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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강서 마지막 한 분 못 찾아 송구…”

입력
2019.08.14 11:39
수정
2019.08.14 18:45
15면

소방청 119국제구조대원 6명 합동 인터뷰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사고 현장에 119국제구조대원으로 출동한 대원들이 헝가리 내무부가 보낸 감사패와 수중 수색 당시 사용했던 인양줄과 동일한 제품의 인양줄을 넣은 기념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욱 소방위, 이재칠 소방위, 부창용 소방령(1진 대장), 김승룡 소방정(2진 대장), 조성태 소방경, 박성인 소방장. 소방청 제공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사고 현장에 119국제구조대원으로 출동한 대원들이 헝가리 내무부가 보낸 감사패와 수중 수색 당시 사용했던 인양줄과 동일한 제품의 인양줄을 넣은 기념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욱 소방위, 이재칠 소방위, 부창용 소방령(1진 대장), 김승룡 소방정(2진 대장), 조성태 소방경, 박성인 소방장. 소방청 제공

“마지막 한 분까지 찾지 못 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그들은 두 달간 최선을 다했다. 몸이 휩쓸려갈 정도의 빠른 유속, 수중 시야가 50㎝인 암흑의 공포, 코를 찌르는 동물들의 사체 냄새 속에서도. 그럼에도 그들은 죄송하다며 한결같이 송구스러워 했다. 1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행정안전부 브리핑실. 헝가리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사고 수색현장에 나섰던 소방청 119국제구조대원 합동 인터뷰 자리에 선 대원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은 죄송함, 송구함, 미안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지난 5월 30일 오전 국민들에게 충격적인 비보가 전해졌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를 가로지르는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관광객 33명을 태운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침몰해 7명은 구조됐지만 7명이 사망하고 19명이 실종됐다는 뉴스였다. 정부는 곧장 소방과 해경, 해군 25명으로 구성된 합동 긴급구조대를 꾸렸다. 긴급 구조대의 주축인 소방청 119국제구조대 1진 12명은 해경, 해경 대원들과 이날 늦은 오후 약 800㎏의 수난구조 장비를 꾸려 2번의 환승을 거쳐 헝가리로 날아갔다.

혹시 살아 있을 수 있는 생존자와 실종자를 찾기 위해 여건이 허락할 때마다 잠수하고, 매의 눈으로 다뉴브강 주변을 살폈다. 모든 에너지를 다뉴브강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월 30일부터 수색을 시작해 수색 기간 연장을 2번이나 거쳐 지난달 30일까지 구조활동을 펼쳤다. 육상 수색 450㎞, 수상 수색 410회(6,800㎞), 공중 수색 86회(7,000㎞), 수중 수색 14회를 했다. 수색 방법은 매일 12~15㎞ 정도 하류 쪽으로 진행했다.

실종자 시신은 19구 중 18구를 수습했다. 6월 10일까지 시신 12구를 수습했고 다음날 선체 인양 후 선체 수색 과정에서 3구, 6월 22일까지 수색 활동 중 시신 2구를 수습했다. 2진 활동 기간 중인 지난달 5일 양국의 합동 육상 수색 과정에서 실종자 1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

1진 대장 부창용(왼쪽) 소방령과 2진 대장 김승룡 소방정. 소방청 제공
1진 대장 부창용(왼쪽) 소방령과 2진 대장 김승룡 소방정. 소방청 제공

대원들의 미안함과 달리 열악한 수색 여건과 다뉴브강의 넓은 유역을 고려하면 그들의 노고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우선 현장의 수중 수색 여건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강물의 탁도가 너무 심해 수중 랜턴을 비첬지만 시야는 고작 50㎝였다. 잠수 임무 중엔 파손된 선체와 강바닥에 있는 2차대전에 수몰된 교각 잔해 등이 공기를 공급해 주는 생명줄을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사고 현장의 유속은 초당 2.5~3m. 거센 물살에 휩쓸리면 구조대원들도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강 표면의 수온은 인간의 체온보다 20도 이상 낮은 15도. 그래서 수중 수색은 최대한 선체에 근접해서 주변을 일일이 손으로 더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유속이 상대적으로 약한 선체 주변이었지만 생명줄로 지탱해야 원활한 수색이 가능했다.

공포감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1진 대원이었던 박성인 소방장은 “수중 수색 여건이 너무 열악해 사실 심적 부담이 컸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박 소방장은 “두려웠지만 수중에 희생자들이 있을 것이고 시신을 가족에게 돌려드려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심적 부담을 떨쳐낼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육상 수색도 쉽지 않았다. 수심 4m인 강변에만 가도 진흙뻘이었다. 수풀이 무성하고 모기떼가 극성을 부려 온몸에 모기 퇴치제를 뿌려야 할 정도로 ‘모기와의 전쟁’을 벌였다. 후유증으로 붉은 반점이 생겨 고생한 헝가리 대원도 여럿 있었다. 길이 없이 수풀만으로 된 곳은 마치 원시 정글을 헤치고 나가는 것처럼 도끼 기능이 있는 자루칼을 들고 다녀야 했다.

현장 여건이 워낙 위험해 소방청과 헝가리 수색 당국은 대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었다. 기본적인 안전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부창용 소방령은 “우리나 헝가리나 사고 현장에서 영웅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말로 안전 중시를 에둘러 표현했다. 특히 수중 수색을 할 때는 인근 병원의 비상연락망을 확보하고 강변에 응급구조차를 불러 놓고 임했다.

구조 활동에 임하면서 마음 아픈 적도 많았다. 운구조로 1진 대원이었던 김성욱 소방위는 “국가대표 자격으로 출동한 것이라 실종자를 꼭 찾아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나갔지만 막상 선체 안에서 시신을 인양하고 수습할 때는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김 소방위는 “특히 6세 아이를 수습할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고 비통해했다. 부창용 소방령은 “허블레아니호 인양 전에 ‘못 찾은 우리 국민 7명이 다 안에 있었으면’하고 바랬는데 3명밖에 못 찾았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아팠다”며 “다 찾아서 귀국해야 했는데…”라며 얼굴이 붉게 상기되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세 명의 실종자가 보이지 않고, 3일간 선체 수색을 했지만 찾지 못하자 많이들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대원들은 3일간 선체 수색에서 추가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 했을 때도 마음이 힘들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인양 직후 선체를 수색했던 이재칠 소방위는 “선체 안으로 더 들어가려고 하니까 헝가리 측에서 잘못하면 감전될 수 있다며 못 들어가게 막았다”며 낙담한 당시 심정을 전했다.

“시신을 빨리 찾아 가족에게 보내야 한다는 마음은 다른 대원들도 똑같았다. 대원 한 명은 50대 여성의 시신을 수중에서 아예 끌어안고 수상으로 올라오는 집념을 보였다.

참혹한 사고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끝내고 나면 트라우마가 엄습하게 된다. 이번 대원들도 마찬가지다. 두 달간 임무수행을 하다 보니 실종자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파고드는데 차단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대원들은 이날 합동 인터뷰에서는 ‘후각 트라우마’에 대한 고통도 호소했다. 2진 대장인 김승룡 소방정은 “동물이 부패하는 정도에 따라 후각이 여러 가지를 작용시키면서 구역질을 하고, 냄새 지역을 피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고, 정신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후각 트라우마에는 실종자 시신의 부패 냄새도 포함된다고 한다. 시신을 찾고, 인양하고, 신원 확인을 거치다 보면 시신의 냄새를 맡게 되는데 그 때가 머릿속에 떠오른다는 것이다.

.김승룡 소방정은 “임무수행 후에 4박 5일씩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트라우마에 노출된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다년간 치료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라며 “해외 출동만이 아니라 국내 대형 재난에 노출된 소방대원들도 지속적으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대부분 희망을 봤던 찰나로 기억했다. 1진 대장이었던 부창용 소방령은 “시신을 처음 인양할 때 나머지 시신들도 찾을 수 있겠구나, 선체에 시신이 있겠구나”라고 기대감에 찼었다고 말했다. 2진 대장이었던 김승룡 소방정은 “7월 5일 시신을 수습했을 때 생존자를 찾았을 때 이상으로 벅찼다”고 기억했다. 김승룡 소방정은 “의욕에 찬 우리 대원들의 모습을 보고, 헝가리 측이 자극을 받아 7월 28일까지 수색을 연장하자고 먼저 요청을 해 왔다”고 밝혔다.

대원들은 헝가리 교민들의 봉사 활동이 구조 활동에 크나큰 도움이 됐다며 감사의 마음의 전했다. 부창용 소방령은 “교민 중 통역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은 구조대원들이 헬기 조종사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헬기에 탑승해 통역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대사관에서 통역이 지원됐지만 활동 범위가 넓어 통역이 많이 필요했는데 그 자리를 교민들이 메워준 것이다. 1진 대원이었던 이재칠 소방위는 “활동 기간을 정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속옷과 같은 개인 용품을 챙길 시간이 없어 매일 빨래를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현지 공관에 계신 분들과 교민 분들이 현지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세심하게 챙겨 줘 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교민들은 교민들 대로 “구조대가 멀리 외국에서까지 자국민 구조 활동에 나서 기가 산다”는 취지의 표현을 여러 차례 했다고 전했다.

첫 해외 수난구조 활동 후 개선점에 대해 김승룡 소방정은 “소방청에서도 전반적인 분석을 통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사고 유형별로 특수장비를 사전에 세팅해 놓을 필요가 있고, 장기간 활동에 대비해 구호물품 키트처럼 미리 세팅된 개인용품을 준비하면 구조 업무의 완성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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