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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유람선 참사] “가해 선박 맨눈 경계 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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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유람선 허블레아니호 침몰 사고와 유사한 국내 선박 사고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 상대 선박을 추월하려는 선박이 추월 항법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각종 첨단항해장치를 갖춘 선박일지라도, 선장이나 항해사가 경계를 소홀하면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4일 본보가 해양수산부 산하 중앙해양안전심판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선박 충돌 사고 중 허블레아니호 사고와 유사한 추월 사고 재결서(행정심판 내용을 담은 문서)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사고는 추월 선박 해기사의 경계 부주의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은 해양사고를 조사하고 심판해, 해양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징계ㆍ권고ㆍ시정조치를 내리는 기관이다.
2015~2019년 5월까지 내려진 재결 중 선박 충돌 사고 중 해사안전법상 추월 규정이 적용된 건수는 총 5건이다. 허블레아니호 침몰 사고처럼 내수면인 강에서 유람선과 크루즈선 사이에 발생한 유사 사고는 없지만 어선, 낚시어선, 컨테이너선, 예인선, 레저보트 사이에 일어난 추월 사고의 원인과 책임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다.
항해 중인 다른 선박을 추월하는 선박이 지켜야 할 규칙은 해사안전법 제71조에 명시돼 있다. 해사안전법과 재결서 등에 따르면 추월선박은 피추월 선박을 완전히 추월하거나 충분히 멀어질 때까지 해당 선박의 진로를 피해야 한다.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 제24조 추월선의 항법에도 동일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해기사 출신 고영일 해사 전문 변호사는 “국내에서는 조종이나 충돌회피가 수월한 소형선이 대형선의 항로를 방해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지만, 허블레아니호(소형선)가 이미 바이킹시긴호(대형선)의 항로에 들어와 있는 경우에는 바이킹시긴호가 추월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발생한 추월 사고는 모두 추월 선박의 부주의에서 비롯됐다. 2016년 9월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어선 ‘동진호’와 육군경비정 ‘백룡2호’의 충돌 사고가 한 예다. 동진호 선장 A씨는 뱃머리 구조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임에도 입항 대기 중이던 백룡2호가 계속 전진할 것으로 생각하고 추월하려다 사고를 냈다.
추월선의 자동경보장치를 일부러 끈 경우도 있었다. 2015년 12월 경북 포항 앞바다에서 군함 ‘충북함’과 어선 ‘제27경진호’가 충돌한 사건이 그랬다. 추월선인 제27경진호 선장 B씨는 다른 배와 오징어 입찰 정보를 주고 받느라 주의를 소홀이 했다. 거기다 시끄럽다는 이유로 자동경보장치도 꺼뒀다.
선박의 추월이 위험한 이유는 자동차처럼 노면 마찰을 이용해 정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처럼 안전 거리를 확보해주는 비상자동제동장치 등 첨단 장비도 상용화돼 있지 않다. 가까운 거리에 상대 선박이 있을 때는 GPS(위치추적시스템)이나 AIS(선박자동식별시스템)도 무용지물이라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이 때문에 중앙해양안전심판원도 선박 추월 때 최선을 다해 경계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항해장비뿐 아니라 시청각 등을 적극 활용하고, 충돌을 피하기 위한 동작을 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해둬야 한다. 특히 배들이 모이는 항구 어귀에선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허블레아니호를 뒤에서 들이받은 바이킹시긴호는 추월 항법의 기본을 다 어긴 셈이다.
도선사인 진노석 전 인천항도선협회장은 “허블레아니호가 속도를 줄이고 있었으면 이를 회피하기 위한 동작을 취했어야 하는데 무심결에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영석 한국해양대 교수도 “다뉴브강 야경 투어처럼 배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선 최첨단 장비보다 주변 지형지물을 눈으로 직접 살피는 ‘견시(망보기)’가 가장 중요하다”며 “허블레아니호 참사는 견시를 소홀히 한 전형적인 인재”라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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