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붐업! K리그] “야구장도 있는 ‘휠체어 지정 좌석’ 없어… 비켜달란 말 못해요”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10> 열악한 장애인 관람 환경
예약 선점 못해 비장애인들 앉아… 경기장 스태프도 제지 안 해
경사로에 턱·출입구엔 상점 물건… 이동 경로 안내판 찾기 힘들어
K리그1(1부 리그) FC서울의 열혈 팬 박하엘(12)군 모친 권영혜(41)씨는 아들을 데리고 K리그 원정 경기를 떠날 때면 걱정부터 앞선다. 경기장에 들어갈 때 중증장애(뇌병변)를 안고 태어난 아들의 휠체어 이동 동선에 대한 정보가 없는 데 따른 막막함 탓이다. 구단 홈페이지에 동선 안내가 거의 없을뿐더러 티켓 예매사이트엔 휠체어석 티켓정보조차 없다. 구단에 전화해 문의해도 여러 직원을 거쳐야 정보를 얻는데, 그마저도 틀린 경우가 다반사라 경기장 밖에서부터 휠체어 동선을 찾아 다니다 진을 뺄 때가 많단다. 이는 대부분의 구단이 휠체어석까지 지정좌석제로 운영하는 프로야구 관람환경에 크게 뒤처진 모습이다.
지난달 30일 서울과 울산의 K리그1(1부 리그) 18라운드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권씨는 “공연시설이나 프로야구장에 비해 K리그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거나 크게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안내된 출입구가 단 한 곳뿐이고 좌석 선택권이 없어 아쉽지만, 원정 경기를 몇 차례 다녀보니 그나마 서울이 가장 나은 편이더라”며 씁쓸해했다. 서울의 경우 휠체어석 출입구가 경기장에 입점한 대형마트 물품들에 가려져 처음 이 곳을 찾는 웬만한 이들은 안내 없이 한 번에 찾아 들어가기 어렵다.
휠체어를 탄 관중들은 K리그가 역사나 인기도에 비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한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좌석선택 불가 △휠체어 이동로 파손 및 장애물 적치 △직원의 안내부족 △비장애인 관중의 배려부족 등 이들이 호소하는 불편은 다양하다. 구단들은 “무료입장이라 예매도 없는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장애인들은 “무료입장이면 정보접근권, 좌석선택권 없느냐”고 되묻는다. 공연장이나 프로야구장의 경우 대체로 휠체어석 예매 시스템이나 동선 안내가 갖춰진 데다 다양한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는 ‘좌석 선택권’까지 상당부분 보장되는 추세지만, K리그를 보려면 여전히 ‘오늘도 부딪혀보자’는 각오를 다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게 이들 얘기다.
지난달 22일 K리그2(2부 리그) 안산과 부산의 경기가 열린 안산와스타디움에서 만난 중증장애인 지영근(30ㆍ뇌병변)씨는 경기장 서측에 한 줄로 마련된 휠체어석 맨 끝자리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다른 자리엔 비장애인들이 먼저 자리잡고 있어 맨 끝에 앉게 됐다”고 했다. 장애인석이 다른 자리에 비해 앞뒤 간격이 넓은 데다 난간에 발을 올리고 편하게 볼 수 있어 일찍 들어찬단 게 그의 얘기다. 물론 스태프들의 제지는 없다.
지씨와 동행한 조력자 강병의(51)씨는 “장애를 가진 이들도 좋은 자리에 앉고 싶은 건 마찬가지”라면서 “좌석 선택권조차 없는 와중에 비장애인이 장애인석을 점령해버려 끝자리로 밀리는 건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휠체어석에서 비켜달란 요구를 할 수도 있지만, 괜한 다툼을 벌이기 싫어 먼 자리로 ‘알아서’ 비켜 앉는다는 게 그의 얘기다. 강씨는 “예매시스템이 갖춰지거나, 현장발권 시에도 좌석을 지정해 입장할 수 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장에 들어가는 과정까지도 고난이다. 같은 날 안산을 찾은 온윤호(39ㆍ지체장애)씨는 “안내 스태프에게 경사로를 물어보니 엉뚱한 곳을 알려 준 데다, 경사로 진입로에 턱이 만들어져 입장까지 상당한 시간을 허비했다”며 “상당수 경기장은 매표소 창구 위치가 높아 표를 구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일부 구단들은 이 같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장애인 친화적인 관람환경을 만들고 있다. FC안양은 올해 홈 구장인 안양종합운동장 내 가변석 설치 과정에서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휠체어 이동로를 설치했다. 지난달 2일 직접 찾은 이 곳엔 휠체어석을 그라운드와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하는 등 관람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의 흔적이 묻어났다. 티켓 판매 역시 중증장애인(옛 기준 1~3급)을 구분해 혜택에 차등을 둬 신체에 불편이 큰 이들을 우선 배려했다.
그럼에도 이날 휠체어를 타고 경기장을 찾은 이들은 온전히 경기를 관전하기 어려웠다. 안양은 안양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 회원 98명과 조력자 등 150여명을 초청했지만, 이들은 휠체어석 설계 오류에 따른 불편을 겪었다. 휠체어를 탄 이들 눈높이를 고려하지 못하고 난간이 높게 설계된 데다, 휠체어석 바로 앞이 이동로인 탓에 관중들이 이동할 경우엔 시야가 가려진다. 안양 관계자는 “시행착오가 맞다”며 “오늘 휠체어를 이용해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하루빨리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장을 찾은 장애인들은 되레 “세심함이 아쉽지만 시도 자체가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작동조차 않던 휠체어 리프트를 방치해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가야 했던 3,4년 전과 비교하면 박수칠 만한 일이란다. 이날 전동휠체어를 이용해 경기장을 찾은 김원(56ㆍ지체장애) 밀알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휠체어 이용자 편의 고려는 보편적 관람권 확보의 첫 걸음”이라며 “단순히 장애인 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가져 온 젊은 부모, 보행기를 사용하는 노약자 등 모든 세대를 위한 장치”라고 했다. 그는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해선 구단과 프로축구연맹뿐 아니라 경기장 운영주체(지자체ㆍ시설관리공단)의 투자와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안산ㆍ안양=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