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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명 앗아간 사상 최악의 시카고 폭염… 죽음은 평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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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연쇄살인, 폭염] 해외 편 <1> 1995년 폭염 참사, 시카고에선 무슨 일이
폭력범죄율 1위 풀러파크 폭염 사망률 최고… 우범지역 에어컨 없어도 창문 못 열어
1995년 7월 13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낮 최고기온은 41도까지 치솟았다. 체감온도는 52도. 그로부터 사흘 연속 38도를 넘는 폭염이 이어졌다. 전기 사용량이 급증했고, 정전이 잇따랐다. 시민들은 길거리 소화전 뚜껑을 열어 그 물로 더위를 식혔다. 이 정도 기온에 이리 많은 희생자가 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은 못했다. 하지만 창문을 열지 못한 채 답답한 방 안에서 폭염에 숨진 사람들이 연이어 발견됐다. 그렇게 14일부터 20일까지 단 일주일 만에 이 도시에서 739명이 사망했다. 사상 최대의 폭염 참사였다.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95년 시카고 폭염 당시 죽음은 평등하지 않았다. ‘사회적 부검’ 결과 부유층 거주 지역보다는 폭력범죄율이 높고 빈민층이 주로 사는 우범지역에서 폭염 피해자가 더 많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우리의 ‘가까운 미래’가 될 수도 있는 95년 시카고 여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굳게 닫힌 집 안, 누구도 예상 못한 살인범
지난달 22일 시카고 더글러스 이스트 32번가 오래된 주택 앞. 발레리 브라운(67)씨는 할머니 앨버타 워싱턴이 젊은 시절부터 평생을 보낸 집 앞에서 95년 그 뜨거웠던 여름의 기억을 풀어놨다.
“자다가 숨이 막혀서 깬 날이었죠. 침대 옆 창문에서 바람이 불어왔는데도 질식할 것 같았어요.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했는데 안받았어요. 저녁이 돼도 마찬가지였죠. 동생이 할머니 집 열쇠를 가지고 있어서 가보라고 했는데 얼마 뒤 동생에게 전화가 왔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브라운의 할머니는 당시 70대였지만 건강했다고 한다. 평소 활기찬 성격에 복용하는 약도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숨져갔다.
할머니가 쓰러져 있던 집 안, 외부의 침입 흔적은 없었다. 모든 창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할머니는 침대 가장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달궈진 오븐 안으로 머리를 넣는 기분이었어요. 그 많은 창문이 모두 닫혀있었어요. 남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창틀에 못을 박아뒀거든요.”
‘더위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 있구나’, 브라운씨는 그때 깨달았다. “할머니에게 더위란 잠깐 바람을 쐬면 해소되는 거였어요. 집엔 선풍기도 없었어요. 손부채가 전부였죠. 그런데 사람이 폭염 때문에 죽다니, 믿을 수 없었죠.”
할머니 장례식은 95년 7월 20일에 치러졌다. 브라운씨는 할머니의 시신을 옮겨갈 차량을 보고 다시 기겁했다. 시신은 구급 차량이 아니라 냉동 트럭에 실렸다.
“트럭 안에 이미 다른 시체들 5, 6구가 장작처럼 쌓여 있었어요. 거기에 저희 할머니 시신 한 구가 더 쌓였어요. 이 동네에서 실을 시신이 더 있었거나 이미 다른 시신을 수습한 상태에서 저희 할머니 시신을 실은 거죠.”
◇시신 수습에 매달릴 수밖에 없던 911
할머니 시신은 사망 확인 직후 냉동 트럭에 실려 시체안치소로 옮겨졌다.
“911에 ‘여기 누가 죽었어요’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폭염으로 사망하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출동한 사람들도 현장이 너무 더우니까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 이렇게 적어 바로 트럭에 시신을 쌓았어요. 시신을 한 구씩 옮길 수 없었을 거예요. 너무 많았잖아요. 한꺼번에 쌓아서 옮겼어요.”
이렇게 모인 시신들은 일리노이 메디컬 디스트릭트에 있는 쿡카운티 시체안치소로 옮겨졌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 나흘 만인 15일 토요일엔 시체안치소 수용 가능 한계치인 222구보다 훨씬 많은 수의 시신이 안치소에 쌓였다. 시신을 싣고 온 냉동 트럭은 시신을 내리지 못한 채 주차장에 세워져 임시 시체안치소가 됐다.
95년 시카고 폭염이 가장 기승을 부린 7월 14일부터 20일까지, 경찰 조사와 부검 결과 시카고에서 ‘고온에 따른 사망’으로 분류된 희생자만 485명에 달했다.
그 기간 숨진 다른 사람이 발견된 경위도 브라운씨 할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카고 경찰이 95년 7월 17일 밤 9시 시카고 시내 모처에서 시신을 수습한 과정을 기록한 보고서는 다음과 같았다.
“건물 창문을 통해 수상한 냄새가 풍겼다. 현관 앞에는 발송된 지 며칠 지난 미개봉 우편물이 쌓여 있었다. 집 앞쪽 창문을 깨고 들어갔을 때 집 안은 극도로 더웠다(Extremely HOT).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사망자의 침실에는 작은 선풍기만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문도 내부에서 잠겨 있었다.”
◇살인 폭염, 누구를 노렸나
폭염은 차별적으로 가혹했다. 주민들의 평균소득 수준이 낮거나, 폭력범죄 발생률이 높은 지역에 살거나, 독거노인인 경우 폭염 사망 비율이 높았다. 시카고 출신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교수는 저서 ‘폭염사회’에서 소득이 빈곤선 이하인 사람의 비율, 폭력범죄율, 독거노인 비율이 높은 상위 15개 지역을 95년 폭염 사망률 상위 15개 지역과 비교했다. 세 가지 요인은 폭염 사망과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그 중에서도 폭력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서 유독 폭염 사망률이 높았다. 94~95년 시카고에서 폭력범죄 발생 빈도 1위였던 풀러파크 커뮤니티가 폭염 관련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확인됐다. 폭력범죄 순위 2위였던 워싱턴파크는 폭염 관련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 중 5위였다.
아미르 지나 시카고대 공공정책학 교수는 지난달 24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95년 시카고 폭염 당시 특이점 중 하나는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 있는 가구들은 에어컨이 없는데도 창문을 열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범죄의 희생양이 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에어컨이 없는 상태에서 창문이 닫힌 채 죽은 사람들이 있었다”고도 했다.
실제 이러한 특징을 지닌 곳 중 일부를 찾아가봤다. 취재진은 지난달 22일 시카고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10㎞ 떨어진 노스론데일로 향했다. 노스론데일은 인구 중 소수인종이 99%, 또 이 가운데 96%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즉 흑인인 지역이다. 택시를 타고 행선지를 밝히자, 택시 기사는 차량 룸미러를 통해 취재진을 훑어본 뒤 “왜 가는지 묻진 않겠지만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스론데일 지역은 낮에도 싸움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행인도 쉽게 다친다”며 “혹시 누가 총을 들거든 당장 그 자리를 떠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재진이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도로에 있던 차량 일부가 경적을 울리며 낯선 동양인을 맞이했다. 한 흑인 여성은 창밖으로 몸을 빼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동네를 둘러보는 동안 길 위에서는 사람을 마주치기도 힘들었다. 집 3채 중 1채꼴로 외벽이 무너져 있었다. 녹슨 철조망 담장 안에는 깨진 시멘트 사이로 삐죽삐죽 자란 잡초가 정원을 점령했고, 현관 계단은 부서진 채 방치돼 있었다. 노스론데일에 있는 주택 대부분의 현관과 창문은 닫혀있었다.
노스론데일과 길 건너에 마주하고 있는 사우스론데일 지역은 상황이 달랐다. 사우스론데일 인구의 94%는 소수인종이었고, 이 중 85%가 라틴계였다. 길을 건너자 가장 먼저 타코 등 스페인 음식점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노점상에서 음료를 사 들고 길 위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친구들과 장난을 치는 아이들, 유모차를 끌고 가는 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사우스론데일 사람들은 동네에서 쇼핑하고 밥을 사 먹는다. 이웃주민 상대 장사로 돈을 버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노스론데일에서는 일주일에 몇 번씩 총싸움이 벌어지다 보니 사람들이 공원에도 나오지 않고 집 안에만 머문다. 노점상은커녕 동네 안에서 돈을 벌 수도, 쓸 곳도 없다.” 이 지역 택시기사 랜달의 설명이었다.
클라이넨버그 교수 분석에 따르면 노스론데일과 사우스론데일의 독거노인 인구수와 빈곤층 노인의 비율은 거의 같다. 하지만 사우스론데일은 95년 폭염 사망자가 3명이었지만, 노스론데일에서는 무려 19명이 죽었다. 6배가 넘는 차이였다.
왜 이런 차이가 벌어졌을까.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거리의 공포라는 사회적 비용은 폭염 기간에 혹독하게 나타났다. 노스론데일 주민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장벽이 스스로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들이 좀처럼 집을 떠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카고 폭염, 한국의 ‘가까운 미래’가 되지 않으려면
“늘 참사가 한 번 일어나야 대응책을 준비한다. 실제 재난이 일어나기 전 미리 대책을 논의하고 마련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어쩌면 그게 한국이 마주한 상황일 수도 있다.”
리즈 모이어 시카고대 지리과학학부 교수는 시카고 폭염이 남긴 교훈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한국 정부가 집계한 폭염 사망자 수는 48명이다. 만약 지난해보다 훨씬 끔찍한 폭염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을까. 모이어 교수는 “경보 체계를 만들고 예방책을 세우는 것은 재난을 수습하고 보상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다. 폭염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에 가장 시급한 일은 폭염 대비책을 만들어야겠다는 관심과 동기를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런 대비 없이 폭염을 맞을 경우 취약계층이 더 가혹한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지나 교수는 “꼭 폭염뿐만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는 항상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며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일부 계층은 자연재해에 더 노출되는데도 우리 사회는 내버려 두고 있다. 불행히도 바로 그 계층이 정치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적은 집단”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폭염은 인간의 윤리적 가치와 미래 계획 능력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95년 폭염, 이름 없는 죽음을 애도하며”
시카고 도심에서 남쪽으로 45㎞ 떨어진 홈우드 공동묘지. 이 묘지 한켠에는 높이 160㎝쯤 되는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96년 5월, 이 비석이 세워지기 전 이 땅은 묘지 가장자리의 한 공터였다. 시카고시는 당시 이 공터에 관 68개가 들어갈 만큼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나무로 된 관을 차례차례 놓았다.
관에는 이름도 없었다고 한다. 이들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폭염 때문에 죽었다’는 것뿐이다. 죽은 이들이 누구인지, 몇살이었는지도 몰랐고, 가족이나 친구들이라며 나타나는 사람들도 없었기 때문이다. 묘지 관리인이 알려준 길을 따라 20여분간 걸어 들어간 곳에 비석이 있었다. 폭염 희생자를 기리는 비석 앞엔 색 바랜 조화 하나 없었다. 취재진이 머무는 동안에도 이곳을, 이들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추모비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995년 여름, 폭염 재난으로 숨진 이들, 가족도 이름도 없이 잊힌 이들을 기억합니다. 이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채 죽었지만, 미국과 일리노이주, 쿡카운티, 시카고 시민들이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존엄과 은혜, 희망과 평화 그리고 안식 속에 이 비극이 끝나길 바랍니다.”
시카고=이정은 기자ㆍ김창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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