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 칼럼] 농촌진흥청의 흥미로운 빅데이터 실험

입력
2019.06.07 04:40
3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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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먹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나와 같은 먹거리를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연구 주제다. 비단 연구자뿐만 아니라 식품 기업의 제품 개발 담당자에게도 중요하다. 다행스럽게도 ‘바코드’라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좀 쉬워졌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모든 식품에는 바코드가 붙어 있어서, 계산대에서 리더기로 읽으면 가격 계산도 자동으로 될 뿐만 아니라 어떤 식품이 얼마나 팔렸는지에 대한 기록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예컨대 새우깡의 포장지에 붙어 있는 바코드는 전 세계 어디서든 새우깡으로 읽힌다. 전 세계가 함께 약속한 표준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각 마트와 편의점의 계산대에서 읽힌 새우깡 바코드 데이터를 합치면 새우깡이 전체 얼마나 팔렸는지 파악 가능하다. 제조사인 농심은 이를 분석해서 새우깡을 적절하게 생산할 계획을 세우게 되니 소비자들에게 새우깡이 품절되어 구매하지 못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심지어는 어떤 요일에, 어떤 달에, 혹은 어떤 지역에서 더 많이, 혹은 적게 팔리는 지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제조사에게도 좋고, 판매하는 마트와 편의점에게도 좋으며, 소비자에게도 좋은 일이다. 바코드는 여러모로 편리하고 유용하다.

그런데 이 바코드를 활용한 수요 예측에는 맹점이 있는데, 채소, 과일, 고기, 해수산물 등 신선식품은 바코드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다. 신선식품은 판매 규격이 한 봉지, 한 박스 등의 정해진 규격으로 팔리는 것이 아니라 제 각각으로 판매된다. 예컨대 A마트에서 시금치 한 단은 400g인데, B마트에서는 250g이고, 또 쇠고기 살 때는 자르는 방식과 크기에 따라서 규격이 달라진다. 즉, 신선식품은 워낙 변화무쌍하고 산지별, 품종별, 규격별 종류가 너무나 많아서 표준 바코드 사용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A마트의 시금치에 붙어 있는 바코드를 B마트로 가져 가면 읽히지 않는다. 서로 상이한 바코드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트와 편의점의 바코드 기록으로 신선식품의 판매량을 추정하고 수요 예측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전 세계적으로 그러하다.

이런 이유로 농부들은 더 속이 탄다. 수요에 관련된 자료가 없으니 ‘과학 영농’은 애초부터 어렵다. 신선식품의 특성상 수요와 공급이 3~4%만 차이가 나도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한다. 뿐만 아니라 신선식품은 가공식품에 비해 유통기간이 극히 짧기 때문에 제대로 팔아보지도 폐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농업은 하늘에 맡겨야 하고, 운에 맡겨야 하는 도박성(?) 산업이 되었다. 폭락 사태가 생기면 비탄에 빠진 농부를 위해 국가가 보조를 해주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우리나라 농업 기술의 개발과 보급을 담당하는 농촌진흥청에서는 2010년 이 문제를 풀어 보고자 전 세계적으로 시도하지 않았던 흥미로운 실험을 시작한다. 전국 1,000가구의 주부들로부터 가계부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이 주부 패널들로부터 각 가정에서 매일 구매하는 모든 먹거리 구매 영수증을 붙인 가계부를 우편으로 받았다. 그리고 이를 한 줄 한 줄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했다. 이제는 패널 숫자를 늘려 전국 2,000여 가구, 가족까지 포함하면 무려 6,000여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먹거리 기록이 매일매일 입력된다. 주부 패널들도 처음에는 흥미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우리나라 먹거리 정책을 위한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가계부를 정리해서 농촌진흥청으로 보낸다.

그래서 이 자료가 10여년이 모이니 어마어마한 빅데이터가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정도의 데이터가 된 것이다. 이 빅데이터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신선식품 구매 패널 데이터로 농촌진흥청의 공무원들은 이제 생산현장에서 농부들을 만날 때 이 10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가지고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오이, 당근, 감자 등의 농가들이 출하를 언제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이 데이터 분석을 기반하여 지원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농촌진흥청과 협력하여 이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최근 10여년간 무화과, 살구, 자두 등의 소비가 증가하고 있으나 이들을 활용한 제대로 된 가공식품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농가와 식품기업을 연계하여 신제품을 개발토록 하여 농가의 소득 향상을 돕고 있다. 또한 덩치가 크고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수박에 대한 구매가 계속 감소하고 있으나 오히려 수박 주스에 대한 소비는 여름에 급증하고 가격이 치솟는 패턴을 보임을 찾아 냈고, 이에 농가와 주스 업체들 간의 연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마련하고자 하고 있다.

무모해 보였던 농촌진흥청의 빅데이터 실험이 우리 농업을 살리고 있으며, 국민들이 더 행복한 식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과학 영농의 시작이다. 10년간 꾸준히 소중한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분석하여 농민과 국민을 위해 활용하고 있는 농촌진흥청에 큰 박수를 보낸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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