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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 칼럼] 목포의 국물

입력
2019.04.12 04:40
29면
유달산에서 내려다 본 목포 서산동 풍경. 목포=최흥수기자
유달산에서 내려다 본 목포 서산동 풍경. 목포=최흥수기자

1897년 개항한 목포는 부산, 인천, 함흥과 함께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4대 항구도시 중 하나였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1번 국도, 동서를 가로지르는 2번 국도의 시작점도 목포다. 그러나 일제는 해상과 육상을 아우르는 교통 요지인 목포를 수탈의 기지로 활용했고, 이는 그들에게 큰 돈벌이가 되었으므로 많은 일본인들이 목포로 이주해 왔다. 아직도 목포에 가보면 일본인 거주지역이었던 남촌(南村)과 조선인 거주지역이었던 북촌(北村)의 구분이 뚜렷하다. 그러나 구분만 가능할 뿐 이제는 어느 쪽이든 공동화(空洞化) 현상으로 황폐하기 이루 말할 데가 없다. 목포는 재생이 필요한 도시다.

1960년대 목포 앞 바다에는 사시사철 파시(波市)가 열렸다. 파시는 수백 척의 고깃배들이 바다에서 서로 연결하여 그 위에서 상거래가 일어나도록 하는 ‘파도 위의 어시장’이었다. 파시는 고기를 땅에다 내릴 필요 없이 타 지역의 배가 와서 바다 위에서 거래하고 해수산물을 옮겨 싣고 바로 이동하는 형태였다. 당시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할 항만 시설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이 해수산물을 육상 운송하는 것이 더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던 시절이었다.

70년대를 지나면서 냉장기술이 발전하고 육상 운송이 일반화됨에 따라 파시는 점점 사라졌다. 목포 앞 바다에 떠 있던 수백 척의 고깃배들이 만들어 내던 그 장관도 없어졌다. 목포는 대한민국 서남권 해수산물의 집산지로 오랜 기간 어시장을 중심으로 돈이 흐르던 곳이었는데, 파시가 사라지니 돈이 사라졌다. 돈이 사라지니 사람이 사라졌다. 더욱이 공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에 소외되었던 목포의 전성기는 설움으로 남아 눈물로 흐른다. 목포의 흥망성쇠다.

예로부터 해수산물의 집산지였던 목포는 음식문화가 극도로 발달한 곳이다. 좋은 식재료가 넘치는 목포는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음식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공식을 잘 아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 문화는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어서 목포에서는 밥 한끼를 먹어도 다양하고 신선한 해수산물을 잘 활용해 그 정갈한 손맛으로 한 상 제대로 차려 먹는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목포에는 길거리 음식 문화랄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우리 전통의 반상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고, 육지의 고기보다는 바닷고기를 활용한 음식이 발달했다. 그래서 목포는 자문했다. 목포의 경제 발전을 위해 이런 문화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발달된 식문화를 가진 목포는 지역 재생을 위한 새로운 비전으로 ‘맛의 도시 목포'라는 도시 아이덴티티를 수립했다. 음식을 바탕으로 한 음식 관광으로 지역을 재생시키겠다는 것이다.

음식으로 지역 경제를 끌어 올리는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스페인 최북단 산 세바스티안에는 특별한 관광자원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단지 먹기 위해 몰려 온다. 인구 20만의 이 소도시는 일본 교토와 더불어 미슐랭 스타급 레스토랑이 인구대비 가장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 도시에서 미슐랭 별을 세 개 획득한 레스토랑들을 순례하는 것은 관광객들의 중요한 미션이 되어있을 정도다. 산 세바스티안 시에서는 관광객들이 지역의 음식을 먹기 위해 방문하고 지역에서 숙박하도록 유도하는 관광 전략을 오랫동안 펼쳐 왔다. 단체 관광객과 근거리에서 방문하는 관광객은 줄이고, 멀리서 방문하여 숙박하는 관광객, 소규모 관광객, 음식 문화를 즐기는 관광객이 늘도록 시청에서 꾸준히 노력했다. 음식에 관심 있는 관광객은 비용에 덜 민감하다. 그 결과, 지출액이 높은 관광객들의 비중이 높아져 내실 있는 관광 산업 기반을 확립했다. 그리하여 현재 산 세바스티안 시 경제 규모의 약 15%가 관광 산업에 기반하고 있고, 그 핵심은 음식 관광에 있다. 가까운 일본의 예로 카가와현은 ‘우동’을 주제로 한 음식 관광으로 관광객이 연 1,000만명에 달하는 성공 사례를 가지고 있다.

맛의 도시 목포의 시민들은 목포를 대표하는 아홉 가지 맛, 목포 9미를 선정하여 발표했다. 세발낙지, 홍어삼합, 민어회, 꽃게무침, 먹갈치조림, 병어회(찜), 준치무침, 아구탕(찜), 우럭간국이 그 것이다. 목포 시청에서는 관광객이 목포 9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식당 리스트를 공개하고 식당들이 훌륭한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컨설팅하고 있다. 그리고 더 다양한 형태로 목포 9미를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는 프로젝트 등을 펼치며 다양한 음식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음식 관광 산업으로 지역을 재생하겠다는 장기적 전략의 출발점에 서 있다. 목포는 오늘 ‘맛의 도시 목포’라는 비전을 선포함으로써 목포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고 있다.

목포 9미 중 하나인 우럭간국은 우럭의 간(肝)을 끓인 국이 아니다. 목포의 해풍에 짭조름하고 꾸덕하게 말린 우럭살의 감칠맛과 간이 국물에 푹 배어나게 해서 그 깊은 맛을 즐기는 오랜 전통의 목포의 국물이다. 이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맛의 천재들이 모여 사는 목포를 방문할 이유는 충분하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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