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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리뷰] 영화 ‘나랏말싸미’ “심심한 파격” vs “통찰 빛나는 시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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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 최대 성수기인 여름이 시작됐다. 제작비 100억원대 한국 영화 4편(나랏말싸미, 엑시트, 사자, 봉오동 전투)과 할리우드 기대작 1편(라이온 킹)이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관객들의 선택을 돕기 위해 한국일보 대중문화 담당 기자들이 여름 영화 5편을 차례차례 뜯어 보고 별점을 매긴다.
모든 백성이 글자를 읽고 쓰기를 바랐던 세종의 꿈이 스크린에서 부활했다. 영화 ‘나랏말싸미’(24일 개봉)는 한글 창제 과정에 불교계가 참여했다는 설을 토대로 왕 세종(송강호)과 승려 신미(박해일)가 산스크리트어(불경을 기록한 문자)에서 착안한 원리로 한글을 만드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 ‘사도’(2015)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평양성’(2011) ‘달마야 서울 가자’(2004) 등을 만든 베테랑 제작자 출신 조철현 감독이 60세에 늦깎이 연출 데뷔하며 15년간 품어 온 주제를 꺼냈다. 송강호와 박해일, 고 전미선(소헌왕후)이 ‘살인의 추억’(2003) 이후 16년 만에 재회했다.
◆‘나랏말싸미’ 20자평과 별점
20자평 | 별점 | |
양승준 기자 | 밑바닥에서 태동한 ‘한글 혁명’ 반전의 맛. | ★★★ |
강진구 기자 | 역사적 의의는 깎고, 영화적 재미는 접고. | ★☆ |
김표향 기자 | 진심과 통찰로 빚어낸 크고 깊은 울림. | ★★★★☆ |
★다섯 개 만점 기준, ☆는 반 개.
◇혁명의 짜릿함, 튀다 만 ‘불꽃’
처음부터 미스터리였다. 유학의 성지인 집현전이 정말 한글 창제의 핵심 기관이었을까. 한자로 권력을 쥔 집단에서 새로운 언문을 만들어 권력을 스스로 허물려 했다는 건 비현실적으로 낭만적이다.
‘나랏말싸미’는 예상치 못한 각도로 비밀의 문을 연다. 불교의 경전은 산스크리트어 등 표음문자를 기반으로 한다. 불교의 언어가 시ㆍ공간을 뛰어넘어 표음문자를 전달했고, 스님이 소리를 근간으로 한 한글 창제의 불쏘시개 역을 했다니. 영화의 가정은 전복적이다. 숭유억불의 시대, 극에서 스님은 자신을 ‘개’라 부른다. 가장 비루한 곳에서 한글은 연꽃처럼 핀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의 과정을 다룬 어떤 드라마와 영화보다 혁명적이다. 감독은 한글의 기이한 탄생을 무리 없이 펼친다. 하지만 당시 시대의 상식을 거스른 파격 만남에 따른 ‘불꽃’이 확 튀지 않는다. 심심함, 이 영화의 약점이다.
파격적인 이야기가 극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도록 한 건 배우들이다. ‘송강호표 세종’의 구수함은 틈틈이 맛을 낸다. 이렇게 ‘단호박’이었다니. 여린 역을 주로 맡았던 박해일의 반전도 흥미롭다. “오랜만에 때 좀 밉시다.” 왕의 옆에서 필부(匹婦)로, 때론 ‘철의 여인’으로 부드러움과 강단을 아우를 수 있었던 건 전미선이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다시 한번 RIP(Rest In Peace).
양승준 기자
◇납득할 수도, 몰입할 수도 없는 허구
훈민정음을 둘러싼 뒷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세종대왕이 독자적으로 혹은 소수와 함께 만들었다는 것이 학계 정설로 굳혀졌을 뿐이다. 창제 과정에서 어떤 사람과 논의를 거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지금껏 훈민정음과 관련된 여러 야사가 전해지고 있다. ‘나랏말싸미’는 그 중에서 신미대사 조력설을 채택했다. 유교국가 조선에서 탄압받던 스님의 도움으로 훈민정음이 만들어졌으나, 사대부 반발을 우려해 이를 역사서 등에는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는 더 나아가 그가 사실상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주장한다.
영화의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 영화는 신미대사가 범어(산스크리트어)와 파스파 문자 등에 통달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글 자모음을 완성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한글이 발음기관 모양과 천지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분명하게 나온다. 신미대사가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했다는 증거로 언급되는 서적 대부분도 진위를 두고 논란이 있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의 시작’이라는 시대극을 표방하면서, 그 내용은 실제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오히려 훈민정음 의의를 깎아 내리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배제해도 ‘나랏말싸미’는 지루하다.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이 그려지지만, 몰입할 만한 장면은 몇 없다. 전제군주제였던 조선의 왕 앞에서 무례하다 느껴질 정도로 꼿꼿한 신미대사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기만 하다. 세종과 신미대사 사이에서 조력자 역할을 하면서도 풍부한 감정을 드러낸 소헌왕후만 기억에 남을 뿐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강진구 기자
◇한글 창제 정신을 그대로 닮은 영화
조철현 감독은 한글을 짓는 마음으로 ‘나랏말싸미’를 만든 것 같다. ‘백성들이 제 뜻을 쉽게 펼 수 있도록 글자를 만들었다’는 한글 창제 정신이 인문학적 통찰을 거쳐 스크린에 옮겨졌다. 이단시되는 학문에서도 지식을 취하는 세종의 유연성과 포용력, 신분과 격식을 뛰어넘은 세종과 신미의 지성적 교감에서 한글이 지향한 지식의 평등과 애민사상을 발견한다. 아름다운 대사들은 흘려 듣기 아까울 정도다.
영화는 한글의 창제 원리를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풀어낸다. 점ㆍ선ㆍ면이 모여 글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왕ㆍ승려ㆍ왕비ㆍ대군ㆍ궁녀가 뜻을 함께하는 과정이 포개진다. 서사의 짜임새가 뛰어날 뿐 아니라 뜻밖에도 아기자기한 재미까지 있다. 보고 싶은 마음을 ‘ㅂㄱㅅㄷ’ 자음으로 수줍게 표현하는 장면은 현대적이기도 하다.
문자로 지식 독점과 권력 집중을 해소하려 했던 세종의 의지는 지금의 시대 정신과 공명한다. 유교와 불교로 대변되는 가치관의 충돌은 진영 싸움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를 반추한다. ‘나랏말싸미’는 그렇게 과거가 아닌 오늘을 이야기한다.
세종을 곁에서 독려하고 보듬으며 궁녀들을 통해 한글을 널리 퍼뜨리는 소헌왕후는 여성 서사의 진보다.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던 세종과 소헌왕후의 애틋한 관계는 멜로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의 담백하면서도 정밀한 연기, 서사를 해치지 않으면서 감정을 북돋는 음악도 언급할 만하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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