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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교수 “시진핑, G20서 ‘북 미래핵 포기ㆍ미 제재완화’ 중재안 제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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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대 교수 겸 한반도연구센터 소장 인터뷰]
“트럼프, 당장은 중재안 수용 안 해도 대선 앞 활용 카드 확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20~21일 중국 지도자로는 14년 만에 북한을 찾았다. 시 주석은 ‘중국 역할론’을 부각시키며 한반도 문제의 해결사를 자임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 주석을 극진히 환대하면서 혈맹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고 미국에 맞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두 정상이 합의한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 지지부진한 비핵화를 반전시킬 카드가 될지, 아니면 중국이 개입하는 다자구도로 더 꼬일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과연 28~29일 일본 오사카(大阪)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을 시 주석의 가방에는 어떤 해법이 담겨있을까.
김동길(金東吉ㆍ56) 베이징(北京)대 역사학과 교수 겸 한반도연구센터 소장은 “시 주석의 방북으로 김 위원장은 안전보장을 확신할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됐다”면서 “이로써 비핵화 협상에 적극 나설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시 주석은 미래 핵 능력을 포기하는 대신 유엔 대북 제재 일부를 해제하는 이분법적 중재안을 미국에 제시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제안을 당장 수용하지 않더라도 손에 새로운 카드를 쥔 만큼 대선을 앞두고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 주석의 방북이 미국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존재감을 과시한 중국의 중재를 마중물로 미국이 비핵화 협상의 물꼬를 트는 상호 ‘윈윈 게임’이라는 것이다. 통상 완성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현재 핵, 북한이 앞으로 보유할 무기와 핵물질은 미래 핵으로 나뉜다.
동시에 김 교수는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완화는 북한이 수용할 수 없는 방안”이라고 규정한 뒤, “미국에게 누가 대북 협상의 전권을 주었느냐”며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미국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중국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서는 “중국은 비핵화 테이블의 선수가 아닌 촉진자”라며 “북미간에 불신의 벽을 깨고 프로세스가 굴러가면 중국이 끼어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G20 정상회의에 앞서 거론되는 원 포인트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이 시 주석에 건넨 양보안 이상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줄 것이 없다”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김 교수는 베이징대 인문대학 최초로 내외국인 교수를 통틀어 지난해 장빙교수(長聘敎授ㆍ우리의 종신교수)에 선발돼 연구성과와 학자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인터뷰는 22일 그의 연구실에서 1시간 20분가량 진행됐다.
-1박 2일 방북 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시 주석이 중조우의탑을 참배해 방명록에 ‘선열들을 기리며 친선의 대를 이어 전해가리’라고 적었다. 많은 중국인이 피를 흘린 곳이다. 북한의 안전을 지켜주겠다고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행동은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안전확보에 큰 담보가 된다. 김 위원장은 이걸 지렛대 삼아 비핵화로 나아갈 것이다. 북한이 핵 포기 수순으로 넘어가는데, 안전을 최후에 보장하는 국가가 있어야 한다. 시 주석의 노동신문 기고도 마찬가지다. 외국 정상이 노동신문에 본인 이름으로 글을 게재한 건 50년 만에 처음이다. 중국 지도자가 외국신문에 이렇게 한 것도 전례가 없다. 북한에 엄청난 안정감을 주는 일이다.”
-중국은 시 주석 방북으로 무엇을 얻었나.
“무엇보다 신형 대국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했다. 중국은 그 동안 미국에게 외교적으로 번번이 패하고 있다는 인식을 줬다. 일부 중국인들은 2050년에 중국이 미국을 압도할 것이라는 불필요한 청사진을 제시해 미국의 강경대응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쪽에서는 대미 저자세에 불만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동북아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의 돌파구가 될 열쇠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당당하게 지위를 높였다.”
-북중간 우의를 한 단계 격상했다는데.
“양국 인민들의 정서가 중요하다. 중국은 북한을 낮게 보면서 성가신 깡패국가로 간주해왔다. 북한은 중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무시하고 결정적 순간에 미국 편을 드는 믿지 못할 상대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 주석의 방북으로 상황이 크게 호전됐다. 시 주석이 메스게임에 등장해 손을 흔들고 주민들이 열광하는 장면이 중계되면서, 북한은 중국에 대한 동맹의 감정을 회복했다. 중국인들도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을 극진히 환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북한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됐다.”
-양 정상의 발언 중에 ‘인적 교류 확대’가 눈에 띄는데.
“중국 관광객의 북한 여행 확대가 두드러질 것이다. 연간 40만명이 북한을 찾는다. 이걸 2, 3배 늘릴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의도가 반영되면 100만명 관광은 일도 아니다. 각자 1,000달러(약 116만원)씩만 써도 10억달러(약 1조1,600만원)다. 10% 이상 이윤을 남기기 어려운 무역으로 따지면 100억달러 규모에 해당한다. 이 돈으로 북한은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다. 유엔 제재와 상관없는 돈이다. 풍족하진 않지만 북한이 급한 불을 끄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북중 접경 곳곳에서는 매일 수많은 주민이 관광이라는 명목으로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그들은 관광객인지 보따리상인지 모를 정도로 큰 짐을 지고 들어간다. 북한이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중국 정부는 이를 허용하면서 북한을 도와주는 것이다. 중국의 ‘인해 전술’로 사실상 대북제재를 풀 수도 있다.”
_북한은 반대급부로 무엇을 내놓았나.
“미래의 핵 능력과 현재 핵무기의 이분법으로 나눠 전자를 포기하는 비핵화 제안을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비핵화 단계를 너무 길게 잡아서 불명확했다. 반면 미국은 한 번에 다 해결해야 도와준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중국의 중재안은 이것밖에 없다. 영변 핵 시설에 2, 3곳을 더해 완전 폐쇄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까지 받아들이는 대신, 유엔의 5가지 제재 가운데 마지막 2가지인 민수ㆍ민생 경제 관련 제재를 해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핵화 이분법’은 양 정상 발언에 없는데.
“양국은 큰 의미에서 합의에 도달했다. 정치적 해결의 진전을 이끌어냈고 큰 문제에서 합의를 이뤘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미래 핵과 현재 핵으로 나눠 통으로 묶은 것 외에, 큰 틀에서의 다른 해법은 없다. 그간 북한은 비핵화 단계를 최대한 늘린 반면, 미국은 최소한으로 짧게 잡으려 했다. 중국의 해법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에도 가장 용이한 방안이다. 이 정도면 북한도 상당한 수준의 양보안을 낸 것이다. 미래 핵을 없애면 미국을 향한 북한의 지렛대가 확 줄어든다. 하지만 비핵화 프로세스는 자동으로 굴러간다. 중국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안심시켰기에 가능한 일이다.”
-G20에서 이 같은 중국의 중재안을 미국이 수용할까.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의 제안을 받으면 중국의 역할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 된다. 아마 2, 3개월 냉각기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미 대선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미국의 반응이 나오는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원칙주의자가 아니다. 이익이 되면 수시로 태도를 바꾼다. 시 주석의 중재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카드 하나를 더 손에 쥐게 되었으니, 트럼프로서는 손해 보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계속 거부하면.
“미국이 거부해도 중국은 이분법을 고수할 것이다. 그래도 미국이 요지부동이면 중국은 대북 제재를 하나씩 풀어나갈 수도 있다. 그래야 신형 대국관계에서 중국이 국제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비핵화 판에 뛰어들면 미국이 달갑지 않을 텐데.
“왜 우리는 미국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나. 미국이 잘못하면 국제사회가 나서서 지적해야 한다. 비핵화가 막힌 근본 원인은 북미간 불신이다. 서로 어음만 내놓으려는 걸 현찰 대 현찰, 액션 대 액션 게임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미국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 핵을 다 없애야 제재를 풀어주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국가안보를 적성국가의 자비에 의존하는 지도자는 세상에 없다. 누가 약속을 깼나. 트럼프는 하노이 회담에서 합의문 다 만들어놓고 서명을 안 했다. 미국 기분대로 하고 있다. 전 세계는 눈치를 보면서 미국의 분노가 풀리길 기다리지 말고 불만을 표출해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1주일 남은 G20 앞서 남북 정상이 만날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김 위원장이 중국과 한국에 양보안을 동시에 던지면 모양새가 빠지고 진정성도 반감된다. 시 주석의 대미 협상력도 줄어든다.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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