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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명의 이슬람 문명기행] “하렘은 쾌락적 공간” 이슬람에 외설 덧씌운 근대 유럽 화가들

입력
2019.05.18 04:40
19면

 <15>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성적 환상과 오리엔탈리즘 

  ※이슬람 국가 모로코에서 이슬람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정명 명지대 교수가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이슬람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서 들려드립니다.  

장레옹 제롬의 ‘뱀 마술사'(1880). 이슬람 세계를 천일야화의 마술적 신비와 동성애의 환상으로 표현했다
장레옹 제롬의 ‘뱀 마술사'(1880). 이슬람 세계를 천일야화의 마술적 신비와 동성애의 환상으로 표현했다

오늘날 이슬람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윤리적 규범이 적용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여성이 외출할 때마다 머리에 베일을 써야 하고, 남녀의 공간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가 하면, 성소수자는 박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과거 유럽인들이 상상했던 이슬람 세계는 지금과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중세 유럽의 신학자들은 이슬람이 육체적 쾌락을 조장하는 외설스런 종교라고 설파했는가 하면, 19세기 유럽의 오리엔탈리즘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 속에서 나체의 여성, 하렘, 함맘(목욕탕) 등을 이슬람 사회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쿠란과 천일야화 번역은 유럽에서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성적 환상이 탄생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중세 유럽 신학자 “쿠란은 외설스러운 경전” 

유럽에서 이슬람의 경전 쿠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시기는 십자군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12세기 무렵이었다. 당시 유럽의 군주들은 이슬람 영토를 정복하고 통치하기 위해서는 이슬람의 관습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유럽의 신학자들은 이슬람과의 정신적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슬람 교리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갖는 것이 급선무라고 여겼다. 이 같은 시대 분위기 속에서 클리뉘 수도원장이었던 페트루스가 쿠란 번역 작업을 주도했고, 마침내 1147년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최초의 쿠란 라틴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중세 유럽의 신학자들은 이슬람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쿠란을 읽고 이슬람 교리를 연구했다. 그 와중에 그들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 성윤리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성욕의 억제를 미덕으로 여겨왔다. 예를 들어, 4세기 무렵 교부철학을 정립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욕을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한 원죄의 산물이자 타락의 근본 원인으로 규정하고 동정(童貞)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직자에게 독신생활을 권장하는 교리가 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이슬람 사회는 성욕이란 억제할 수도 없고 억제되어서도 안 될 인간의 본원적 욕구라고 보았다. 이슬람의 교리는 성직자에게 독신생활을 강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결혼하는 것이 무슬림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이교도대전.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저서에서 무함마드를 호색가로 표현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이교도대전.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저서에서 무함마드를 호색가로 표현했다.

중세 유럽의 신학자들은 쿠란을 읽을 때마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쿠란에는 한 명의 남자가 최대 네 명까지 부인을 두는 것을 허용하는 구절이 있는데, 이를 읽은 유럽의 신학자들은 무슬림을 성욕이 억제되지 않는 야만스러운 족속이라 여기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쿠란에는 “알라는 믿음을 찾고 선행을 하는 자를 천국에 들게 하리니 강이 흐르는 그 곳에서 영생케 하라. 그곳에는 순결한 아내가 있노라”는 구절도 있다. 이 구절에 따르면 이슬람에서 말하는 천국이란 시원한 그늘 아래서 향긋한 포도주를 마시고 아름다운 여인과 놀며 휴식을 취하는 장소가 되는 셈이다. 중세 유럽 신학자들은 이 같은 구절을 보고 이슬람이란 영적인 가치보다 오히려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단정짓게 되었다.

13세기 스페인에서 활약했던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 리콜두스는 ‘사라센의 법에 대한 논박’이란 저서에서 쿠란이 천국에서의 삶을 육체적 쾌락에 비유하여 언급한 것을 예로 들면서, 쿠란은 외설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고 심지어 동성애까지 권고하는 비도덕적인 저서라고 비난했다. 동시대의 또 다른 도미니크 수도사였던 마르티는 ‘마호메트 교파에 대하여’란 저서에서 이슬람은 일부다처제, 축첩제도, 동성애 등을 묵인하는 타락한 종교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13세기 무렵 스콜라 철학을 정립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대이교도대전’이란 저서에서 “무함마드는 육체적 쾌락을 미끼로 사람들을 욕정이 유혹하는 길로 내몰았다”라고 언급하며, 무함마드는 방탕한 호색가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코 참된 예언자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19세기 오리엔탈리즘 회화에 담긴 성적 환상 

근대 시기에 이르러 유럽인들에게 이슬람 세계에 대한 막연한 성적 환상을 불어넣은 또 하나의 계기는 천일야화의 번역이었다. 천일야화는 18세기 초 프랑스 출신의 번역가 앙투안 갈랑에 의해 처음 유럽에 소개된 후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되면서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천일야화는 유럽의 각국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아랍어 원전에 없었던 엉뚱한 이야기가 새롭게 덧붙여지는 것이 예사였다. 게다가 일부 번역가들은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남녀 간 성애(性愛)에 관한 이야기를 원작보다 훨씬 과장하여 에로틱하게 옮기기도 했다.

존 프레데릭 루이스의 ‘하렘'(1849). 살짝 벗겨진 여성 노예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관음증적 쾌락을 자극하고 있다.
존 프레데릭 루이스의 ‘하렘'(1849). 살짝 벗겨진 여성 노예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관음증적 쾌락을 자극하고 있다.

18세기와 19세기 유럽인들은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화려하고 매력적인 하렘의 궁전과 그곳에 사는 벌거벗은 여인들 그리고 그들이 펼치는 관능적인 에로스 이야기에 흠뻑 취했다. 천일야화는 간혹 독자들에게 실제와 허구를 혼돈하게 만들 정도로 그 영향력이 엄청났다. 당시 유럽의 문학가와 여행가들은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하렘이 실제로 터키, 이집트, 시리아 등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다. 하렘이란 낱말은 원래 아랍어 단어인 ‘하림(Harim)’에서 나온 것인데, 이는 ‘신성한 것’과 ‘불가침적인 것’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하렘은 너무나 신성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함부로 외부에 보여줄 수 없는 장소를 의미하며, 그 곳은 다름 아닌 집안의 여성들이 생활하는 사적 공간을 가리킨다. 하렘은 외간 남자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되는 곳이며, 이곳에 사는 여성은 주로 집주인의 모친, 아내, 딸, 하녀였다.

그러나 19세기 유럽의 문화계에서 하렘의 이미지는 전혀 엉뚱한 형태로 변질되어 갔다. 특히 당시 오리엔탈리즘 회화를 주도했던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존 프레데릭 루이스, 장 레옹 제롬 등과 같은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 속에서 하렘, 함맘(목욕탕), 시장 등을 평범한 일상의 공간이 아닌 욕정으로 충만한 일탈의 장소로 탈바꿈 시켜버렸다. 앵그르는 1814년 완성한 대표작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통해 오달리스크를 하렘의 상징으로 부각시켰다. 원래 오달리스크는 오스만제국에서 술탄과 결혼할 자격이 주어진 미와 재능을 겸비한 정숙한 여인이었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는 나체로 침대 위에 누워 매혹적인 눈빛으로 관객을 주시하는 음란한 분위기의 여성으로 바뀌었다. 한편 루이스가 1849년에 그린 ‘하렘’이란 작품은 상체가 반쯤 벗겨진 채 부끄러워하는 여성 노예, 여성 노예의 옷을 벗기며 음흉한 표정을 짓는 흑인 환관, 여성 노예의 자태에 넋이 빠진 하렘의 주인, 여성 노예를 질투와 멸시가 섞인 눈길로 바라보는 세 명의 안주인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 관음증적 쾌락을 한껏 자극하기도 했다. 또한 제롬은 1870년에 그린 ‘무어인의 목욕탕’과 1880년에 그린 ‘뱀 마술사’를 통해 천일야화의 마술적 신비와 동성애의 환상이 마치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1814년 작). 오달리스크는 정숙한 여인에서 관능적인 여인으로 바뀌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1814년 작). 오달리스크는 정숙한 여인에서 관능적인 여인으로 바뀌었다.

 ◇오리엔탈리즘에 의한 오리엔트화 

미국의 문학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1978년에 집필한 ‘오리엔탈리즘’에서 18세기 이후 서구의 다양한 문학 작품 속에서 이슬람 세계의 이미지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날카롭게 비판한 바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서구는 자기가 상상해서 만든 허구적 이미지를 통해 현실의 이슬람 세계를 마음대로 표상화 했고, 나중에는 허구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현실의 모습을 지우고 오히려 진리처럼 군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허구적 이미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이슬람 세계를 문명화해야 한다는 유럽의 식민주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사이드는 “오리엔트는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오리엔트화 되었다”라고 말했다.

상기에서 보았듯 중세 유럽 신학자들은 이슬람이 보편적 윤리를 결여한 종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쿠란을 외설적인 책으로 묘사했고, 근대 유럽의 문학가, 여행가, 미술가는 이슬람 세계가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난 일탈적 공간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하렘과 누드를 주제로 한 작품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과연 현재 우리가 알고 있고 상상하고 있는 이슬람의 모습은 실제일까 아니면 또 다른 허구일까.

김정명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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