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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첫 특정국가에 보복 조치… 패권국가 신호탄 쏜 아베

입력
2019.08.05 04:40
수정
2019.08.05 07:3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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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권 본색 드러낸 日] <상> 아베, 패권국가 기치 올리다

 ‘강한 일본’ 기치 주변국과 힘 대결… 국제규범 존중서 180도 돌변 

아베 신조(가운데) 일본 총리가 2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정을 앞두고 장관들과 함께 앉아 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
아베 신조(가운데) 일본 총리가 2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정을 앞두고 장관들과 함께 앉아 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등 한국을 겨냥한 일본의 경제보복은 무역을 무기 삼아 정치ㆍ외교ㆍ안보 등 분야에서 한국의 팔을 비틀어 자국의 이익을 취하겠다는 행위다. 전후 일본이 핵 개발국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에 동참한 것을 제외하면 특정국을 상대로 보복조치를 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미국의 관세정책과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보복처럼, 국익을 우선시하는 전 세계적인 흐름 속에 ‘강한 일본’을 기치로 주변국과 힘의 대결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패권국가를 지향하는 신호탄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쏘아 올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집권 이후 극우집단과 보수여론, 그리고 안정적인 경제를 등에 업고 군비를 강화하고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향한 개헌에 온 힘을 기울여 온 아베 총리. 2019년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기점으로 동아시아를 제패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향수를 잊지 않은 아베 총리의 혼네(本音ㆍ본심)가 드러난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아베노믹스ㆍ미일동맹으로 자신감 확보 

일본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한국과의 역사ㆍ영토 문제에서 갈등을 반복하면서도 지켜왔던 ‘정경분리 원칙’을 깨버렸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판결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제분업 시스템을 무시하며 경제보복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안전보장상 이유’로 일본의 안보정책에서 한국의 위상을 재정의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규범과 자유무역 등을 중시해 오던 이전의 일본과는 완전히 다른 패권국가의 모습이다. 역사 갈등이 경제ㆍ안보 갈등으로 확전되면서 아베 정권하에서 한일관계를 이전처럼 되돌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패권국가로 나아가는 일본의 강경한 입장에는 아베 총리를 비롯한 정권의 핵심인사들의 인식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트럼프류(流) 인사로, 2차 내각 출범 후인 2013년 출간한 저서 ‘새로운 나라로’에서 “강한 일본을 되찾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낸 바 있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장기 불황 시기였던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미일동맹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열린 인도ㆍ태평양 전략을 주도하면서 경제뿐 아니라 외교ㆍ안보 분야에서 점차 자신감을 회복 중이다. 특히 미중 패권경쟁구도 속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해외 방위비 절감과 일본의 군사력 강화 움직임이 맞아떨어지면서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묵인 속에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경제력, 세계 최대 강국의 동의, 그리고 여기에 군사력이 더해진다면 패권국을 향한 아베의 야심이 거칠 게 없어진다.

 개헌 염두에 두고 한일갈등 장기화 전망 

이런 과정에 한일관계는 갈등이 잇따르면서 일본 측의 한국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됐다. 지난해 9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화해ㆍ치유재단 해산 방침 통보, 10월 대법원 판결, 12월 해상자위대 초계기 레이더 조사(照射ㆍ비추어 쏨)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총리관저에선 “더 이상 한국을 안보우호국으로 대우하기 어렵지 않으냐”는 의견이 나왔고, 올 1월부터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한일관계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지난해 9월 한일 정상회담 이후 사실상 양국 간 물밑대화도 단절됐다”고 전했다. 양측 간 파이프가 상실된 상황에서 관계 회복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경제보복을 둘러싼 일반 국민의 지지를 확인한 것도 아베 정권이 한국에 대해 패권지향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요인이다. 지난달 21일 참의원선거에서 한국과의 경제 갈등이 부각되지 않았음에도 언론들의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지지하는 의견이 50~70%대를 기록했다. 이는 임기 내 개헌을 추진하고 있는 아베 정권에 유용한 재료가 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중국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고, 올해에는 북한과의 조건 없는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밝히는 등 기존 적대국들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의 대립은 개헌 동력과 아베 정권의 임기 후반 구심력 마련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정치구도상 개헌을 위해선 일본유신회 등 보수 강경파들과의 협력도 절대적이다. 이들은 한국 때리기를 강하게 주장하는 세력들이라는 점에서 아베 총리가 당분간 한국과의 갈등을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아베 총리가 개헌에 올인한다 해도 세계 제3위 경제대국 일본이 군사력 증강을 통해 동아시아 패권국가로 등장할지에 대해선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베 총리가 국민민주당 등을 끌어들여 개헌안 발의선(164석)을 확보할 경우, 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 개정에 부정적인 공명당과 국민민주당의 의견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 이에 기존 9조 내용을 유지한 채 자위대 명기를 추가하는 것 이상의 개정은 어렵다는 것이다. 개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낮은 상황에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아베 정권이 아베노믹스 외에 뚜렷한 성과가 없기 때문에 전후 헌법을 개정한 첫 총리라는 상징적 의미를 확보하는 정도로 당면 목표를 설정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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