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밑에 달러 숨기는 이란 국민들

입력
2019.05.02 16:06
비잔 남다르 이란 석유장관이 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제24회 국제 석유 가스 석유화학 박람회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란은 2일부터 미국 제재 강화에 따라 석유 수출길이 더욱 막히게 됐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미국 달러와 유로가 침대 아래에 숨겨져 있다. 중앙은행의 신뢰 상실 탓이다. 국민들은 은행을 믿지 않는다. 차라리 미인가 ‘그림자 은행’이 더 믿을 만하다는 게 여론이다. 계속되는 미국의 제재로 자국 화폐의 가치는 추락하고 있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들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 모두가 미국이 ‘불량 국가’라고 부르는 중동 이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탈퇴하고 제재를 재개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한 경제 위기에 봉착했다. 이란 리알화 가치는 속수무책으로 하락했다. 게다가 미국이 이란산 석유 수입에 대한 예외 조치를 3일(현지시간)부터 허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이란 경제가 추가로 어느 선까지 무너질 것인지도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이란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최소 100억달러(11조6,567억원)에서 최대 250억달러에 달하는 달러와 유로 등의 외화들이 이란 국민들의 장롱 속에 숨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란 중앙은행이 외화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국민들 나름대로 퇴로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 예외 품목인 식량과 약품 등을 수입하기 위해서 외화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국민은 외화를 은행에 입금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이란 중앙은행이 이중환율제를 적용한 것이 신뢰 상실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날 이란 중앙은행이 발표한 공식 환율은 1달러에 4만2,000리알이지만 시장에서는 14만4,000리알에 달한다. 세 배가 넘는 차이다. 게다가 국민들이 은행에 예금한 외화를 인출할 때에는 공식 환율을 적용해 리알화로만 출금할 수 있게 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손해를 보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지난해 8월 이란 중앙은행은 늦게나마 대책을 발표했다. 달러와 유로, 아랍에미리트 디르함을 예금하면 최대 4%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올해 인플레이션이 40%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중앙은행 정책 변화의 효과는 미지수로 남는다.

한번 잃은 신뢰는 쉽게 회복하기 힘들 전망이다. 이른바 ‘그림자 은행’들이 공식 은행의 빈틈을 파고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의 실패한 경제정책이 그림자 은행의 성장에 한몫을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림자 은행들은 최대 연 89%까지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고 발리올라 세이프 전 이란 중앙은행장이 지적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그림자 은행이 국가 전체 통화 공급량의 25%를 점유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일부 이란 국민들은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를 대안 화폐로 이용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에흐산 박티아리는 “지난 4년 동안 비트코인 등을 사용해서 살림을 꾸려 왔다”며 “환율 폭등에 대처하는 차원에서도 암호화폐는 유용하고 안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고 2일 알자지라는 보도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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