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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흑역사에 발목잡힌 연예계… 이젠 끼보다 인성

입력
2019.05.30 04:40
수정
2019.05.30 09:5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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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린ㆍ유영현 등 3주새 4건… 피해자들 폭로 이어져 

 기획사들 연습생 검증 비상 “인성이 자본이고 상품” 

잇따르는 연예인 '학교 폭력' 의혹. 그래픽=김경진기자
잇따르는 연예인 '학교 폭력' 의혹. 그래픽=김경진기자

연예인들을 향한 과거 ‘학교 폭력’(학폭)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아이돌그룹 씨스타 출신 효린(본명 김효정ㆍ29)과 록밴드 잔나비 출신 건반 연주자 유영현(27) 등 최근 3주 사이 연예인 학교 폭력 의혹이 4건이 잇달아 제기됐다. 연예인 학교 폭력 의혹 제기는 ‘학투’(학교 폭력 나도 당했다)로 확산될 분위기다. 지난해 문화계 내부자들이 ‘미투’로 성폭력을 고발해 자신이 속한 업계 환경 정화에 나서는 양상이었다면, ‘학투’는 도덕불감증에 빠진 연예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려는 외부자들의 폭로 운동 성격을 띠고 있다.

 ◇ “날 때린 애가 착한 모범생으로 묘사되다니” 

연예계의 지나친 인성 미화가 ‘학투’의 불씨로 작용했다. 4년 전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효린은 TV에 나온 작은 고양이를 보고 눈물을 글썽이며, 유기동물보호소를 찾아 청소를 했다. 최근 같은 프로그램에서 잔나비 멤버들은 음악밖에 모르는 티 없이 맑은 청년들로 그려졌다. 유영현은 과거 한 인터넷 방송에서 “절대 불량 학생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폭력 가해 의혹이 불거진 연예인이 방송에선 순수하고 정 넘치는 모습으로 강하게 묘사되면서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반발성 폭로가 잇따르는 모양새다.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쪽 입장에선 방송에 나온 연예인의 ‘포장된 인간성’이 위선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TV에 나오는 연예인과 해당 인물의 옛 실제 모습과의 괴리감이 위화감을 부르고 결국 폭로를 결심하게 하는 방아쇠가 된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연예인은 인기를 넘어 공인이라 불리며 명성까지 얻는다”며 “학폭에 대한 상처가 남은 피해자는 가해자라 여기는 연예인에 대한 폭로로 사회적 처벌을 해 옛 고통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억울함을 온라인에서 공론화해 정의를 찾으려는 ‘폭로사회’의 풍경이다. 예전엔 청소년기의 일탈로 여겨졌던 학폭이 이제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의 영향도 크다.

 ◇“연습생 모교 담임 선생님도 찾아가지만” 

‘학투’로 연예계는 비상이 걸렸다. JYP엔터테인먼트(JYP)는 학폭 의혹이 제기된 소속 연습생 윤서빈(20)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그는 출연하던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에서도 퇴출 당했다. ‘프로듀스X101’ 제작진은 방송 전 연습생에 두 번, 기획사에 한 번 총 세 번 학폭 문제에 대한 확인을 거쳤으나 결국 ‘돌발사태’를 막지 못했다. 15년 넘게 K팝 기획사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는 “연습생이 들어오면 그 연습생 모교로 찾아가 담임 선생님을 만나 학교생활을 묻고, 짧게는 석 달 동안 연습생을 지켜본 뒤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계약을 맺지만 (학폭) 검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학폭 문제가 터지면 사태 수습이 어렵다. 특권의식에 젖은 일부 연예인의 심각한 도덕불감증이 ‘버닝썬 사태’를 통해 까발려지면서 사회가 연예인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엄중해지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K팝 기획사는 요즘 연습생 선발에 ‘끼’ 보다 인성을 살피는 데 더 공을 들이는 추세다.

 ◇인성도 상품 돼가는 ‘연예공화국’ 

연예인 학폭 논란의 확산은 달라진 연예 산업의 지형을 보여준다. 방송의 무게중심이 관찰 예능으로 옮겨지면서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고, 그 과정에서 인성은 연예인의 새로운 상품이 됐다. 시청자는 연예인의 끼가 아닌 그들의 ‘윤리’를 소비한다. 엔터테인먼트에서 오락성보다 무해함을 찾는 시대로의 변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연예계가 ‘트루먼쇼’(개인의 삶을 타인들이 모두 관찰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가 된 시대에 연예인에게 인성은 자본이 됐고 끼보다 중요한 재능이 됐다”며 “연예인이 청소년이 선망하는 직종이 된 ‘연예공화국’에선 연예인의 도덕성 검증과 윤리 소비는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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