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이광연 “승부차기서 내가 계속 웃자, 세네갈 키커들 쭈뼛쭈뼛 흔들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수비수들이 한 발 더 뛰어줘… 내가 빛광연 된 건 다 그들 덕”
“이것은 야신! 아니 부폰! 아니 빛광연!”
지난 12일 에콰도르와 20세 이하(U-20) 월드컵 4강에서 한국 수문장 이광연(20ㆍ강원)이 종료 직전 상대 헤딩 슈팅을 막아내자 한 해설위원 입에서 세계적인 골키퍼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그는 “펠레의 헤딩을 고든 뱅크스가 막은 셈”이라고도 했다. 고든 뱅크스는 야신에 비견되는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수문장이다.
지난 23일 간 온 국민을 행복하게 만든 주역 중 한 명인 U-20 대표팀 골키퍼 이광연을 17일 귀국 직후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났다. 첫 질문으로 그에게 “뱅크스와 비교된 소감”을 묻자 이광연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그저 영광이다. 진짜 그런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고 쑥스러워 했다.
우크라이나와 결승에서 패한 뒤 이광연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준우승에 대한 아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함께 한 마지막 경기였다. 울음을 꾹 참고 있는데 골키퍼 선생님(김대환 코치)이 ‘광연아 너무 잘 해줬다. 고맙다’고 하시는 순간 계속 눈물이 흘렀다”고 털어놨다. 이강인(18ㆍ발렌시아)도 와서 “형, 너무 잘 했어 시상식에는 웃으며 가자”고 위로해줬다. 이광연은 “(두 살 어린) 강인이가 경기장에선 형 같다”고 미소 지었다.
정정용호는 지난 해 인도네시아 U-19 챔피언십과 U-20 월드컵에서 모두 준우승했다. 이번에 헤어지며 선수들끼리 “3년 뒤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꼭 보자”고 약속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U-20 월드컵 멤버가 출전할 대회다. 이광연은 “손가락 걸고 약속한 건 아니지만 이심전심 다 같은 마음이었다”며 “두 번 준우승한 건 항저우 우승을 위해 아껴둔 셈 치겠다”고 밝게 웃었다.
이번 U-20 월드컵 최고 명승부로 세네갈과 8강을 빼놓을 수 없다. 이광연은 경기 도중 페널티킥을 막았지만 키커보다 먼저 움직였다는 이유로 무효가 됐다. 세네갈 키커가 다시 시도한 슈팅도 방향을 읽었지만 손에 스쳐 골이 됐다. 연장까지 120분 혈투 끝에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한국은 1,2번 키커가 다 실패했지만 이광연은 오히려 웃으며 키커들을 위로했다. 이후 세네갈 키커 중 4명 중 3명이 실축했다. 2명의 슈팅은 하늘로 떴고 나머지 1개는 이광연이 막았다. 이광연이 심리 싸움에서 완전히 이긴 셈. 그는 “경기 중 (페널티킥 방향을) 두 번 다 읽었고 (승부차기에서) 우리 1,2번 키커가 못 넣고도 내가 계속 웃으니 상대가 흔들린 것 같다. 찰 때부터 쭈뼛쭈뼛 하는 게 보였다”고 밝혔다.
이광연의 키는 184cm로 골키퍼 치고 작다. 그는 “좋은 위치에서 미리 각을 잘 줄이면 키는 큰 상관 없다”고 외쳤다. 대신 “작은 골키퍼는 발이 빨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광연은 통진고 1학년 때부터 계단을 오르는 새벽 훈련을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효과가 바로 나타난 건 아니다. 그러나 2년을 매달리니 변화가 느껴졌다. 고 3때 처음 태극마크도 달았다. 이광연은 “2년을 버틴 게 자랑스럽다.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뿌듯해했다.
그는 스페인의 이케르 카시야스(37ㆍ포르투)나 코스라리카 케일러 나바스(32ㆍ레알 마드리드), 한국 국가대표 출신 권순태(35ㆍ가시마) 영상을 수시로 본다. 셋 다 키는 크지 않아도 빠른 몸놀림과 판단력으로 정상급 반열에 오른 수문장이다. 특히 이광연과 생일이 같고 외모가 비슷한 권순태가 ‘롤 모델’이다. 이광연은 “(권)순태 형 한 번 만나고 싶어서 인터뷰 때마다 형 이름을 언급 한다”고 수줍어했다.
그가 가장 생각나는 동료로 언급한 건 룸메이트 이상준(20ㆍ부산)이다. 이광연이 전 경기 풀 타임을 뛴 반면 이상준은 1경기 1분 출전에 그쳤다. 이광연은 “상준이가 (못 뛰어서 힘든) 티 하나도 안 내고 늘 웃어주고 장난을 쳐 줘 마음 편하게 경기에만 집중했다”며 고마워했다.
이번 대회 한국은 7경기에서 총 99개의 슈팅을 허용했다. 32개는 우리 골문을 향했고 43개는 골문 밖으로 빗나갔다. 나머지 24개는 수비수들이 육탄방어로 막았다. 이광연은 “수비수들이 한 발 더 뛰어 상대가 제대로 슛을 못 날려 내가 막기 쉬웠다. 수비수들이 몸으로 막은 슈팅도 많다. 내가 ‘빛광연’이 된 건 다 수비 덕”이라고 했다.
왜 그들을 ‘원 팀’이라 부르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주소현 인턴기자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