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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투기 의혹’ 이후 다섯달… 목포는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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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호동 근대역사문화공간 원도심 주민들 지금도 경계심
건물값만 천정부지… “임대료 치솟아 장사 접는 사람 즐비”
“아따, 기자 양반! 또 뭔 소리(얘기)를 쓸라고 그라고 꼬치꼬치 물어 봐싸요?”
굳이, 가수 이난영이 부른 대중가요를 들먹이지 않아도 ‘목포는 항구다.’ 이곳 사람들은 내륙 사람들과 기질이 달라서 다소 억세기는 하지만 무척 개방형이다. 예부터 전남 목포가 사람과 물산이 오가는 중심지이자, 외부문화가 유입되는 경로였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요즘 이곳 항구 사람들, 그 중에서도 근대문화유산의 보고(寶庫)로 불리는 만호동 일대 원도심 주민들 눈빛에서 서글서글함 대신 경계심을 읽을 수 있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지난 1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손혜원 무소속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이 터진 이후 감지되는 현상이다. 거리에서 만난 어떤 이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원도심에서 ‘부동산 투기’라는 단어는 금기어”라고까지 했다. 뜻하지 않게, 대개는 곱지 않았던 세간의 관심을 몸소 경험했던 이곳 사람들이 겪고 있는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12일 오후 다시 찾아간 만호동 근대역사문화공간(등록문화재 제718호). 불과 다섯 달 전, ‘핫’했던 이곳은 대체로 싸늘했다. 낡고 해묵은 이 동네가 품은 역사적 무게 탓인지 분위기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거리는 휑했고, 두 집 건너 한 집 꼴로 상가와 점포 셔터는 내려져 있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던 터다.
“밤엔 귀신 나오게 생겼어. 원래 그런 동네였어.” 이곳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박모(74)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손혜원 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이 터진 뒤로 호기심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기는 했는디, 커피숍이나 건어물 가게 같은 데나 도움이 될까 말까 하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다니까.” 박씨는 “긍가(그런가) 안 긍가”라며 옆에 있던 한 주민에게 동의를 구했다. 잠자코 있던 주민은 얼굴을 찡그리며 “두 말 하믄 시끄럽제. 땅값만 비싸지고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겄구만”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일부 장사가 되는 데만 되고, 땅값만 치솟아 살기가 더 팍팍해졌다는 얘기였다.
실제 이곳 부동산 가격은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2년 전 3.3㎡에 80만~100만원대에 그쳤던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부동산 가격이 현재 500만원대로 치솟았다. 손 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올해 1월보다도 100만~200만원 더 뛴 것이다. 지역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유달동 인근 한 상가는 최근 3.3㎡에 800만원까지 거래됐다”고 귀띔했다. 그러다 보니 한 달에 20만원하던 상가 임대료도 적게는5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 껑충 뛰었다. 만호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종업원 박모(56)씨는 “손 의원 부동산 투기 논란 이후 임대료도 덩달아 치솟으면서 장사를 접고 떠나는 사람들도 즐비하다”고 털어놨다. 얼마 전 인근 선술집 주인이 임대료를 두 배로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견디다 못해 두 손 들고 동네를 떠났던 터였다.
반면 선창가 쪽 건어물 가게들과 손 의원 조카가 2017년 6월 손 의원에게 자금을 증여 받아 매입한 ‘창성장’은 ‘손혜원 특수’를 누리고 있는 듯 했다. 60대로 보이는 건어물 가게 주인은 “그 동안 손님이 없어 장사하기가 힘들었는데, 손 의원 덕분에 주말이면 관광객들이 몰려와 예전보다 장사도 잘 된다”며 “손 의원은 우리의 구세주”라고 웃었다. 올해 들어 지난달 말 현재 목포근대역사관을 찾은 관광객은 9만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만여명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창성장도 이미 8월까지 예약이 꽉 찬 것으로 알려졌다.
‘손혜원 거리’로 불리는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부동산 가격은 올랐지만 정작 부동산 거래는 뜸했다. 여전히 투기 의혹이라는 불편한 시선이 적지 않은 데다, 근대역사문화공간 개발로 인해 향후 부동산 가격이 더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복합 작용하면서다. 한 중개업자는 “혹시나 해서 사무실에 나오기는 하지만 부동산 매물도 거의 없고 찾는 사람도 없어 점심값만 축내고 집에 간다”고 넋두리를 했다.
이처럼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거래마저 거의 ‘스톱’되면서 그 불똥은 목포시로 튀고 있었다. ‘거래 실종’이 장기화하면서 이곳에서 재생 활성화 사업을 추진 중인 목포시가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이다. 시는 지난 1월부터 만호동, 유달동 일대(11만4,038㎡)에 밀집해 있는 근대건축물 등 문화유산을 보수ㆍ정비하는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1월 문화재청 공모사업을 따온 시는 2023년까지 등록문화재 발굴ㆍ활용 및 경관을 정비해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거창한 밑그림을 그려 놓은 터였다. 시는 이에 따라 올해 110억원을 들여 종합정비계획을 세우고 역사문화공간 내 건축자산 매입 및 정비에 나설 계획이었다. 시는 당장 45억여원을 들여 개별문화재로 등록된 14개소를 중심으로 건축물들을 매입할 예정이었다. 매입 대상 건물에 대한 감정평가도 끝냈다. 여기엔 손 의원 지인이 산 한 곳도 포함됐다.
그러나 시는 턱없이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건물주들 때문에 매입 대상 건물을 하나도 사들이지 못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건물주와 감정평가금액으로 한다는 매입 동의서를 받았는데 손혜원 의원 부동산 매입 여파 등으로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가 높아져 매수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건물주들은 감정평가액보다 3배 정도 높은 가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문화재청도 종합정비계획 승인을 미루면서 사업은 제자리 걸음이다.
이 사업이 답보상태에 빠진 채 “개발이 시작되면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말만 퍼지면서 민심은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다. 주민 조모(62)씨는 “목포시가 재생 활성화 사업을 하면서 집을 고쳐줄 걸로 생각하는 건물주들이 낡은 건물을 고치지도 않은 데다, 손 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만 품고 매물도 내놓지 않으니 사업이 제대로 되겠냐”며 “도대체 이 동네가 어떻게 돼 가는 것인지,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정청래 전 의원이 최근 유달산 자락의 한 커피숍에서 자신의 지지자들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토크 행사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이 행사엔 손 의원도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목포시 관계자는 “도시재생사업과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이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지면서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주민들 사이에서도 “정치인들이 목포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먹고 있다”, “정치인들 때문에 될 것도 안 되고, 되레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얼마 전엔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2019년 문화적 도시재생사업 공모에서 목포시가 탈락한 것을 두고 ‘낙인 효과’ 논란까지 일었다. 이 사업 공모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인사는 “목포시가 제안한 사업이 신선하고 무척 좋았는데, 손 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과 이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 등의 영향 때문에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해 공모에서 떨어지는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 꼴이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곳 주민들이 손 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을 이해하는 방식은 복합적이었다. 이날 만호동 초입에서 만난 한 주민은 “목포시가 제대로 추진하고 있던 사업이 손 의원 때문에 걸림돌이 돼 지지부진하고 있다”며 “자기들 자랑만 일삼는 정치권에서는 제발 나서지 말고 지켜 보고만 있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그러면서 “요즘 이 동네 사람들 심정이 어떤지 아느냐”며 노래 한 곡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그의 입에선 가요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목포=안경호 기자 khan@hankooilbo.com 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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