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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시간? 한국에 그런 게 어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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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11>여가생활
“TV를 켜본 지가 언젠지 기억이 안 나.” 어린 시절 침을 꼴깍 삼키게 했던 아버지의 리모컨을 우리는 더 이상 탐낼 필요가 없습니다.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쥐면 그만이니까요. 밀레니얼 세대는 TV를 보지 않고, 영화관에도 가지 않는다는 통계가 꾸준히 나옵니다. 젊은 세대가 영화관에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휴대폰을 2시간 동안 끌 수 없어서’라는 설문조사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애들일까요? 공부하고, 일하는 시간 외엔 뭘 하고 사는지 한국일보 인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첨단 기술의 발전을 한껏 누리며 자란 세대라고 하니, 힙한 무언가를 내심 기대했죠. 그러나 여가시간에 뭘 하냐, 취미가 뭐냐고 물을 때마다 ‘한국에 그런 게 어디 있냐’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여가가 허락되지 않는 사회
카페인= 나한텐 여가시간이랄 게 없는 것 같아.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시간이 늘 부족하거든. 취업 준비와 관련 없는 다른 활동을 하려면 내 미래를 희생해야 하는 것 같이 느껴져. 쉬는 시간도 웬만하면 공부와 관련 있는 걸로 채워. 놀아도 노는 게 아닌 거지. 다큐멘터리를 본다든가, 시사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노는 셈 쳐. 취업한 친구들도 크게 다르진 않더라. 퇴근 후에도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고 주말에는 자격증 스터디를 해. ‘여가시간’이 일이나 공부를 하지 않는 시간이라는데, 우린 여가시간이 아예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아.
나무판다= 주말마다 소파에 뻗어계시던 아버지가 이해 안 됐는데, 그게 요즘 내 모습이야. 업무와 공부에 시달리다 보니 시간이 생기면 그냥 누워서 쉬고 싶어. 토요일엔 늦은 오후가 될 때까지 죽은 사람처럼 잠만 자. 부족했던 잠을 다 보충하고 나면 휴대폰을 보면서 침대에서 뒹굴지. 일주일에 최소 하루는 그렇게 누워서 보내야 하는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다음 주 내내 피곤해서 일상생활이 힘들어.
핑거스냅= 나는 피곤해도 밖으로 나가서 노는 편이야. 자전거도 타고, 노래 부르러 가기도 해.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일인데 요즘은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집중이 안 된다고 해야 하나. 내가 이걸 할 동안 남들은 뭘 하고 있을지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져. 노는 동안 빨리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오히려 더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해. 시간이 주어져도 심적인 여유가 없으니 제대로 놀지를 못하는 거야.
◇ ‘저비용 고효율’ 취미를 선택
무더위= 시간 날 땐 대부분 집에서 영화를 봐. 너무 식상한가? 전 국민의 취미가 영화 감상인데는 다 이유가 있어. 가장 즐기기 쉽잖아. 요새는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 덕분에 더 쉬워졌지. 예전엔 일일이 찾아서 다운로드해야 했던 것들을 구독만 하면 다 볼 수 있어. 구독 비용도 저렴해. 한 편의 영화 관람료로 한 달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콘텐츠를 볼 수 있어.
핑거스냅= ‘저비용 고효율’ 원칙에 따라 여가시간에 뭘 할지 결정해. 배워보고 싶은 게 항상 많은데, 시간과 돈이 한정적이잖아. 그래서 ‘원 데이 클래스’를 이용하곤 해. 몇 시간 정도만 짬을 내면 평소 관심 있던 걸 해 볼 수 있어서 좋아. 진로와 관련 없더라도 다양한 걸 경험하려고 해. 보컬 레슨도 받아봤고, 베이킹 수업에서 마들렌, 다쿠아즈 같은 구움 과자도 만들어 봤어.
너구리= 난 해보고 싶은 것들을 돈 때문에 망설이다 포기할 때가 많아. 밖에서 뭘 하려고 하면 다 돈이니까, 주말엔 보통 집에 있게 돼. 유튜브에서 화려한 취미 영상 같은 걸 보면 박탈감이 들 때도 있어. 여행을 가거나, 내가 평소 해보고 싶었던 활동을 하는 걸 보면 집에만 있는 내 모습이랑 비교되잖아. 그럴 땐 집순이 브이로그를 봐. 짜장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을 따라 해 보기도 하고, 집에서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집이 너무 답답하면 가까운 카페에 가. 커피를 마시면서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편해지더라.
◇스마트폰이 뭐 대수인가요
나무판다= 주말의 대부분을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것 같아. 누워서 휴대폰으로 영상을 계속 보거든. 유튜브나 페이스북은 끊임없이 영상을 틀어 주잖아. 자동으로 재생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몰라. 요즘엔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만 편집해놓은 걸 주로 봐. 드라마 전편을 다 보기 버거울 때 특히 좋더라. 이미 예전에 봤던 드라마도 재미있는 부분만 쏙쏙 뽑아 보여주니 지루할 틈이 없어.
너구리=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스마트폰에 모여있으니 휴대폰을 많이 보는 게 자연스러워. 요즘 출퇴근 길에 ‘월간 이슬아’를 읽어. 구독료를 내면 하루 한편씩 메일로 글을 보내주는 서비스야. 그걸 읽고 나서 생각과 감정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시간이 좋더라. 지하철에서 전자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길래 나도 전자책 앱(애플리케이션)을 깔아봤어. 책을 무겁게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표시해둔 부분을 쉽게 찾아서 볼 수 있어 편하더라. 스마트폰에 전자책 앱을 설치한 후 평소보다 독서량이 늘었어.
핑거스냅= 난 스마트폰을 끼고 살지 않는 편이야. 퇴근해서 집에 오면 휴대폰부터 던져버려. 휴식할 땐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게 좋은 거 같아. 영화도 대부분 극장 가서 봐. 방해 안 받고 집중해서 볼 수 있잖아. 얼마 전 영화 ‘미성년’이 보고 싶었는데 집 근처 극장에는 대형 영화만 걸려있었어. 어쩔 수 없이 휴대폰으로 다운로드해서 봤지. 어디선가 자꾸 연락이 오고, 영화를 계속 멈추게 돼서 짜증 났어. 친구를 만나서 시간을 보낼 때도 휴대폰이 방해될 때가 많아. 쉴 때는 휴대폰에서 벗어나 있고 싶어.
◇TV 안 보고, 영화관 안 가는 이유
머랭쿠키= 친구들을 보니 시간이 날 때마다 넷플릭스에서 영상을 봐. 밤새워서 보느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기도 해. 나는 넷플릭스의 매력을 잘 모르겠어. 구독을 안 하거든. 근데 기존 방송 프로그램들이 매력 없는 건 잘 알아. 요즘 TV를 켜면 프로그램이 다 비슷비슷해. 지상파는 새로운 시도를 안 하는 것 같고, 종편 채널은 신선하긴 한데 자극적이 내용이 종종 불편해. 난 채널을 하나하나 돌리면서 보석 같은 프로그램을 기필코 찾아내거든. 편성표를 참고하기도 해. 근데 그렇게까지 해서 TV 프로그램을 챙겨 보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아. 예전부터 남달랐던 TV를 향한 애정이 없었다면, 나도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서비스로 갈아탔을 거야. 다양한 콘텐츠가 있으니 내 취향에 맞는 걸 더 효율적으로 찾아서 볼 수 있잖아.
나무판다= 이제는 콘텐츠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내 일정에 맞출 수 있어야 해. 영화 상영 시간이나 TV 프로그램의 본방을 지키기가 어렵잖아. 스마트폰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내가 편한 시간에, 편한 장소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아. 또 중간에 멈췄다가 나중에 볼 수도 있으니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무더위=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데에 익숙해졌어. 이제 극장에서 여러 사람과 영화 보는 게 낯설어. 얼마 전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두려워서 개봉하자마자 극장에 갔어. 상영관이 꽉 차 있는데 친구랑 동시에 ‘으악’ 소리를 냈어. 너무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라 놀란 거야. 그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어. 이젠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게 피곤해.
◇‘노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머랭쿠키= 시간이 생겨도 특별히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게 고민이야. 취미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뭘 해야 즐겁고 어떻게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모르는 것 같아. 취미라는 걸 처음 접한 게 생활기록부에 쓸 내용을 찾을 때였어. 내 미래에 도움 되는 걸 취미로 써야 하니까, 흥미도 없는 영자신문 동아리 하고 그랬지. 대학교 와서도 마찬가지였어. 스펙이 되는 활동을 먼저 챙기다 보니 다양한 걸 시도하지 못했어.
나무판다= 노는 법을 알려면 일단 많이 놀아봐야 돼. 이것저것 해봐야 나한테 잘 맞고 내가 좋아하는 걸 알게 되는데, 그럴 기회가 부족하지. 나는 남들이 하는 대로, 많이 알려진 방법대로 놀아서는 행복하지가 않았어. 어쩌다 ‘글라스데코(스티커로 변하는 물감)’를 해봤는데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누군가는 어린이용 장난감인데 그걸 왜 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한텐 진지한 취미야. 글라스데코가 요즘 내 숨통을 틔워줘.
너구리= 놀 때는 내가 즐거우면 그만인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자꾸 신경 쓰게 돼. 취미에도 위계가 있잖아. 대중가요 듣는 게 취미라고 할 때랑, 클래식을 많이 듣는다고 할 때의 반응이 달라. 남의 시선을 고려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걸 적극적으로 지속하기 힘들어. 찬사 받는 취향이 뻔하게 정해져 있으면 선택권이 좁아지는 것 같아. ‘있어 보이는’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진짜로 좋아하는 걸 찾기 어려워져.
카페인= 취미가 뭐냐는 질문이 당황스러워. 취미도 하나의 평가 도구로 쓰이잖아. 어릴 때부터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보단 보여주기 위한 취미를 하고, 그걸로 경쟁력을 높여야 했어. 생활기록부, 이력서, 면접 등에서 취미를 자꾸 물으니까 노는 시간마저도 ‘점수 관리’의 대상이 된 거지. 소개팅 자리에서 취미를 물어보는 게 좋다는데, 난 동의 안 해. 좋아하는 걸 공유하고 싶은 마음보단, 내가 어떤 사람인지 평가하려는 인상이 더 커서야.
◇‘유노윤호’가 되고 싶었지만…
너구리= 시간 날 때마다 뭘 배우고,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해.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 싶어. 열정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가수 유노윤호 같은 사람을 보면 존경스러우면서도 마음 한편이 옥죄어 와. 내 안에도 유노윤호가 살고 있거든. 꽉 채운 일정을 소화하면서 경쟁력을 갖추고 인정받기 위해 쉴 틈이 없어. 그런 내 삶이 답답해. 주변 친구들에게도 유노윤호의 모습이 보일 때가 많아.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좀 보고 싶어. 그래서 ‘열심히 하자’, ‘잘할 수 있다’는 말보다 ‘대충 살자’는 말을 응원으로 주고받을 때도 있어.
나무판다= ‘더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짤(인터넷에서 쓰는 사진이나 그림)이 유행했잖아. 청년들한텐 열정과 무기력이 공존하는 것 같아. 쉬면서도 쉬지 못해서 아닐까. 퇴근하고 잠깐 누워서 휴대폰 보면 시간이 금방 가는데, 그때마다 엄청난 죄책감이 들어. 어차피 힘들어서 다른 걸 하지도 못할 텐데 말이야. 그래서 푹 쉬고 싶을 땐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려. 여행을 가면 어쨌든 거기서 놀고 와야 하잖아. 억지로라도 휴식을 취하고 와야 일을 계속할 수 있어.
무더위= 나는 유노윤호처럼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워. 열정적으로 살려면 시간이나 체력도 필요하지만 의지도 중요하잖아. 그런 희망과 의지를 어디서 얻어야 할지 모르겠어. 어릴 땐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열심히 해보겠단 열정이 넘쳤는데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아.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고 있긴 한데 긍정적인 에너지가 소모된 느낌이야.
◇일에서 벗어나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
카페인= 쉬는 시간엔 머리를 좀 비우고 싶어. 놀아보려고 해도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가 어려워. 해야 하는 공부들이 끊임없이 떠오르거든. 내가 가장 평온한 시간을 생각해보니 빨래를 갤 때더라. 집안일은 어차피 해야 되는 일이니 별생각 안 하고 그냥 집중이 돼. 그렇게 취업 준비에 관한 생각이 사라지고,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을 때가 제일 좋아. 몸을 가만히 쉴 때보다 집안일하며 움직일 때가 더 낫다는 게 좀 신기해.
핑거스냅= 퇴근 후에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데, 야근을 자주 해서 불가능해. 앞으로 어느 회사에서 일하든 주 52시간 근무제가 꼭 지켜졌으면 좋겠어. 해보고 싶은 게 많고 그걸 해야 사는 게 즐겁다고 느끼는 나로선 업무 외 시간이 얼마나 잘 보장되는지가 정말 중요해.
머랭쿠키= 한국에 살면 일이 곧 나 자신이 돼.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 말레이시아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일은 삶의 일부분일 뿐이었어. 회사가 끝나면 스킨 스쿠버를 하러 가는 등 취미도 다양해 보였어. 나는 취미가 일이 된 케이스라 일과 관련 없는 활동이 더욱 절실해. 친구가 ‘자아실현은 돈 주는 곳에서 하려고 하면 안 되고, 돈을 내야 자아실현이 된다’고 말하더라. 그 얘길 들었을 때 뼈 맞은 느낌이었어. 일이 내 삶 전체를 차지하지 않도록 돈을 들여서라도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야 해.
너구리= 건강을 돌볼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얼마 전부터 필라테스를 시작했는데,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있어. 돌아보니까 몸을 혹사시키기만 했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시간을 가진 적이 없더라. 온전히 내 몸을 돌보는데 집중하는 시간을 꾸준히 가지니까 삶 전체가 건강해지는 기분이야. 다만 운동하는 데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서 계속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 아쉬워.
※기성세대는 ‘나약한 세대’라 손가락질하지만 스스로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길을 가는 세대’라 부르며 뿌듯해 하죠.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않은 앞날을 마주해 비장하면서도 유쾌한 이들. 우리가 어렴풋이 떠올리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ㆍ198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이미지가 아닐까요. 한국일보는 밀레니얼 세대가 지닌 잠재력, 그들이 미처 어필하지 못한 속내를 이해하고자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본보 인턴기자들의 방담(放談) ‘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을 연재(매주 화요일)합니다.
정리=김의정 인턴기자
참여=권현지 임태형 정선아 정예진 한지연 홍윤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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