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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략적 패착… 무릎 꿇을 줄 알았던 한국이 꼿꼿해 놀랐을 것”

입력
2019.08.06 04:40
수정
2019.08.06 08:5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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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전문가 긴급진단] 김기정 연세대 교수

日, 부상하는 중국과 맞서려면 한국 껴안아야 하는데 밀어내

한일 관계 파국 직전은 아냐… 새로운 연대 착수해야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한반도 평화 공존 질서로 '65년 체제'의 반공이라는 전략적 이익을 대체할 수 있도록 일본 시민 사회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한반도 평화 공존 질서로 '65년 체제'의 반공이라는 전략적 이익을 대체할 수 있도록 일본 시민 사회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김기정(63)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배제 결정으로까지 이어진 최근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대해 “잘못된 결정이 나쁜 타이밍에 이뤄졌다”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오판 탓”이라고 평가했다. 5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다. 그는 “중국과 맞서려면 껴안아야 할 한국을 밀어내는 전략적 패착을 일본이 뒀다”며 “아베 총리는 급소를 맞고 무릎을 꿇을 줄 알았던 한국이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랐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인들에게 민족주의적 정서가 디폴트로 장착돼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라고 그는 부연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65년 체제’의 동요가 최근 한일 갈등의 근본 배경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65년 체제의 두 축 중 하나였던 반공(反共)을 대체할 양국의 전략 이익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적 질서라는 기대감을 일본 시민 사회에 심어줄 수 있도록 공공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_그렇잖아도 지난달 초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 강화가 점화한 한국 시민 사회의 반일 캠페인에 이달 2일 화이트리스트 배제 강행이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아베 총리가 전쟁을 걸었을 때 계산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한국인에게 민족주의적 정서가 기본 사양, 즉 디폴트로 장착돼 있다는 사실을 아베 총리와 주변 전략가들은 몰랐을 거다. 식민 지배라는 수치스러운 고통을 넘어서야 한다는 게 우리 역사교육의 결론이다. 문화적 메커니즘을 통해 집단 기억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착근됐다. 수면 아래에서 통제돼 오던 정서가 아베 정부의 도발로 격발되는 바람에 수면 위로 올라온 거다.”

_아베 총리에게 전략적 고려가 있었을까.

“북방 세력(북ㆍ중ㆍ러), 특히 두려운 적으로 부상 중인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진영(陣營)을 꾸리려면 불편해도 한국을 껴안아야 했는데 오히려 밀어내버리며 전략적 부담을 키웠다. 박근혜 정부에게 하던 ‘이웃나라 길들이기’ 또는 과거 합의를 뒤집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분풀이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아베 총리는 나라 바깥 적의 존재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국내 정치적 이익을 챙겨왔다. 오래 집권하며 자기 과신이 생긴 듯하다. 급소를 치면 한국이 무릎을 꿇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엎드리기는커녕 더 꼿꼿이 일어서니 적지 않게 놀랐을지도 모른다.”

_지금 한일관계를 파국 직전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아니다. ‘65년 체제 이후’ 프레임워크의 설계를 시작하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패전국인 일본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국제관계에 복귀하던 1945년 당시 한일 간에 외교 관계가 성립해야 했는데, 두 축이 역사 청산과 반공이었고, 65년 체제는 두 축이 결합한 결과다. 애초 역사 청산 축은 불안했다. 일제 식민 지배가 합법이냐 불법이냐에 합의하지 못하고 양측이 각기 해석을 달리하게 내버려둔 채 봉합해버린 결과였다. 다른 한 축인 반공은 90년대 탈냉전으로 붕괴했는데, 이후 양국이 공유할 수 있는 전략적 이익을 찾지 못했다.”

_어차피 불거질 갈등이었다는 뜻인가.

“위기는 기회다. 한국은 새로운 양국 연대 관계 만들기에 착수해야 한다. 역사 청산의 종착지는 역사적 화해다. 국제정치에서 화해의 시작은 가해자ㆍ피해자를 나누는 일이다. 때문에 한일 간 화해는 일본이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아베 정권 이후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다. 화해로 가는 과정에서 갈등, 위기, 봉합이 반복될 공산이 크다. 외교적 관리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전환기가 시작됐다.”

_반공의 빈 자리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한미일 진영을 유지하려는 의지는 지금 미국보다 일본이 강하다. 중국과의 대결 구도로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재확립하려는 게 아베의 전략이다. 그러나 신(新)냉전으로 한반도에 진영 구도가 다시 만들어지면 한국이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런 협착 구조를 어떻게 탈피하느냐가 향후 한국 외교의 핵심 과제다. 한반도 평화 공존에서 시작될 동북아의 평화 질서가 양국의 경제ㆍ정치적 이익을 보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일본에 심어줄 필요가 있다.”

_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나.

“아베 정부와 일본 국민을 분리해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아베 정부의 노림수였겠지만 한반도 평화 공존 질서가 견고해질 때까지 도발하지 못하게 아베 정권을 더 잘 관리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기정 교수는

현 정부 집권 초기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을 지낸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브레인’ 중 한 명이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문 대통령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연구위원장을, 정부 출범기에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외교안보분과위원장을 맡았다. 2010~2011년 일본 게이오대에 방문 교수로 다녀온 지일파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최종건 안보실 평화기획비서관 등과 함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라인’(연정 라인)으로 분류된다. 미국 코네티컷대에서 1989년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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