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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만 넘어도 살인적 피로감… 폭염 작업 중지 기준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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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연쇄살인, 폭염] 국내 편 <3> 노동자 노린 폭염
출근길부터 숨 막힐 듯한 더위였다. 아침 8시인데도 지난해 7월 23일 부산 동래구의 기온은 29.2도, 습도는 70%에 달했다. 포장이사업체 직원 최모(42)씨는 오전부터 정오까지 이삿짐을 날랐다. 30.3도, 32도, 32.3도. 시간이 지날수록 기온은 치솟았다. 최씨와 동료들이 물을 찾거나 잠시 쉬는 빈도도 점차 늘었다. 포장이사 작업은 낮 12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점심을 먹던 최씨는 동료들에게 피로감을 호소했다.
동료들의 배려로 최씨의 오후 작업은 사무실 내 자재 정리가 배당됐다. 그러나 그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오후 1시부터 사무실에서 일하던 최씨는 오후 2시30분쯤 사무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마당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119 구급대가 출동해 그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늦었다. 의료진은 오후 3시20분 최씨가 사망했다고 진단했다. 사인은 열사병. 지난해 숨진 최씨는 올해 들어 온열질환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폭염은 한낮에도 일을 멈출 수 없는 노동자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온열질환 산재 신청은 42건이었다. 2017년(14건)의 3배에 달했다. 지난해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최소 1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폭염 피해 사망자로 지난해 산재를 신청해 1차 심사를 받은 6명과 해를 넘겨 올해 1차 심사를 받은 4명을 합친 숫자다.
그러나 이마저도 정확한 집계는 아니다. 온열질환 사망 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가 신고를 안 하거나, 산재 신청이 안 돼 통계에 포함되지 못한 폭염 사망 노동자도 있기 때문이다.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은 15일 “현재 고용노동부 온열질환 산재 통계는 추락 등 다른 사고와 중첩될 경우 온열질환에서 배제하기 때문에 정확한 현황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폭염 피해 예방을 위해 노동자의 작업을 멈출 수 있는 근거도 명확하지 않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여름철 건강일터의 기본 요건’에는 작업장 온도와 습도를 수시로 확인하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지만, 올해는 이 내용이 빠지고 대신 ‘폭염 위험 단계’가 새롭게 안내됐다. 폭염 위험 단계는 ‘관심(기온 31도), 주의(33도), 경계(35도), 심각(38도)’으로 나뉜다.
하지만 최고 단계인 심각이 ‘폭염 경보’ 기준(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태)보다 높아 노동 현장에선 혼란스러워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진우 부장은 “작업 중지 기준을 사실상 38도로 본 것인데, 이는 최악의 폭염이었던 지난해 여름에도 드물었던 기온”이라고 꼬집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도 “실제 옥외 노동 현장은 30도만 넘어도 복사열 등으로 인해 체감하는 더위가 더욱 심하다. 올해 권고안은 현장에 적합하지 않은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폭염 시 작업 중지를 법으로 보장하는 근거도 부족하다. 지난해 12월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중 작업중지권 보장 요건에는 폭염이나 한파가 포함되지 않았다. 폭염 등 기상 상황에 따른 작업 중지도 가능하도록 지난해 9월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이 각각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아직 상임위 계류 중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신창현 의원은 “노동부의 폭염, 노동 가이드라인은 권고 사항일 뿐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실효성 담보를 위해서는 폭염, 한파 등 재난 상황에서 휴게시간 조정을 위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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