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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핫&쿨] 아프리카 흡혈 파리의 천적은 ‘방사선’?

입력
2019.06.03 15:44
수정
2019.06.03 19:2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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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서 방사선으로 체체 파리 번식 막아

체체 파리. 위키미디어
체체 파리. 위키미디어

지구 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 중 하나로 꼽히는 ‘체체(tse tse) 파리’가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서서히 박멸되고 있다. 수컷 체체 파리에 대한 번식 능력 제거 실험에 성공한 데 따른 것으로 ‘핵 방사선 기술’이 해충 박멸에 유용하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서아프리카 세네갈 서부의 니아예스 마을에서 가축을 기르며 농사를 짓는 아라우나 소우(55)는 3년 전 자신이 기르던 가축들이 체체 파리 떼 습격을 받았을 때 망연자실했다. 가축들의 털이 뭉텅이로 빠지기 시작하더니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해졌다. 암컷들의 젖도 말라가기 시작했다. 가축이 죽는다는 것은 소우에게 가족들을 부양할 능력을 잃어감을 의미했다.

‘흡혈 파리’로 불리는 체체 파리는 아프리카에 주로 서식하며 야생동물과 가축에게 치명적인 나가나병을 옮긴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매년 300만 마리 이상의 가축이 체체 파리가 옮긴 나가나병에 의해 죽는다. 미국 게이츠 재단은 세계보건기구(WHO) 통계를 바탕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로 모기, 인간, 뱀, 개(광견병)에 이어 체체 파리를 5위로 꼽기도 했다. ‘체체’는 보츠와나 원주민 말로 ‘소를 죽이는 파리’라는 뜻이다.

소우 가족을 포함해 체체 파리로부터 고통 받던 이 마을 사람들을 구한 것은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공동 연구로 개발된 ‘방사능 곤충 불임 기술’ 덕분이었다. 과학자들은 먼저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인공 번식 시설에서 수천 개의 체체 파리 알을 부화시켰다. 이어 새끼 파리들에게 감마(gamma)선을 쪼여 건강한 정자를 생산할 수 없도록 만든 다음 이 파리들을 다시 야생에 방생했다. 번식 능력을 잃은 수컷과 교미한 암컷이 부실한 알을 낳게 해 체체 파리 번식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겠다는 작전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이 지역 체체 파리의 99%가 박멸됐고, 소들의 생존율이 급격히 상승하며 농부들의 수입도 이전보다 30% 늘었다. 소우는 “나는 과학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지만 이 방법은 효과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방사능을 활용한 체체 파리 박멸 실험은 20년 전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에서 최초 실시됐다. 당시에도 실험 3년 만에 체체 파리가 박멸되며 효력을 증명했다. 이번 세네갈 실험까지 성공을 거두며 우간다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도 방사선 불임 기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WP는 전했다. 세네갈 실험 팀은 내년 세네갈 동부로 이동해 추가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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