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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대부분 청소년ㆍ청년기에 발병… 얼마나 빨리 치료하느냐가 중요

입력
2019.06.04 06: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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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조현병학회ㆍ한국일보 공동 기획] ‘조현병 바로 알기’ ③김성완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광주북구정신건강센터장) 

청년기에 시나브로 찾아오는 조현병은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수록 치료 효과가 훨씬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청년기에 시나브로 찾아오는 조현병은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수록 치료 효과가 훨씬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냥 싫어. 다 귀찮아.” 취업준비생 김수영(가명·26·여)씨는 요즘 잠도 오지 않고 우울해지면서 걸핏하면 부모님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백수라고 비웃는다며 집 밖에도 나가지 않는다.

부모님이 수영씨를 병원에 데리고 온 결정적인 계기는 얼마 전부터 하는 이상한 말 때문이었다. “윗집에서 내 흉을 보는 소리가 들려. 짜증 나. 왜 그러는 거야!” 수영씨에게 조현병 초기 증상이 시작되었다고 판단해 약을 처방했고, 상담을 이어갔다. 수영씨는 들리던 소리와 불안감은 점차 사라져 다시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조현병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어려움으로 시작하여 생활의 지장이 점차 커지다가 발병한다. 증상은 대부분 청소년이나 청년 시기에 시작된다.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점점 심해지면서 오래 지속된다. 따라서 이 시기에 겪는 정서적 어려움이 있다면, 조기에 전문가의 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다. 마치 위궤양이 위암으로 진행하거나, 간염이 간암이 되지 않도록 미리 관리하고 검진하는 것과 비슷하다.

청년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매우 크다. 중·고교 시절 학업에 대한 부담은 물론이고 왕따나 학교 폭력 등 교우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청년이 되면 취업이 걱정이고, 군 복무도 큰 부담이다. 하지만 젊은이가 스트레스와 정신건강 문제로 조기 상담하거나 도움을 받기는 쉽지 않다. 사춘기의 일시적 방황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축소시키기도 하고, 편견으로 정신 치료를 받지 않은 채 병을 키우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적어도 과거에 비해 대인관계와 사회활동이 위축되면서 지나치게 의심하고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면 조현병 증상의 시작일 수도 있기에 반드시 정신건강 문제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김수영씨 치료 전 그림: “밤에 가끔 저도 모르게 길을 헤매다 정신이 들면 거의 집 근처 강가였어요. 우울한 생각이 강해지면 강에 뛰어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이 강했어요. 강을 밤에만 봐서 어두운 밤 풍경과 검은 강의 경계가 모호했던 것 같아요.”
김수영씨 치료 전 그림: “밤에 가끔 저도 모르게 길을 헤매다 정신이 들면 거의 집 근처 강가였어요. 우울한 생각이 강해지면 강에 뛰어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이 강했어요. 강을 밤에만 봐서 어두운 밤 풍경과 검은 강의 경계가 모호했던 것 같아요.”
김수영씨 치료 후 그림: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아 복용하면서 소리도 안 들리고 우울함도 사라져 밤이 아닌 초저녁에 산책을 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동안 두려움에 땅만 보고 걷다가 고개를 들어 바라본 초저녁 노을이 너무 예뻐서 그려보았어요.”
김수영씨 치료 후 그림: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아 복용하면서 소리도 안 들리고 우울함도 사라져 밤이 아닌 초저녁에 산책을 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동안 두려움에 땅만 보고 걷다가 고개를 들어 바라본 초저녁 노을이 너무 예뻐서 그려보았어요.”

치료의 성패는 증상이 생긴 뒤 얼마나 빨리 치료를 시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 발병 1년 이상 지나서야 치료를 시작한다. 치료를 미루는 것은 암 진단 후에도 수술을 받지 않고 암세포가 퍼지도록 기다리는 것과 동일하다. 치료가 늦어지면 치료 효과도 좋지 않고 기능이 저하되지만, 조기에 치료하면 건강하게 학업과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취직이나 시험 때문에 진료를 미루다 증상이 심각해져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적지 않은 사람이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면 취업이나 자격 취득에 불이익을 받을 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병원 치료 사실은 법에 의해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되고 기업이나 다른 국가기관에 전달되지 않으므로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치료를 미루다 증상이 악화돼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막연한 염려로 병을 키우기보다 일단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필요하다.

정신질환 치료 접근성을 높이려고 해외에서는 청년정신건강센터 설립과 운영을 확대하고 있다. 청년 시기 질병 부담은 대개 신체건강보다 정신건강에 의한 것이고, 만성 정신질환의 증가는 국가적으로도 큰 부담이다. 따라서 더 쉽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만나 치료를 시작하고, 정신보건 전문가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광주광역시에서 국가 시범사업으로 운영 중인 마인드링크가 유일한 지역사회 청년정신건강센터이다. 이를 다른 지역에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암센터나 심장센터처럼 초기 조현병을 집중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조기중재센터를 거점 의료기관에 설립해 포괄적인 지원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으로 더욱 다양한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현병 환자이면서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로스쿨 부학장인 엘린 삭스 교수는 말한다. “적절한 지원을 받으면 조현병 환자도 충분히 행복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청년 정신건강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결과적으로 의료비와 사회적 비용을 감축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구현하는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

어떤 불편이나 불이익을 염려하지 않고 정신의학적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조기 치료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언론, 정신보건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청년 정신건강이 우리사회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김성완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성완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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