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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가톨릭판 ‘도가니’…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신부님은 악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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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멘도사주 법원 앞에는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홀로 앉아 있는 여성과 연인 곁에 꼭 붙어 있는 남성, 친구와 함께 온 사람, 이들은 모두 같은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었다. 모두 청각 장애를 앓고 있으며 같은 학교를 다녔고, 니콜라 코라디(83)와 호라시오 코르바초(59)라를 안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부인 두 사람은 12년 동안 청각장애 아동을 위한 특수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이날 법정에 섰다. 법정 앞에서 서성이던 이들은 코라디와 코르바초의 희생자들이다.
코라디와 코르바초 신부는 가톨릭 학교인 ‘안토니오 프로볼로 청각장애인학교’ 아르헨티나 멘도사 캠퍼스에서 근무했다. 두 피고인은 동료 교직원들과 함께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최소 22명의 남녀 학생들을 성폭행·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긴 법정 싸움이 시작되는 첫 공판일이 이번 5일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성폭행한 후, 하혈을 감추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기저귀를 착용시켰다.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하지 않을 때에는 학생들에게 음란물을 보여 주거나 성적행위를 하도록 강요했다. 한 피해자는 쇠사슬로 묶인 상태에서 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코라디와 코르바초 신부는 청각 장애를 앓는 학생들이 제3자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노렸다. 코라디 신부가 관리자격 위치에 있던 프로볼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수화를 가르치지 않았다. ‘비장애 학생과 동일한 방법으로 의사소통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이 교육방침은 피해 학생들을 바깥세상과 단절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학생들은 교내에서 수화를 사용하다 발각되면 체벌까지 받았다. 이에 선배 학생들이 후배들에게 비밀리에 수화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번 범행의 주동자로 지목되는 코라디 신부는 동료 교직원·성직자들에게 자신과 함께 학생들을 성폭행·추행하도록 부추겼다. 그러나 멘도사주에서의 범행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코라디 신부는 멘도사주에 오기 전에 안토니오 프로볼로 청각장애인학교 이탈리아 베로나 캠퍼스와 아르헨티나 라플라타 캠퍼스에서 근무했는데, 당시에도 학생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일삼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50년대부터 코라디 신부의 범행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이 코라디 신부의 범행 사실을 알고서도 묵인했다는 주장 역시 제기되고 있다. 코라디 신부가 1970년까지 근무했던 이탈리아 베로나 캠퍼스의 피해자 67명이 2009년에 가해 교직원·성직자 24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 중 징계가 내려진 인원은 4명뿐이다. 그나마 1명은 ‘평생 미성년자와 떨어져 기도와 고행의 삶을 살 것’을 명받았고, 나머지 3명은 경고에 그쳤다. 24인의 명단 중 코라디 신부의 이름도 포함돼 있었지만 그는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전 근무지에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신부를 한 학교의 관리자로 계속 놔둔 것이다. 피해자들은 다시 14명의 가해자 명단을 추려서 교황에게 직접 서신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을 수 없었다. 이듬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만나 명단을 전해 줬지만 4개월 후에 받은 답장 한 장이 전부였다.
아르헨티나 사법 당국이 2016년에 코라디와 코르바초 신부를 비롯한 교직원들을 체포하자 교황청도 조사단을 파견했다. 당시 조사관이 교황청에 해당 신부들로 하여금 “교황 성하에게 직접 사의를 표하도록 할 것”을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후속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사자에 대한 징계는커녕 피해자에 대한 위로조차 없었다. 멘도사 캠퍼스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어머니인 파올라 곤잘레스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지) 2년 반이나 지났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프로볼로 학교 멘도사 캠퍼스의 생존자들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교황청은 성직자에 의한 미성년자 성추문이 일 때마다 ‘솜방망이’보다 약한 ‘솜뭉치’ 처벌로 피해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초기부터 꾸준히 성범죄 근절과 약자 보호를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해 왔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공허할 뿐이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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