지 말고 당당히 말하라’고 독려할 것이다. 엄마들이 대표자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마이크를 잡았듯, 그 마이크를 아이들에게 넘기고 싶다.”
◇이베로니카(50)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한국에는 학교 내 성폭력을 고발한 ‘스쿨미투’ 학생들이 있다. 어린 학생들의 이야기를 누구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친구를 위해 두렵지만 힘을 냈다. 결과는 처절했다. 가해 교사들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기는커녕, 생활기록부를 들이밀고 학생을 협박해 주동자를 색출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한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가 한국의 스쿨미투 운동의 배경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스쿨미투’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본심의 안건으로 채택돼 제네바로 가게 됐다. 우리 청소년들은 국제사회 지지를 얻어냈으나 학교와 정부는 ‘위드유(피해자에 연대와 지지 뜻을 밝히는 것)’로 품어주지 않고 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무료 법률 상담을 지원하고, 학내 성폭력 실태를 알리는 전국 지도를 만들어 이에 동참하고 있다. ‘정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정부가 이제 응답해야 한다. 그것이 나이, 성별, 지위를 초월해 정치의 힘을 믿는 가능성의 시작일 것이다.”
◇이윤경(32) 자유한국당 청년 부대변인
“’스타트업! 젊은 정치’ 설문조사에서 개혁을 원하는 부분 1위 답변이 ‘세대 교체’였다는 점에서, 국민의 정치 변화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한국당과 여의도연구원(여연)에서도 청년ㆍ여성과 눈높이 맞추기는 힘든 과제 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 여연도 ‘젊은 정치’를 위해 변화하고 있다. 김세연 원장 취임 후 공유오피스 ‘위워크(Wework)’에 입주해 자연스럽게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일하는 방식을 보게 됐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전 직원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일하는 속도와 노력에 깜짝 놀랐다. 여연도 점차 업무공간에서 파티션을 걷어내 소통할 수 있게 하고, 탄력근무제도 도입했다.
‘보여주기 위해’ 여연이 환경과 문화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 조직에서 벗어나 다양한 연구조직을 구축하고, 당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2030을 설득하기 위해서 ‘밀레니얼 태스크포스(TF)’도 만들었다. 세 차례 비공개 간담회를 통해 50여명의 밀레니얼과 직설적인,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고 이를 정책으로 녹여내고자 하고 있다. 이런 도전들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기를, 더 나아가 ‘젊은 정치’라는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켜 정치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예휘(27) 정의당 부대표
“부당한 상황에서 ‘화 난다’가 아닌 ‘안타깝다’를 할 수 있는 지위가 우리 사회에선 누구에게 주어져 있을까.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나에게 유리해서 모른척할 수 있을 때, 나와 분리할 수 있다 느낄 때 말할 수 있는 게 바로 ‘안타깝다’는 표현이다. 방문에 나의 발가락을 찧었을 때, 육아휴직하고 돌아왔더니 책상이 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는 ‘안타깝다’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안타깝다’는 룰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공감은 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 하는 말이다.
’저는 지금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낙선한 후보 폴라 진 스웨어린전은 자신이 출마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여기에 있는 젊은 정치인들도 현실이 ‘안타깝다’고 느끼지 않고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하는 것이다. 무주택자, 성소수자, 불평등을 겪는 여성이 나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면 계속 화 내고, 정치해주시라.”
◇이설아(25) 바른미래당 경기도당 대학생위원장
“당직을 맡은 지 1년이 넘었는데, 지금까지 직접 발언할 기회가 주어진 적이 없었다. 처음 정치를 하고 싶다 생각한 건, 모교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학내 조직이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어 큰 논란이 됐지만, 학교에서는 징계할 방법이 없다고만 반복했다. 당시 현수막을 기획한 이가 다음해 학생회 선거에 입후보하자, 그를 대표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성명을 내고 200여명 학생의 서명을 받아 학교에 제출했다. 학교는 프라이버시를 내세워 징계상황을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고, 후보는 자진 사퇴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스템의 작동 결과가 아니라, 학생들의 압박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학생들이 행동을 했지만 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까. 저는 그 이유를 학교 당국과 학생의 권력 차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의 중요성을 깨달은 순간이다. 직접 나가서 이야기한 것들이 반영될 수 있게 힘을 가져야 하고, 성취를 이룰 수 있어야 비로소 변화는 시작된다. 구성원의 인식을 바꾸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은 국회의원이다. 무엇보다 정치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손솔(24) 민중당 인권위원장
“나는 직접 창당을 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2016년 21세에 민중연합당을 만들었고 대표가 됐다. 4년 동안 정당 활동을 했지만 여전히 만24세다. 피선거권을 만25세로 제한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출마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피선거권 연령제한 규정에 대해 위헌청구 헌법소원을 세 번이나 냈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이 되려면 △대의활동 능력 및 정치인식 능력 등이 필요하고 △병역 및 납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연령제한이 합당하다고 합헌 결정을 반복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겪는 문제가 정치적으로 진정성 있게 다뤄질 수 있을까.
‘정치할 자격’을 규정하는 것은 기존의 정치가 해온 관행이다. 권위주의, 연령주의에 따른 기득권의 시선이다. ‘50대ㆍ중년ㆍ남성’으로 요약되는 기성 정치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시민의 목소리가 왜곡 없이 표현되기 위해 시민이 직접 나서는 정치가 필요하다.”
◇김현우(24) 비례민주주의연대 활동가
“나는 국회가 나의,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국회에도 청년이 있지만 전체 의원정수의 1%도 되지 않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이 된다면 청년 비례대표는 20~40%로 늘어날 수 있다. ‘비례민주주의연대’는 ‘50%를 득표하면 50석을 받고, 10%를 득표하면 10석을 가져가자’고 주장하는 유권자 시민단체다.
지난 4월 30일 여야 4당 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탔다. 이 안건에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만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 등의 정치 개혁 내용이 담겨 있다. 두 개의 선택지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선택 가능성이 있을 때 갈등의 정치가 아닌 합의의 정치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시대적 과제인 선거제 개혁에 힘을 많이 모아달라.”
◇손상우(38) 미래당 부산시당 대표
“엄중한 시국이지만 지난 7월 참의원 선거를 알아보려 일본에 다녀왔다. 도쿄 도심의 아키하바라역에 아베 신조 총리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여 ‘아베 야메로!(아베 그만둬라)’를 외치는 모습을 촬영했다. 영상을 온라인에 올렸더니 하루 동안에 30만명이 봤다. 선거 당일 개표 방송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더니 동시 접속이 2,000명에 달했다.
그 때 견고한 기득권 정치를 부수고 젊은 정치를 확산할 수 있는 도구로써 ‘온라인’의 가능성을 봤다. 지난번 지방선거에 출마했는데, 명함을 나눠줄 때 만난 유권자들은 하나같이 ‘될 만한 당에서 나와야지’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온라인이야 말로 반복되는 기성 정치 구조를 넘을 ‘젊은 정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개방성을 담보하는 온라인의 가치는 ‘청년 주도 정당’ 미래당이 추구하는 바와도 일맥상통한다. 미국과 일본의 정치상황이 점점 나빠지는데, 우리나라마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제ㆍ사회적 역량이 있을 때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가 다른 나라로도 확산되어야 한다. 오늘 이 자리의 젊은 정치인들과 함께 새로운 정치로 이 시대에 해야 할 일을 함께 하는 기회를 만들자.”
정리=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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